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흔드는 데시벨, 그리고 나의 사춘기 짜릿한 일탈
우리 집 서열을 목소리 크기로 따지자면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는 사춘기 막내딸이 으뜸이다. 아이의 방문을 살짝 열고 그저 '방 청소할 때가 되지 않았냐'라고 물었을 뿐인데 방문 틈으로 나오는 소리는 아파트 전체를 뒤흔들 기세였다. 세 번째 사춘기, 마치 인공지능의 딥러닝처럼 첫째 딸 보다 둘째 아들이 둘째보다 셋째 딸의 질풍노도는 스스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더군다나 나는 책 문장 하나, 드라마 한 장면에도 눈물을 짜고 있는 갱년기 아니던가? 막내가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행동을 해도 달리 어찌할 수 없는 갱년기 호르몬에 휩쓸린 감정노예가 되고 있었다.
막내와 달리 나는 조용하고 침착한 사춘기를 보냈다. 어디서 구했는지 기억이 없는 '비밀일기' 책을 보고 주인공 '아드리안 몰'의 일기를 흉내 냈다. 초등학교 방학 숙제로 썼던 그림일기를 제외하면 스스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중학교 2학년 딱 막내딸 나이였다. 막내가 방문을 쾅 닫으며 소리를 지르는 순간, 일기장 속에 담겨 있는 나의 작은 일탈, 그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 역시 어른들 몰래 꾀를 부리며 작은 반항을 일삼았다. 다만 내 방식은 좀 더... 교묘했을 뿐이다.
중학생이 되고 처음 영어를 배우면서 길거리 간판 읽는 재미가 쏠쏠했던 적이 잠깐 있었다. 영어수업이 문법 위주로 진행되면서 새로운 언어에 대한 재미는 그저 스치는 바람이 되고 있을 무렵 '재귀 대명사'가 날린 카운터펀치를 맞고 영어와의 짧았던 인연을 끊어버렸다. 이후 고달픈 학교 생활이 이어졌다. 학급담임이 영어 과목을 맡고 있던 터라 우리 반 학생은 '영어책 본문을 외우지 못하면 집으로 보내주지 않는다'는 담임선생의 독재가 있었는데 오히려 버티고 있는 나로 인해 담임선생의 퇴근이 늦어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하루라도 매를 맞지 않으면 엉덩이에 가시가 돋는 사춘기 성장의 고통을 맛볼 수 있었다.
영어와 담임선생은 나의 공포 대상 1호였다. 수업 시간 내내 담임선생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날도 4교시에 영어수업이 있었다.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쿵쾅거리고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오늘은 또 뭘 물어볼까, 무슨 꾸중을 들을까, 손바닥을 때릴까, 엉덩이를 때릴까' 바짝 긴장하고 있을 때 머릿속에서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2교시 끝나면 아프다고 하고 조퇴를 신청하면 되잖아!' 양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리던 나는 결국 후자를 택했다.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교무실문을 두드렸다. 담임선생이 사태의 심각성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얼굴근육을 모두 동원해서 최대한 우그러뜨린 다음 조퇴를 신청했다. "안돼! 양호실에서 잠시 쉬었다가 교실로 가!" 담임은 교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나에게 명령했다. 수업시간에 "얘들아 내 미소가 천사 같지 않니?" 라며 선생님이 물음을 던졌을 때 나는 '예"라고 답했었는데 그날 이후 절대 대답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날이다.
담임은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며 영어사전을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양호실에 가서 사전을 보여주면 당신이 보낸 학생인 줄 알 거라 하셨다. 담임은 아끼던 영어 사전을 청바지 천으로 씌어서 다녔는데 수업 때마다 자랑하던 그녀의 시그니처였다. 나는 청커버 영어사전을 받아 들고 교무실을 나와 양호실을 슬쩍 지나쳤다. 그리고 곧장 교문 수위실로 향했다. '아저씨 이 OO 선생님 영어사전인데요 지금 수업 중이라 조퇴증을 못 끊었다고 맡기고 가라 하셨습니다.'라고 둘러댄 뒤 학교를 빠져나왔다.
한적한 등굣길을 걸어 나오는데 지끈거리던 머리가 씻은 듯 맑아졌다. 등 뒤로 싸늘한 바람이 불었지만, 동시에 가슴 한쪽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내일 벌어질 끔찍한 채벌보다 순간의 자유를 맛볼 수 있었던 짜릿한 일탈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무서워서였을까, 아니면 영어가 너무 어려워서였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보다는 '한 번쯤 규칙을 어겨보고 싶다'는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이 더 컸던 것 같다. 모범생 코스프레에 지쳐있던 나에게 그 작은 일탈은 숨통이 트이는 해방구였다.
일탈이 불러온 후폭풍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날 저녁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명확히 알고 계셨고, 내 종아리는 파리채 모양으로 부풀어 올랐다. 맞는 내내 어머니가 파리채 손잡이로 분노를 폭발하지 않았음에 감사드렸다. 그렇게 1년을 버틴끝에 담임선생과 작별할 시간이 왔다. 애국조회 시간, 새 학기 반 편성과 각반 담임이 발표됐는데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각 학년 별 1반~16반까지 있었던 그때, 새 학년 나의 담임으로 그 선생님 이름이 다시 읊어졌기 때문이다. 절망에 빠진 내 표정을 보더니 씨~익 웃던 선생님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의 나는 두렵고 막막했지만, 지금은 안다. 사춘기의 소란과 반항도 결국 지나가는 성장통이라는 것을. 막내의 큰 소리와 반항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거라는 것을. 내 일탈이 청커버영어사전 하나로 끝났던 것처럼, 막내도 언젠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른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 역시 그 시절을 거쳐 지금의 아빠가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녀석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무슨 소동이 벌어질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갈 것인지 궁금하면서도 살짝 걱정도 앞선다. 나의 보름딸! 갱년기 vs사춘기 웃으면서 잘 보내보자 응?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