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오늘도 성장 중
막내가 이번 시험은 기필코 성적을 올리겠다며 좋아하는 보이스 학원까지 빼고 중간고사 준비를 했다. 늘 시험 보고 나면 "아빠 이번 생은 망쳤어" 하던 녀석이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시험 당일 "문제 잘 읽고 아는 것만 잘 맞추자 파이팅!" 등교하는 녀석에게 당부했다.
시험을 마친 막내에게 전화가 왔다. 또 시험을 망쳤다며 울먹이는 막내딸, 이렇게 노력했는데 아파서 학원에 나오지도 못하는 친구보다 점수를 못 받았다며 '정말 나 망했나 봐' 한다. 사실 망쳤다는 수준이 내 중학교 수학 점수와 비교하면 절이라도 해야 할 만큼 훌륭한 점수다. 그 시절 나 또한 시험 스트레스가 심했고 친한 친구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구나 삶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처음 사는 인생, 시행착오가 많은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럴 때마다 망했다고 지난 시간을 후회해 본들 삶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막내에게 이 명확한 진리를 빠르게 눈치챌 수 있도록 도움 주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빠는 네가 시험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봤잖아!"
"망하지 않았어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야"
"오늘은 최선을 다했으니까 기억에 남는 날로 생각하고 포기했던 영어시험 준비를 더 꼼꼼해 보는 건 어때?"
"몇 문제 더 맞추면 이득이고 예상대로 나와도 본전이잖아 안 그래?"
막내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오늘도 스터디 카페에 갈 테니 저녁에 데리러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끝나는 시간 10분 전에 대기하고 있겠노라 약속했다.
실패, 결핍, 고통이라는 녀석들이 나에게 오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면 아마도 우리가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놈들이 왔다고 삶이 망할 리 없다. 그다음에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이 명확한 사실을 태어난 지 600개월 만에 깨달았지만 우리 막내딸은 훨씬 빠르게 눈치채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