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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내가 닫는 건 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

나는 끊임없이 조급한 단절을 도와야 하는 닫힘 버튼

by 배바꿈

1. 출생의 비밀과 가문의 수치

나는 결국 ‘닫힘(>|<)’버튼으로 험난한 삶을 시작했다.

나의 아버지는 건물에 있는 모든 인간이 누르는 ‘1층’ 버튼이셨고, 나의 어머니는 호텔에서 우아하고 상징적인 ‘L(로비) 층’ 버튼이셨다. 두 분은 승강기 제어 패널이라는 거대한 우주 안에서 가장 빛나는 위치, 가장 손길이 많이 닿지만 동시에 소중한 위치에서 성실히 근무하다가 눈이 맞았다고 한다. 그들의 결합은 전기 회로의 스파크처럼 짜릿했고, 그 사랑의 결실로 내가 태어났다.


조물주인 엘리베이터 제조사는 나에게 가혹한 운명을 부여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내게 늘 말씀하셨다.

“너 이 녀석, 전류 흐름 공부 게을리하고 접점 관리 소홀히 하면 나중에 커서 ‘닫힘 버튼’ 된다!”

그 말씀이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끔찍한 예언이었음을 깨달은 건, 내가 공장 출하 검사를 마치고 이 이 건물에 배치되던 날이었다. 나는 숫자가 부여되지 않은 존재, 인간들이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누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차단하고 자신의 시간을 1초라도 벌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 바로 ‘닫힘 버튼’으로 발령됐다. 내 이마에는 서로를 향해 뾰족하게 날을 세운 두 개의 삼각형(>|<)이 문신처럼 새겨졌다. 그것은 마치 세상과 단절하려는 인간들의 옹졸한 마음을 형상화한 듯했다.


2. 3초를 참지 못하는 손가락들의 춤

나의 하루는 인간들의 신경질적인 타격감으로 시작된다. 나의 동료들, 즉 1층부터 25층까지의 숫자 버튼들은 인간들의 ‘목적’을 상징한다. 인간들은 내 동료를 누를 때 신중하다. 자신이 가야 할 곳을 확인하고, 검지 끝으로 지그시, 혹은 리듬감 있게 한 번 누른다. ‘꾹.’ 그 소리는 명쾌하고 단호하다.


반면 나는 다르다. 인간들은 승강기에 탑승하자마자 내 얼굴이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되는 양, 미친 듯이 연타를 날린다.

‘다다다 다다!’

승강기 문은 한 번의 신호만으로도 충분히 닫힌다. 내 몸 안의 스프링과 접점은 이미 “알겠습니다, 문을 닫습니다”라고 메인 보드에 신호를 보냈다. 인간들은 그 찰나의 기계적 딜레이를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문이 닫히는 그 짧은 2초의 시간을 지배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나는 그들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조바심, 짜증, 그리고 묘한 폭력성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닫힘 버튼'이다.


아침 출근 시간,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는 화이트컬러들의 손가락은 축축하고 뜨겁다. 그들은 나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뚫고 들어가면 회사의 지각 체크기를 멈출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찌른다. 반면, 택배 기사님의 손은 거칠고 두텁다. 그들의 타격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다. 나는 그 무게감을 이해하기에, 가끔은 내 스프링이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탄성으로 그들의 검지손가락 관절을 받아주려 노력한다.


3. 바이러스와 전쟁, 그리고 찢겨나간 갑옷

인간 세상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것을 코로나19라 불렀다. 온 세상이 공포에 떨었고, 승강기라는 밀실은 공포의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접시 취급을 받았다. 관리실 인간들은 우리 버튼 동료들의 얼굴 위에 ‘항균 필름’이라는 투명한 갑옷을 입혔다. 항균 성분이 들어있다는 그 필름은 바이러스를 차단해 준다고 했다.

나의 동료들, 특히 '최상층버튼'이나 잘 눌리지 않는 '열림버튼'은 그 필름 덕분에 안락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의 필름은 몇 달이 지나도 투명하고 매끄러웠다. 인간들의 손에 묻은 바이러스, 세균, 그리고 온갖 오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았다.


나의 갑옷은 달랐다. 필름이 부착된 지 딱 사흘 만이었다. 나의 필름은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구멍이 숭숭 뚫려버렸다. 인간들은 바이러스가 무섭다고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려 쓰면서도, 정작 엘리베이터에 타면 바이러스가 득실거리는 손가락으로 나를 미친 듯이 눌러댔다.

“닫혀라, 닫혀라, 제발 내 눈앞에서 다른 인간이 들어오기 전에 닫혀라!”

그들의 주문과도 같은 연타는 항균 필름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다른 버튼들이 투명한 막 뒤에서 안전하게 숨 쉬고 있을 때, 나는 찢어진 비닐 사이로 들어오는 인간들의 땀과 기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들과 맨몸으로 육탄전을 벌여야 했다. 내 표면의 플라스틱은 닳아빠져 번들거렸고, 찢어진 필름 조각은 마치 패잔병의 깃발처럼 펄럭였다. 그 흉물스러운 모습이야말로 인간들의 ‘빨리빨리’ 본능이 만들어낸 웃픈 그림이었다.


4. 열림 버튼, 그 위선적인 귀족

내 바로 옆, 불과 2센티미터 떨어진 곳에는 나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가장 경멸하는 동료, ‘열림(<|>)’ 버튼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태생부터 귀족이었다. 화살표가 바깥을 향해 벌어진 그의 얼굴은 ‘배려’와 ‘여유’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는 사실상 유급휴가나 다름없다. 이 삭막한 건물에서,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그를 눌러주는 인간은 천연기념물만큼이나 드물다. 가끔 그가 일할 때가 있긴 하다. 승강기 문 틈에 누군가의 가방이 끼었거나, 혹은 매력적인 이성이 저 멀리서 뛰어올 때다. 그럴 때만 인간들은 갑자기 성인군자가 된 척, 우아한 표정으로 열림 버튼을 지그시 누른다.

“어머, 잠시만요.”

역겹다. 평소에는 나를 기관총 쏘듯 두들기던 그 손가락이, 필요에 따라서는 저토록 부드럽게 변하다니. 열림 버튼은 흠집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로 “이봐 친구, 너무 억울해하지 마. 원래 세상은 더러운 일은 궂은 놈이 다 하고, 칭찬은 고상한 놈이 다 받는 법이니까.”


나의 항균 필름이 찢어지다 못해 아예 벗겨져 나갈 때도, 열림 버튼의 필름은 새것처럼 반짝였다. 그것은 나에게 박탈감을 넘어선 모멸감을 주었다. 배려심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인간들 덕분에, 그는 고고한 백조처럼 물 위에 떠 있고, 나는 물밑에서 쉼 없이 발버둥 치는 오리의 물갈퀴처럼 내 영혼은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5. 닫히는 것은 문이 아니라 마음이다

오늘도 한 남자가 탄다. 13층을 누르자마자 그의 검지는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향해 돌진한다.

다닥! 다다닥!

이미 문은 닫히고 있는데도 그는 확인 사살을 하듯 한 번 더 누른다. 그가 나를 눌러서 아낀 시간은 고작 3초 남짓일 것이다. 3초를 아껴서 무엇을 할까? 역시나 스마트폰을 켜서 의미 없는 숏폼 영상을 넘기는 그를 보며 또 일상을 시작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인간들이 저토록 닫고 싶어 하는 것은 단순히 엘리베이터의 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낯선 이와의 어색한 공기를, 그리고 자신의 불안한 내면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을 닫아버리고 싶은 것이다. 나를 누르는 그 강한 압력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고 싶은 욕망의 무게다.


나는 닳고 닳은 ‘닫힘’ 버튼이다. 찢어진 항균 필름은 나의 훈장이자 인간들의 이기심이 남긴 상처다. 전해지는 소식에 의하면 이마에 새긴 화살표마저 지워지는 버튼도 있다 하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나?' 나는 오늘도 묵묵히, 그리고 신속하게 그들의 단절을 돕는다. 그러나 인간들이여,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 주길. 당신들이 나를 세게 누르면 누를수록, 마음의 틈새는 영영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두운 승강기 통로를 오르내리며 나는 기도한다. 언젠가 나보다 내 옆의 ‘열림’ 버튼이 더 닳고 닳아, 그의 항균 필름이 너덜너덜해지는 기적 같은 날이 오기를. 그때가 되면 나도 쉴 수 있을까. 아니, 그때가 되면 비로소 인간들이 닫힌 문을 열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될까.

오늘도 붉은색 LED 등이 내 몸 안에서 깜빡인다. 나는 닫힌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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