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가 말하는 삶의 진
오전 9시. 공포의 도킹(Docking) 시간이다. 출입문 쪽에서 이 과장의 발소리가 다가온다. 터벅터벅. 자리에 오자마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털썩! 내 안착면에 엉덩이를 내던진다.
"끄응-!"
척추(중심봉)가 비명을 지르며 1cm 주저앉는다. 이 과장, 주말 또 뭘 먹은 거야. 지난주보다 하중이 늘었다. 매뉴얼상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 체중은 120kg이라지만, 그건 바른 자세일 때 이야기다. 비스듬히 누워 척추를 꼬고 앉으면 내 허리 관절은 작살난다.
진짜 고문은 지금부터다. 그가 엑셀 창을 띄우자마자, 내 온몸에 미세한 지진이 감지된다.
덜덜 덜덜 덜 덜덜...
왔다. '다리 떨기'다. 그의 오른쪽 다리가 상하로 초당 5회씩 피스톤 운동을 시작했다. 진동은 바퀴를 타고 올라와 좌판을 흔들고, 급기야 내 등받이까지 요동치게 만든다. 내 볼트와 너트가 '제발 그만해! 우리 다 풀려버리겠어!'라고 아우성친다.
옛말에 '다리 떨면 복 나간다'했던가. 이봐 이 과장, 지금 나가는 건 복이 아니라 내 수명이야. 네가 상사 눈치 보며 불안해할 때마다 왜 내가 멀미를 해야 하는 거야. 불안의 진동수가 높아질수록 나사는 헐거워지고, 바퀴는 제멋대로 돌기 시작한다. 이 덜덜거림,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경운기가 따로 없다.
오후 2시, 식곤증이 밀려오는지 등받이를 최대로 젖히고 눕는다. 내 목덜미가 그의 기름진 머리카락을 받아낸다. 바로 그때, 가장 두려운 순간이 닥친다. 엉덩이 쪽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압력과 미세한 떨림.
피슈우우-
괄약근으로 정성껏 소음을 잡아낸 가스다. 점심에 청국장 먹었냐? 아니면 제육볶음? 내 좌판은 구멍이 숭숭 뚫린'메시(Mesh)' 소재다. 통기성이 좋다는 건, 네 엉덩이에서 나온 그 독가스가 필터링 없이 내 속으로 스며든다는 뜻이다. 나는 공기청청기가 아니라고 이 과장!
참다못해 고향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진짜 못 해 먹겠다. 사무용 의자는 꿈도 꾸지 마라. 하루 종일 엉덩이에 깔려 다리 떨기에 시달리다가 방귀까지 맡아야 하는 신세라니."
한바탕 쏟아놓고 나서야 친구 소식을 물었다. 녀석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이력서 넣어뒀어. 헤드헌터한테 비용도 두둑이 챙겨줬고."
"오, 진짜? 잘 됐으면 좋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달랐다. 임산부 배려석이면 핫핑크 좌석에 따뜻한 온기만 받으면 되는 자리 아닌가. 나처럼 메쉬 구멍으로 독가스를 들이마실 일도 없고.
전화를 끊었다. 이 과장은 여전히 덜덜거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이 과장의 엉덩이 무게를 묵묵히 받아냈다. 좋은 자리가 뭔지도 모르고 취업했던 그날이, 새삼 원망스러웠다.
"야, 이 과장! 너 일 처리 이따위로 할 거야?"
부장님의 호통이 날아온다. 순간 이 과장의 다리 떨기가 '진도 7.0'의 강진으로 돌변한다. 덜덜 덜덜. 그는 나를 잡고 이리저리 비틀며 불안해한다. 젠장, 나까지 정신이 혼미하다.
저녁 10시. 사무실 불이 하나둘 꺼지면 비로소 잠잠해진다. 다들 퇴근했는데 이 과장만 남아 모니터 불빛을 받는다. 이제 다리 떨 힘도 없는지 축 늘어져 있다. 퇴근하지 못하는 그의 엉덩이가 오늘따라 천근만근이다.
나는 안다. 지금 나를 누르는 이 무게가, 주말에 먹은 치킨 무게가 아님을. 대출이자, 학원비, 그리고 내일도 버텨야 하는 삶의 무게. 그 모든 고단함이 엉덩이를 통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는 조용히 중심봉의 압력을 조절한다. 삐걱거리는 비명을 죽이고, 굽은 등을 조금 더 단단하게 받쳐준다.
그래, 마음껏 떨어라.
당신의 불안이 조금이라도 해소된다면 나사 몇 개쯤 풀려도 좋다. 대신 방귀는 좀 참아 주시라. 나도 숨 좀 쉬고 살자, 이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