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나> 오키나와

아름다운 바다, 불편한 기억

by 느린손 실꽃정원

지난해, 오키나와 본섬 최남단 이토만(糸満)에 위치한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과 평화기념자료관에 갔다왔습니다.

오키나와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볼 거 없다고 했지만 저는 딱 한 곳에 관심이 있는 여행목적이었기에 크게 기대를 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오키나와 명물인 블루씰 아이스크림과 88 스테이크 하우스의 엄청 큰 스테이크와 오리온 맥주는 오키나와에 놀러 온 보람이 있을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다음날 숙소에 택시를 불러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일본택시기사님들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많네요. 불필요하게 말을 걸지도 않지만 뭔가를 물어보면 아주 친절하게 대꾸해 주십니다.

아침 일찍이라서 그런지 기념공원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규모가 크고 아름답고 절벽 아래로 펼쳐진 태평양, 좀 더 자세히 말하면 태평양의 일부인 필리핀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바라본 동해라든지 남쪽 바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었어요. 이곳의 한국인 위령탑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누가 왔다간 흔적이 보입니다. 반쯤 비어있는 소주병과 잔이 마치 방금 전에라도 왔다 간듯한 온기로 전해졌습니다. 일본인 전사자의 위령탑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작았지만 깨끗하고 아담하게 돌담과 숲길로 둘러 쌓여있어서 생각의 시간을 지켜주는 듯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참배를 드리고 천천히 돌아 나오는 길에, 광장 앞에 관광버스 한 대에 한 무리의 단체 일본학생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손에는 각각 하나의 꽃들이 들려 있습니다. 그들은 천천히 선생으로 보이는 어른여자의 인도를 받으며 일본전사자들의 묘소로 향합니다.

그들은 한국인위령탑의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상당규모의 일본전사자들의 묘지로 향하며 역시나 일본인답게 시끄럽지 않고 숙연한 모습으로 줄 맞춰 입장합니다. 어린 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기도를 드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라, 오키나와 전투의 마지막 지점, 말하자면 끝까지 밀려난 땅입니다. 일본 본토 방어를 위해 오키나와는 사실상 방패처럼 사용되었습니다. 민간인까지 동원되었고, 집단 자결, 강제 희생, 무차별 폭격이 일상처럼 벌어졌습니다. 오키나와 주민의 약 4분의 1이 사망했습니다.

이곳은 일본군의 전쟁 수행보다, 민간인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었는가에 초점을 둡니다. 어린아이의 도시락, 찢어진 교복, 피난 동굴의 재현… 설명은 절제되어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무겁습니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쟁으로 사망한 모든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검은 비석들. 일본인, 오키나와인, 한국인, 미군까지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가해와 피해의 구분보다, 죽음의 평등함을 먼저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평화의 초석에는 여러 나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들었지만, 그날 저는 그곳에서 한국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아이러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일본이 세운 평화기념공원에는 그들의 죽음보다 더 깊은 곳에서 말 못 하며 죽어간 조선인들이 있었습니다. 5백만의 조선 사람들이 강제 징용과 징병으로 이곳과 저곳으로 끌려갔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귀환한 이들의 수는 2백만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 사이 흩어진 영혼과 남겨진 기억은 숫자로 다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이름조차 남지 않은 이들이 우리 땅 위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누가 달래줄까요?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과 공간에서 그들은 노예의 신분으로 이 하늘을, 바다를 바라보며 고향땅을 그리워했을 거고, 반면 누군가는 돈을 주고 이곳에 와서 관광 혹은 맛집을 찾아다니며 즐기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곳에 더 있자니 제가 꼭 그 시대에 이곳에 끌려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조선을 그리워하는 조선인 같은 먹먹함이 느껴졌어요.

며칠 전, 영화 난징 사진관을 재밌게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뽕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평을 써놓았는데, 저는 그동안 보아온 중국영화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들의 연기도 아주 볼만했습니다. 친구를 말하면서 자기 손으로 죽이진 못하고 다른 사람의 손으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 자기 손은 끝내 더럽히지 않은 채 타인의 칼로 죽음을 완성하고, 그 결과를 ‘의’라는 말로 씻어내는 태도에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오래도록 품어온 이중성과 야비함을 보았습니다. 그건 특별히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반감이기전에 우리나라와 함께 같은 역사적 비극을 맞이했던 나라에 대한 동질감이 더 컸기에 난징 사진관은 중국이 과장해서 만든 영화라기보다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을 우리 조선인들의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보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일본의 아기자기한 온천, 온천욕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소박하고 정갈하면서 왠지 모르게 절도를 몸에 베개 하는듯한 음식, 시끄럽지 않고 질서 정연한 일본인들의 모습은 일본여행을 즐겁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그들의 순종적이면서 누구에게나 친절한듯한 모습에서 또 다른 상황을 마주하면 그 반대의 얼굴이 드러날 거라는 불신의 마음을 지우기는 참 힘들 것 같습니다. 별로 정이 가지 않는 건 저 혼자만일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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