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우리가 우연히 마주친다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오늘은 뭘 쓸까? 아침을 급하게 먹으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다.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간다. 추위에 손끝이 시린 아침 주머니에서 좀처럼 손이 빠지지 않는다. 횡단보도 앞에는 추위에 잔뜩 웅크린 사람들과 마주친다. 이제 나는 오늘의 글쓰기 출발지점에 서있다. 신호가 바뀌면 무조건 휴대폰에 글쓰기를 시작해야 한다. 신호가 바뀌고 걸으면서 틈틈히 자판을 누른다. 아침잠이 덜 깨서 좀처럼 글의 진도가 느리다.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전광판에는 열차가 3분 후 도착한다는 문자가 뜬다. 지하철이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글을 좀 더 써야 한다. 지하철 안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단 15분이다. 출근하면서 글을 쓰는 것은 마감 시간이 정해진 글쓰기이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지하철 안의 풍경은 언제나 비슷하다. 사람들은 이어폰으로 꽂고 음악을 듣거나 지친 얼굴로 밀린 쪽잠을 자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린다. 어제까지의 나도 저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지하철 안에서 오로지 글에 집중하고 자판을 두드린다. 누구도 나에게 글쓰기 과제를 내주지 않았다.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는 단순하다. 어느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문득 내가 지우개처럼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살면서 나라는 존재가 닳아서 점점 크기가 작아지고 있는 지우개 같았다. 분명히 하루를 바쁘게 살았는데 이상하게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하루하루 자꾸 줄어들고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 출근시간에 나에게 안부를 묻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지하철로 출근하는 시간뿐이다. 그래서 아침에 단 30분 동안 글을 쓰는 것이다.
목적지인 지하철역에 도착하여 직장을 향해 걷는다. 이 순간에도 자판을 멈출 수 없다.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참새처럼 조잘대며 등교하는 아이들이 스쳐 간다. 미처 지우진 못한 피로를 들뜬 화장으로 감추고 출근하는 여자들이 지나간다. 비장한 표정으로 007의 제임스 본드처럼 가방을 들고 빠른 걸음을 내딛는 남자들이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들 사이로 글을 쓰며 내가 걸어간다.
벚나무는 어제와 다름없이 좀처럼 꽃망울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봄은 겨울 속에 숨어 있다. 어느 햇살이 따사로운 날에 하얗고 붉은 꽃대가 올라오고 눈꽃 같은 벚꽃이 필 것이다. 그러면 옆에 나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폭죽같이 벚꽃이 쏟아낼 것이다. 나는 벚꽃이 눈이 되어 날리는 가로수 길을 천천히 걸어서 출근할 것이다.
드디어 회사 건물 횡단보도 앞이다. 아직 붉은 신호등이다. 곧 신호가 바뀔 것이다. 깊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다. 글에 담지 못한 하루가 횡단보도 저쪽에 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일상이 반복될 것이다. 업무를 하고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일을 할 것이다. 저녁이 되면 어두운 얼굴로 노을을 뒤로 하고 특별한 약속 없이 다시 이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며 쓴 글을 지하철에서 읽으며 오늘 나에게서 지워진 것들과 내 삶에서 줄어든 것들을 천천히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