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동해 바다 보러 가지 않을래?
별 보러 가자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은
밤 하늘이 반짝이더라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네 생각이 문득 나더라 어디야
지금 뭐 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가볍게 겉옷 하나 걸치고서 나오면 돼
너무 멀리 가지 않을게 그렇지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작사: 적재
▲ 동해바다 봉포해변 동해바다 봉포해변 ⓒ 정무훈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바다를 만나다
아빠! 바다 보고 싶어~
코로나가 시작되고 우리 가족의 집콕 생활이 1년이 되었다.
뭔가 탈출구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하지만 여행은 아직도 아득해 보인다.
자동차 트렁크에 캐리어를 가득 채우고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티격태격하면 떠나던 가족 여행은 이제 사진 속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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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성화를 핑계 삼아 아침 햇살 가득한 날 가족들과 자동차를 타고
무작정 동해 바다를 향해 출발했다.
"그래. 떠나자. 동해 바다로~"
우리가 쉴새없이 달려 도착한 곳은 강원도 고성의 고즈넉한 봉포 해변이다.
▲ 동해 봉포해변 동해 봉포해변 ⓒ 정무훈
여행은 출발하는 순간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우리 가족은 요즘 심리적 불안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다같이 생활하다 보면 마음이 점점 우울해졌다. 이럴 때는 탁 트인 자연에서 한숨 돌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도시를 벗어나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몸은 잘 알고 있다.
양양 고속도로가 한산해서 서울에서 고성까지 세 시간 만에 도착했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비현실적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닷가 카페는 한적하고 카페 주인이 뜨겁게 내려 준 커피는 은은하고 향기로웠다. 파도 소리가 봄 노래처럼 평온했다. 바다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이 파도의 변주를 이어가고 있었다. 인적 드문 한적한 겨울 해변에서 파도가 지워가는 발자국을 바라보며 천천히 거닐었다.
▲ 강원도 동해 봉포 해변 ⓒ 정무훈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으니 바다 바람에 책장이 스르르 넘어갔다. 이 느긋함과 나른함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아들은 파도와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가 심심했는지 야구를 하자고 나를 불렀다. 하얀 야구공이 동그란 구름처럼 날아 올랐다. 하늘 높이 야구공을 던지며 시리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공을 던지며 크게 소리 치니 심장 박동수가 올라가고 더 생생하게 숨이 쉬어졌다. 숨 쉬는 것만으로 상쾌한 푸른 공기의 맛이 느껴졌다. 딸은 여기저기에 서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바다 풍경을 담고 있었다.
▲ 동해 봉포해변 동해 봉포해변 ⓒ 정무훈
커피를 마시며 책을 천천히 읽는다. 그러나 자꾸 시선이 바다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느라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파도를 쫓으며 한참을 뛰던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성화다. 아이들은 데리고 근처 작은 해물 뚝배기집으로 향한다. 예전 같으면 손님으로 북적일 식당에 지금은 빈자리만 가득하다.
식당에 들어서자 주인이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이해 준다. 동해 바다의 맛이 식탁 가득하게 차려진다. 맛깔스러운 젓갈과 밑밭찬으로 놓여진다. 그리고 싱싱한 해물을 가득 품은 푸짐한 뚝배기를 맞이한다.
그동안 뭉쳐 있던 마음이 맑고 개운한 해물 국물에 슬슬 풀어진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싱싱한 해물을 입안 가득 베어 물고 명란 젓갈, 청어알 젓갈에 파래김을 싸 먹으니 어느새 밥 한공기를 사라졌다. 포만감에 배를 두드른다. 맛있는 식사를 마쳤으니 이제 겨울 설악산을 만나러 가기 좋은 시간이다.
▲ 동해 해물 뚝배기 해물 뚝배기 ⓒ 정무훈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병풍처럼 펼쳐진 울산바위가 설악산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한다. 설악산 초입에서 등산 코스가 아닌 산책길로 접어든다. 커다란 바위가 듬성듬성 놓인 계곡을 따라 걸어 올라가 구름다리를 건너면 조용한 산사가 우리를 기다린다. 경내를 천천히 거닐며 설악산 풍경을 무심히 바라본다. 겨울 햇살에 쌓인 눈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크게 숨을 쉬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갑갑했던 눈이 시원하다.
사찰에서 나와 천천히 계곡을 따라 걸어간다. 목적지도 없고 급할 것도 없는 산책의 시간이다. 겨울나무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고 계곡의 물소리가 청량하게 쏟아진다. 초롱초롱 흐르는 물소리에 봄 소식이 담겨 있다.
▲ 설악산 눈사람 ⓒ 정무훈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터널 같은 어둠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긴다.
마음이 걱정과 두려움이 파도처럼 일렁일 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갇혀 있을 때
푸른 바다에 달려가가서 실컷 소리치고 싶다.
그러면 자연은 나에게 말 없는 위로를 건넨다.
바다는 나에게 깊은 심해는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속삭인다.
산은 나에게 언제나 불안한 세상에서
그 자리에서 살아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토닥인다.
▲ 설악산 강원도 ⓒ 정무훈
늦은 밤 다시 번잡한 도시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마스크를 쓰고 빠른 발걸음을 옮긴다. 사람들의 흔들리는 눈빛처럼 구겨진 전단지가 바닥에서 휘날리고 있다.
잠시 앞마당에 서서 어두운 밤 하늘의 별을 천천히 응시한다. 깊은 어둠 속에 하얀 은하수가 작은 고래처럼 아스라하게 빛나고 있다. 오늘 바라보는 겨울 밤하늘에는 깊고 푸른 바다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