향기, 나를 잊지 않기 위한 가장 우아한 기록
내가 향수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주 이른 시절부터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 아직 내가 누구인지도 스스로 설명할 수도 없었을 때죠. 어느 날 아침, 엄마가 쓰던 향수를 호기심에 살짝 교복 위에 뿌리고 등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향수의 이름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아요. 다만 그날 교실에서 몇몇 아이들이 좋은 냄새가 난다라고 말해주었고, 열네 살의 내게 그 말은 단순히 냄새에 대한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외모나 성격, 서툰 말솜씨 이전에 나의 존재 자체가 온전히 긍정받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향은 언어 이전의 인식입니다. 타인은 내 말을 듣기 전에 이미 나를 맡습니다. 그 원초적인 연결감이 내게 묘한 자신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말을 하기 전에도 이미 누군가에게 인식된다는 것, 그리고 냄새라는 감각은 외모나 성적처럼 비교되지 않으면서도 존재 전체를 긍정받게 만든다는 사실을. 향은 나를 꾸며주기보다 나를 대신 말해주었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향수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에게 나 자신을 믿게 해주는 감각이 되었습니다.
향수 전문 용어 중에 '실라쥬(Sillage)'라는 말이 있습니다. 프랑스어로 '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물결' 혹은 '비행기운'을 뜻합니다. 중학교 시절 내가 느꼈던 묘한 자신감의 정체는 바로 이 실라쥬였습니다. 내가 그 자리를 떠난 뒤에도 나의 향기가 파도처럼 남아 나를 대신해 말해주고 있다는 감각. 그 보이지 않는 물결이 나를 감싸는 든든한 옷이 되어준 것입니다. 향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나 자신을 처음으로 믿게 해 준 원초적인 에너지였습니다.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시간을 직선으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어떤 날의 기분, 어떤 시절의 공기, 어떤 관계의 온도를 감각으로 저장합니다. 특히 후각은 기억과 감정의 가장 깊은 곳과 맞닿아 있어 설명 보다 먼저 반응합니다. 후각은 오감 중 유일하게 기억과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와 직접 연결됩니다. 그래서 어떤 냄새는 10년 전 여름날의 습도까지 고스란히 소환하지요. 그래서 향수를 고르는 일은 오늘의 나를 꾸미는 행위이기보다, 그것은 하루의 톤을 정하는 일이고, 오늘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문장을 고르는 일에 가깝습니다. 향수는 기분을 가리는 가면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하루를 시작할지를 결정하는 서문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내가 사용하는 향수도 달라졌습니다. 20대에 어울리던 향과 30대에 손이 가던 향, 그리고 지금의 향은 분명히 다릅니다. 지금 내게 남아 있는 향수는 스무 병 가까이 되지만, 그것은 많은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시절의 나였습니다. 나는 향수를 모은 것이 아니라, 나의 상태와 시간을 보관해 왔던 것입니다.
특정 향을 뿌리면 특정 장면이 함께 따라옵니다. 그 향을 쓰던 집, 그 시절의 계절, 함께 있었던 사람들. 향은 기억을 설명하지 않아요. 대신 기억을 현재로 데려옵니다. 그래서 향수를 뿌리는 순간, 나는 종종 시간을 거슬러 어떤 날 한가운데에 서게 됩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체취에는 익숙해져서 잘 맡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를 '후각 적응'이라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특정 향수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아의 확장'이기 때문입니다.
향수는 타인에게 나를 각인시키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를 일깨우는 일종의 정서적 닻 역할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기억은, 오래전 함께 살았던 반려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샤워를 시킨 뒤, 털이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았을 때 나는 강아지의 피부에 닿지 않도록 손에 먼저 뿌린 듯 다시 강아지 털을 쓰다듬으로써 향기를 입힙니다. 그 향기를 머금고 집 안을 돌아다니던 모습, 품에 안았을 때 은은하게 남던 냄새는 나에게 큰 기쁨이었어요. 사랑은 때로 규칙을 조금 넘어서는 감각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로 한동안 나는 그 향수를 다시 쓰지 못했어요.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우연히 그 향을 다시 뿌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슬픔이 아니라 행복이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시 살아 움직였습니다. 나는 그제야 이해했어요. 향은 상실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꿔준다는 것을.
어릴 적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원작소설과 영화 '향수'가 이제는 다시 보고 싶어진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입니다. 향을 통해 타인을 소유하려 했던 한 인간의 집착은, 사실 관계를 통제하고 싶었던 깊은 결핍에 가까웠습니다. 향은 사랑의 대체물이 아니라, 사랑이 남긴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18세기 프랑스, 천재적 후각을 가진 그르누이는 완벽한 향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죽입니다. 당시에는 그저 엽기적인 이야기로만 받아들였어요. 광기로 점철된 이해할 수 없는 집착.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르누이는 자신에게 체취가 없는 인간이었죠. 세상은 그를 보지만, 아무도 그를 감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향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향으로 타인을 사로잡고, 향으로 사랑받고, 향으로 기억되려 했던 것입니다.
시각과 청각을 잃었던 헬렌 켈러는 향기에 대해 이러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향기는 수 마일 밖에서도 당신을 과거로 데려가는 강력한 마법사다. 그것은 타락한 천사와 같아서,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삶의 가장 깊은 곳을 지배한다."
최근 나는 처음으로 아기가 사용할 수 있는 향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깔루’라는 브랜드입니다. 오래된 역사, 과하지 않은 순함, 그리고 향수와 함께 도착한 작은 곰인형까지.
지금 함께 하고 있는 나의 반려견 보리에게 처음 이 향을 뿌려주는 날, 나는 손목에도 같은 향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향기로 하루를 시작했죠. 그것은 사랑의 표식이고, 시간의 표식이었습니다. 프랑스 그라스에서 만들어진 이 작은 병 속에는, 아직 오지 않은 그리움이 담겨 있습니다. 샤워 후 물기가 마르지 않은 보리를 안아 올리고, 부드러운 털에 향을 한두 방울 뿌리는 그 순간을. 그 아이가 집 안을 돌아다닐 때 공기 중에 은은하게 퍼지는 향을.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을 때 우리 사이에 머무는 같은 냄새를.
어쩌면 향수란 과거를 불러오는 도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미리 만들어두는 기억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더 이상 향수를 통해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랑을 남깁니다. 오늘 보리의 털에 남을 이 향은, 언젠가 나를 울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나를 충분히 살게 할 것임을 압니다.
그래서 나에게 향수란, 나를 꾸미는 물질이 아니라 사랑을 기록하는 방식이에요. 말로는 다 하지 못한 시간과 관계를, 가장 부드러운 감각으로 남겨두는 일. 나는 오늘도 향수를 고릅니다. 기억을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향수는 지적인 구성물이다"
-에드몽 로드니 츠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