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위에 쌓인 40주년을 기다리며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 하루 종일 불편하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다 한다고 덤벼들었던 골프는 구기 종목 중 가장 넓은 경기장에서 가장 작은 홀에 공을 넣는다는 독특한 매력에 잠깐 빠졌지만, 금세 흥미를 잃었다.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고, 왼손잡이로 시작한 탓에 내겐 유난히 불편한 운동이었다.
그 무렵, 절대 입문할 것 같지 않던 친구가 희망퇴직 후 골프를 시작하더니, 다른 친구들을 단숨에 따라잡았다. 20대엔 노래방이 우리의 아지트였다면, 이제는 스크린 골프장이 새로운 둥지가 되었고, 대화 주제도 골프 이야기가 많아졌다. 골프를 배우라며 권유했던 내가 오히려 골프를 즐기지 않고 실력도 형편없다 보니, 예전보다 친구 모임에 자주 빠지게 되자 내 기준에선 술잔 기울이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을 골프가 데려간 셈이 돼버렸다.
예전엔 회비를 모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었다. 이제는 체력도, 시간도 예전 같지 않다는 이유로 지금은 단톡방으로 소통하다가 누군가 모임을 제안하면 시간이 맞는 친구들끼리 만난다. 가끔 펜션을 빌리거나 비는 친구 집에서 밤새 카드게임을 하기도 한다. 골프가 우리를 다시 모아주었지만, 가끔은 마주 앉아 옛날처럼 웃고 떠들던 시간이 그립다.
37년 지기, 아무 이유 없이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친구가 내게는 다섯 명이나 있다. 이중 뒤늦게 골프 맛을 알아버린 친구는 우리 중에 가장 먼저 취직했고, 연애와 결혼까지 늘 앞장섰다. 나를 비롯해 다른 친구들이 결혼할 때마다 함진아비로 맹활약했던 녀석이다. 머리에 가마가 두 개어서 결혼식을 두 번 올리게 됐다고 주장하는 친구도 있다. 네 자녀의 아빠가 된 그는 아이들에게 든든하고 체력 좋은 스폰서로 활동 중인데 얼마 전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며 기분을 한껏 냈다. 또 다른 녀석은 나와 중학교, 고등학교, PC방 사업, 직장 생활까지 함께 했는데 군번이 딱 한자리만 다른 논산훈련소 같은 내무반 동기이기도 하다. 비혼 친구도 둘 있다. 한 녀석은 대기업에서 꿋꿋하게 견뎌내며 골프여행을 낙으로 삼고 있고, 두 번째 녀석은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수술 후 회복해 우리 모임의 회장까지 맡았던 친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다섯 친구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들은 모두 숱한 세월을 견디며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3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날이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곁을 지켰다. 이토록 오랜 세월 변함없는 친구들이 내게는 기적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선물들이 해가 갈수록 더 깊어진다. 올해 도 벌써 절반이 지났다. 서로에게 생일축하 인사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곧 38년, 그리고 40년 지기가 된다. 앞으로도 서로의 곁에서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으며 늙어가길 바란다. 고마운 녀석들이 있는 단톡방에 우리의 40주년 이벤트를 제안해 봐야겠다. 이 소중한 우정이 영원하길 그리고 그들에게 '이런 친구'로 기억되길 바라며 아래 글을 마음 깊이 새겨본다.
이런 친구가 되게 하여 주소서
비겁하지 않으며, 비굴하지도 않고
물러서지 않으나, 미련하지 않으며
허식된 위장보다, 솔직한 모습으로
미워하지 않으나, 잘못을 지적하고
속이는 웃음보다, 속아주는 지혜로
어려움을 당할 때, 피하지 아니하며
약하면서 강하고, 강하면서 온유한
친구로 친구 다운, 친구로 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