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나의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병명 중 하나는 불면증이다. 밤에 잠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자다가 깨면 잠이 안 오는 것이다. 깊은 잠을 들지 않으니 잠든지 2시간 정도 지나면 깬다. 잠은 점점 사라지고 생각은 점점 많아진다.(어제 한 말들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다가 냉장고에 남은 음식을 떠올리기도 한다.)
일어나서 뭔가를 할 수도 있지만 주로 생각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본다.(어짜피 아침이 되면 모두 거품처럼 사라질 생각들을 되새김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 나를 사로잡은 생각은 나는 언제 죽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물론 때가 되면 죽겠지만 그 때가 언제일지 추측해 본다.(평균 수명에서 내 나이를 빼는 간단한 방법도 있지만 남은 시간은 심리적으로 얼마나 빨리 지나갈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이 순간처럼 느껴진다면 앞으로 남은 날도 순간처럼 흘러갈 것이다. 유칼립스 입을 먹은 코알라처럼 나는 하루종일 가수면 상태를 유지한다.(일상이 꿈을 꾸는 것과 같고 꿈이 일상처럼 느껴지는 상태가 계속된다. 몽롱한 이 기분도 좋지만 가끔은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얼음을 깨물면 아사삭 하고 부서지듯 강하고 분명한 느낌을 찾고 싶다.
병원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면 사람들의 행동은 느리고 말수가 줄어들고 잠 자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마치 그동안 못 잔 잠을 다 자고 앞으로 잘 잠까지 미리 자는 듯하다.
잠과 시간을 저축할 수 없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잠을 미리 저축할 수 있으면 그토록 피곤하지도 않을텐데 말이다. 시간을 저축할 수 있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병원에서의 시간은 회복시간이라 부르는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3년이나 4년 그리고 몇십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저 앞 서 있는 구부정한 노인도 70년이 넘게 살아왔고 창 밖에 허술한 나무도 100년이 넘은 것들이 수두룩하다.(사람들은 최근 시간을 잘게 쪼개는 것을 선호한다. 누구도 오랜 시간동안 이루어 낸 것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고궁 옆에 패스트 푸드점은 시간의 변화를 보여줄 뿐이다.
잠은 인간이 살아서 경험하는 죽음의 시간이다.(잠들어 있는 시간은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음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잊혀진다는 것은 죽음의 영역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나는 매일 자면서 죽는 연습을 하는지도 모른다. 내일을 살 수 있다고 믿음은 오늘의 불안함을 견디는 힘이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인간을 또 다른 절망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내일은 희망이자 절망의 다른 이름이다. 환자들은 퇴원을 기다리지만 퇴원은 또 현실의 불안을 품고 있다. 병원에서의 내일은 예측 가능한 하루이기는 하다.)
선택의 여지가 많다면 우연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운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운명이라고 무겁거나 심각한 것만은 아니다. 우동집의 메뉴는 우동 뿐이고 김밥집의 메뉴가 김밥인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내가 얼굴을 다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우연이며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