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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바꿈 Jun 16. 2022

자~! 이제 벤처확인(인증) 증 주세요.

노래방 협의회 간부의 기습

  

 노크 한번 없이 누군가 불쑥 사무국으로 들어왔다. 바닷가에서나 딱 어울리는 슬리퍼를 신고, 반소매 티셔츠에  한쪽 팔을 대나무 타투로 가득 채운 건장한 사내였다. 걸을 때마다 슬리퍼가 뒤꿈치를 탁! 탁! 치면서 내는 소리가 아무도 없는 사무국에 크게 울렸다.  외부 행사장에서 스타트업 데모데이가 한창 열리고 있던 터라 모든 직원이 행사장으로 출동한 상태여서 사무국에는 나 혼자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덩치가 큰 사나이를 보고 덜컥 겁부터 났다. 그는 다짜고짜 ‘벤처 확인(인증)을 받으러 왔다’라며 ‘바쁜 사람이니까 서둘러 달라’고 했다. 당황한 내 표정에 ‘6월부터 벤처 확인(인증) 다 해준다는 걸 알고 왔다’라면서 자신이 지역 노래방 연합회 간부를 맡고 있고, 연합회 대표로 벤처(확인)인증을 받으러 왔다는 말을 전했다.  

    

 벤처기업 업종 규제가 풀린 건 사실이다. 그동안 벤처기업으로 확인(인증) 신청조차 할 수 없었던 부동산 임대업, 미용업, 노래방 등 23개 업종이 벤처 확인(인증)을 받을 수 있는 업종으로 개편됐다. 그는 연합회 간부답게 보도자료 내용을 보고 한걸음에 협회로 찾아온 것이다. ‘이제 노래방도 벤처인증을 받아 정부 혜택을 받아야겠다’라는 민원인을 회의실로 안내하고 시원한 음료수로 그에게 뿜어 나오는 열기를 식혔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외모와는 달리 그의 속 모습은 순수 청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얼마나 기대하고 한걸음에 달려왔을까?’ 정부 정책 발표 후 하루 만에 찾아온 민원인은 내 기억으로 처음 있는 일이다. 보도자료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그는 노래방이면 벤처기업 확인(인증)을 다 내어주는 줄 알고 하루라도 빨리 노래방 종사자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사명감 없이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에 용기를 낸 것이다. 

    

 정부에서 벤처 업종 규제를 없앤 이유는 어떤 업(業)이든 혁신적 아이디어와 신기술도입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한다면 업종에 상관없이 지원하고 육성하겠다는 의지였다. 다만, 제도가 시행되기 전 보도자료만 경쟁적으로 뿌릴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을 일반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정책 홍보성 보도 내용에 제목만 보고 막연히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막상 들여다보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며 운 좋게 해당된다 해도 준비할 것이 많아 결국 일부에게만 지원되는 웃지 못할 립서비스로 남는 지원정책이 적지 않다.   

  

 오신 분에게는 보도자료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고, 내 명함을 건넸다. 앞으로 이런 내용을 또 보게 되면 먼저 전화 상담해드릴 테니 꼭 연락 달라고 당부했다. ‘우리 같은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지도 못하는 제도를 다 해줄 그것처럼 하지나 말라 하쇼’ 라고 뒤돌아 갔지만,  당당했던 그의 어깨가 축 처져 보였다.  조금 전 사무국으로 들어왔을 때 희망 가득했던 눈빛을 내가 다 꺼버린 것 같아 씁쓸한 기분으로 상담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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