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닫힌다, 고로 존재한다.
아버지는 건물의 얼굴 '1층' 버튼, 어머니는 우아한 'L(로비) 층' 버튼이다. 승강기 제어 패널이라는 거대한 세상, 가장 빛나는 자리에서 눈 맞은 두 분은 데이트를 할 때마다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고 한다. 그 뜨거운 사랑의 결실로 내가 태어났건만, 조물주(제조사)는 내게 가혹한 운명을 부여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너 이 녀석, 전류 흐름 공부 게을리하고 접점 관리에 소홀하면 나중에 커서 ‘닫힘 버튼’ 된다!”
그 말씀이 단순한 엄포가 아닌 끔찍한 예언이었음을, 공장 출하 검사를 마치고 이 건물에 배치되던 날 깨달았다. 꼭 달고 싶던 최상층 버튼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꺼림칙한 F층조차 치열한 경쟁이 붙었다. 결국 내 이마에 새겨진 건 숫자가 아니었다.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운 두 개의 삼각형(>|<). 낙인이었다.
나의 아침은 신경질적인 타격으로 시작된다. 출근하는 인간들이 탑승과 동시에 빚쟁이를 만난 듯 나를 연타한다.
다닥 다다 닥!
내 몸속 스프링은 이미 메인보드에 신호를 보냈다. “알겠습니다,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기계적 딜레이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고작 3초를 지배하고 싶어 안달난 인간들. 나는 그들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조바심과 묘한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닫힘 버튼이다.
1층부터 25층까지, 목적을 상징하는 동료들은 검지 끝으로 지그시, 리듬감 있게 대우받는다. ‘꾹-’ 명쾌하고 단호하다. 같은 공간, 같은 직장인데 이렇게 대우가 달라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신세라니, 어머니가 보고 싶다.
출입문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지각상습범이 보인다. 그의 축축하고 뜨거운 손가락은 나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찌른다. 이렇게 하면 지각 체크기를 멈출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반면 택배 기사의 손은 거칠고 두텁다. 그 타격에는 효율적인 배달을 향한 절박함이 있다. 그 무게를 잘 알기에, 가끔은 내 스프링이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탄성으로 그 손가락을 받아준다.
인간 세상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승강기라는 밀실은 바이러스 배양접시 취급을 받았다. 관리소장이 우리 얼굴에 ‘항균 필름’이라는 투명한 갑옷을 입히고는 항균 성분이 바이러스를 차단해 준다고 했다.
기대는 빗나갔다. 내 갑옷은 부착 사흘 만에 걸레짝이 됐다. 인간들은 바이러스가 무섭다며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려 쓰면서도, 정작 그 손가락으로는 바이러스보다 독한 조급증을 내뿜으며 나를 후벼 팠다.
“닫혀라, 제발 저 인간이 타기 전에 닫혀라!”
나의 영원한 라이벌, ‘열림(<|>)’ 버튼을 보라. 그의 갑옷은 몇 달이 지나도 투명하고 매끄럽다. 이 삭막한 건물에서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그를 눌러주는 인간은 천연기념물만큼 드문 탓이다. 흠집 하나 없는 얼굴로 놈이 빈정거린다.
"이봐 친구, 억울해하지 마. 원래 더러운 일은 궂은 놈이 하고, 칭찬은 고상한 놈이 받는 법이니까."
동료들이 투명한 막 뒤에서 안전하게 숨 쉴 때, 나는 너덜너덜하게 펄럭이는 비닐 틈으로 땀과 기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맨몸으로 육탄전을 벌여야 했다. 아니 바이러스보다 조급증이 먼저 나를 갉아먹었다.
오늘도 한 남자가 탄다. 13층을 누르자마자 그의 검지는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향해 돌진한다.
다닥! 다다닥!
이미 문은 닫히고 있는데도 확인 사살하듯 한 번 더 나를 가격한다. 그가 나를 두들겨서 아낀 시간은 고작 3초. 그 3초로 그는 승강기 구석에 기대 숏폼 영상을 넘기며 킬킬거렸다.
어느덧 닫힘 버튼으로 근무한 지 10년을 넘겼다. 그동안 인간의 습성을 지켜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그들이 그토록 닫고 싶어 하는 건 엘리베이터 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타인과의 어색한 눈 맞춤, 낯선 이와 섞여야 하는 공기, 관계의 피로감. 나를 향한 강한 압력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이제 갑옷이 뚫리는 것쯤은 훈장으로 여기기로 했다. 이마에 새긴 화살표마저 지워지는 동료 버튼도 있다 하니, 오히려 다행일지 모른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신속하게 그들의 단절을 돕는다. 다만 기억해야 한다. 3초를 위해 나를 누를수록, 당신 마음의 문도 3초 더 빨리 닫힌다는 것을.
어두운 승강기 통로를 오르내리며 가난한 내 상상을 펼쳐본다.
언젠가 ‘열림’ 버튼이 더 닳고 닳아 지워지는, 기적 같은 날이 오기를.
오늘도 '다닥 다다 닥' 붉은색(>|<) 등이 쉴 틈 없이 깜빡인다.
나는 닫힌다. 고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