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일기>

우정의 끝을 생각하는 아침

by 느린손 실꽃정원

아침에 커피 한잔을 놓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우정은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나이가 들고 보니, 어떤 인연이든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때는 절대 끊어질 것 같지 않던 너와 나의 관계도 결국은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린다.

어른들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친한 친구일수록 선을 지켜야 한다고 했던 말이 이제야 깊이 이해된다.


나는 최근 오랜 친구 하나를 마음에서 놓아 보내기로 했다.

그 친구의 연락을 일부러 무시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전화조차 받고 싶지 않을 만큼 대화가 피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편한 시간대에 전화를 걸어왔고, 통화는 최소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이나 이어졌다.

처음에는 그녀가 나를 챙기는 마음에서 전화를 하는 줄 알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김없이 안부를 물어주니 조금 버거운면도 없진 않지만 고맙긴 했다.

하지만 오 년 넘게 이어진 그 시간을 돌이켜보니,

나는 차츰 그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는 착하고 고분고분했다. 대체로 반듯했고 긍정적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그녀를 피하고 싶었던 이유는,

오랜 시간 끝에 드러난 불공정성 때문이었다.

나는 만날 때마다 밥을 사고, 커피를 사고, 선물을 챙겼다.

그녀는 짠순이였다. 먼저 차를 사는 적도 없었고,

선물을 바란 적은 없지만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내어주는 일도 없었다.

또한 어느 순간,

대화에서 진정한 소통은 사라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마음속에 회의감이 차올랐고, 결국 그녀와의 관계를 놓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결정적인 사건은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 일어났다.

그녀는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제삼자를 시켜, 밤늦게 내 집에 다녀가게 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말을 전했지만,

그것은 진심 어린 배려라기보다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집착처럼 보였다.

나는 잘살고 있었다. 며칠 전 새로 바꾼 카톡 프로필 사진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마치 자녀를 대하듯, 끝내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태도는 무례함 그 자체였다.

그때 나는 마음을 굳혔다.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나중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전화할게.”

그 한 문장이 곧 그녀의 가슴에 아픔을 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선은 내 마음을 먼저 추스르고 싶었다.

나는 이 경험에서 몇 가지를 배웠다.

우정에도 공정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금전적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진정성이 오가는 문제다.

아무리 착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이용하려는 마음은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다.

내 시간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는 것이다.

집착과 매달림은 존중을 무너뜨리는 가장 큰 무례다.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다.

때로는 끊기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쪽이 감정을 다 소진해 버리면 관계 자체가 사라지고 만다.


내겐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도 언제나 반갑고 즐거운 친구 한두 명이 있다.

몇 달 만에 연락해도 어제 만난 듯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

또, 친밀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일상 이야기 몇 마디로 충분히 마음이 가벼워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친구란, 그런 관계만으로도 충분하다.

할 말이 없는데도 억지로 전화를 걸어 시간을 빼앗고 감정을 소모시키는 관계라면,

그것은 더 이상 우정이 아니다.

마치 철봉 위에 매달려 손을 놓지 못한 채 버티는 것과 다름없다.

언젠가는 손을 놓고, 힘을 빼고, 편안히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나는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관계는 더는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에 이르렀다.




프랑스 영화 중 <즐거운 50>이라는 단순한 제목의 영화는,

중장년의 삶에 흐르는 복잡한 감정들을

유머와 따뜻함, 그리고 묵직한 철학으로 풀어나간다.

사랑, 우정, 질투, 서열의 미묘함,

그리고 때로는 진실보다 중요한 관계의 평화까지.

중간중간 벌어지는 해프닝은 그다지 평화롭거나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무례함과

상상도 못 할 비밀이 있었지만 정말 위태로운 상황을 프랑스식의 유머로 그리고 철학으로 귀결시킨다

나라면 친구가 말을 함부로 하는 걸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내 배우자가 외도로 낳은 자식을 나만 모르고 친구들이 다 안다는 사실을 그냥 모르고 사는 게 맞나 싶은 의문 등등.

우리나라 영화로 나왔으면 이건 그냥 반전 스릴러 친구관계는 물론 가정도 파탄 나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이건 프랑스영화였다. 즐거운 프랑스영화.

코미디영화로 설정되었지만 이 짧은 드라마 한 편에 프랑스식의 위트와 철학이 담겨있고 어쨌든 마지막은 해피앤딩이라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