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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Feb 04. 2021

아빠를 기다리는 시간

좋은 생각 공모전

아빠를 기다리는 시간


대한민국 아빠들은 가족과 얼마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남자가 육아휴직을 결정하는 일을 쉽지 않다. 

어느 날 여섯 살짜리 아들이 거실에서 혼자 놀다가 갑자기 물었다. 

"아빠는 언제 시간이 있어?" 

나는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일을 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글쎄. 아빠가 하는 일이 많아서 시간이 별로 없어"

"불쌍하다. 아빠는 힘들다면서 왜 안 쉬어?  나처럼 놀면 재미있는데"

 아들의 한마디에 나는 갑자기 멍해졌다.

 '그렇구나. 아들에게 아빠는 늘 바쁘고 피곤한 사람이구나.'

그다음 날 나는 아내를 설득해서 망설이던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아내는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동안 혼자 감당했던 육아와 가사 노동이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집에서 아이들과 몸은 함께 있었지만 마음은 따로 있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형식적으로 대화를 했고 놀이 시간은 대충 때웠다. 


휴직을 하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즐거워졌다는 것이다. 

평소 소극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아들을 데리고 놀이터로 나가서 동네 꼬마들과 모아

함께 뛰어노는 것이다.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땀범벅이 되어 같이 뛰면서 아들과 나는 마주 보며 활짝 웃는다. 


한바탕을 놀고 나서 집에 돌아와 초등학생 딸아이의 간식을 만든다.

아빠표 떡볶이와 팬 케이크는 딸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와 간식을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을 수다 떤다.

그리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보드 게임을 한다. 

흥분하는 아들과 집중하는 딸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지 못했다. 

함께 하는 시간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행복을 찾아 더 많은 시간을 일했고 그 돈으로 더 많이 소비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지쳐갔고 가족들과 점점 멀어졌다. 


저녁 준비를 하고 나면 야근을 한 아내가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온다.

그동안 우리는 맞벌이하면서 힘들다고 집안일을 서로 미루고 상대방을 배려해 주지 않는다고 

사소한 일로 다투던 날들이 많은 부부였다.

여자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육아와 가사 노동을 감당했던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내도 정말 힘들었겠구나. 이 많은 일을 혼자 다 했구나.'

직장 생활에 지쳐 돌아온 아내에게 잘 해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가족 모두 둘러앉아 먹는 저녁시간은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 


아침이 되면 아들을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딸은 학교로 아내는 직장으로 출근하면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따사로운 봄햇살을 받으며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

바닷빛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여유 있게 카페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일상의 작은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정신없이 달려오다 잊었던 소중한 시간들이 되살아 난다.


내가 원하는 그림을 배우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대학 캠퍼스에 갔다.

교정에서 개나리처럼 활짝 웃으며 지나가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복학생이 된 것처럼 설레는 것은 나만의 즐거움이었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이 소중한 일이지만

어느 순간 나에게 일이 가족보다 우선순위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자연 휴양림의 작은 통나무집을 빌려 캠핑을 갔을 때

아들이 엄마에게 웃으며 조른다.

"엄마, 아빠 맨날 집에 있으면 안 될까? 엄마가 돈 벌고?"

나도 얼른 말을 보탠다.

"아빠도 그게 소원이다."

"아빠가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지?" 아내는 나에게 눈을 흘기면서 웃는다.


이제 아빠를 기다리던 시간은 아빠와 함께한 시간으로 바뀌었다.

아내를 원망하던 시간은 아내를 이해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행복을 기다리던 시간은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는 시간으로 달라졌다. 

가족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저당 잡혔던 시간은 

지금의 행복이 누리는 마법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모든 아빠들에게도 돌봄과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어린 시절 아빠를 기다리다 속절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것처럼

이제 아빠가 된 나를 아이들이 마냥 기다리다 어린 시절을 보낸다면 

가족의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육아 휴직은 아이들에게 아빠를 돌려주는 마법의 시간이고

아내를 다시 만나는 설레는 시간이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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