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에서 만난 삶의 조각들
▲ 피오르 전망대에서 바라본 피오르 ⓒ 정무훈
가슴 시리게 차가운 여름을 만나고 싶다면 노르웨이로 가라. 그곳에서 당신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날 것이다.
누구나 꿈꾸는 여행지가 있다. 몇 년 전부터 노르웨이는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서 어렵게 비행기 표를 구하고 올해 여름 노르웨이로 날아갔다.
자동차로 시작한 여행은 낯선 길에서 시작해서 또 다른 길에서 끝이 났다. 차를 멈추고 바라본 숨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들은 사진으로 담을 수도 글로 남길 수도 없다. 아름다움은 온전히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 노르웨이 도로 요정길 ⓒ 정무훈
상상을 압도하는 자연의 풍경은 가슴 시리게 차가웠다. 비현실적인 풍경은 나에게 경이로움과 충격을 선사했다. 이정표를 놓치고 들어선 길에서 예상하지 못한 풍경을 보고 아무도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산 정상에서 고독한 자유를 만났다.
▲ 노르웨이 산악 도로 산 정상의 풍경 ⓒ 정무훈
그리고 만년설로 뒤덮인 빙하를 오르며 세월이 만든 푸른빛의 거대한 결정들이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는지 경험했다. 깎아지는 절벽에서 장엄한 피오르를 보며 바다와 땅이 만나는 순간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노르웨이에서 자연의 시간은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사람은 그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작은 존재일 뿐이다. 긴 겨울 눈 쌓인 도로는 산맥을 넘지 못하고 뱃길은 얼어붙었다. 그들은 봄을 기다리며 묵묵히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야 했다. 따뜻한 봄 햇살의 간절함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겨울을 버티는 힘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아왔고 지금의 노르웨이를 만들었다.
▲ 노르웨이 빙하 빙하가 흐르는 강 ⓒ 정무훈
나는 지금 그들이 산맥을 넘기 위해 만든 길을 따라 여행을 한다. 한 구비를 지나면 장엄한 폭포를 만나고 한 고개를 넘으면 만년설과 빙하를 만난다.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없는 적막한 숲길을 빙하 강물을 따라 지나간다. 문득 누군가가 그리워질 때 호수 옆에 자리 잡은 작고 평화로운 마을을 만난다.
노르웨이의 작은 숙소에서 머물면서 평온함을 알게 된다. 평온함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다. 노르웨이의 숲과 호수는 있는 그 모습 만으로 마음의 여유를 준다.
▲ 노르웨이 호숫가 마을 풍경 ⓒ 정무훈
북유럽을 여행하면서 '이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생각한다.
북유럽 사람들은 환경, 복지, 교육,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그들은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평등한 삶을 지향한다.
우리 사회의 가치 기준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돈과 소비가 가장 중요한 가치다. 행복이 단순히 돈으로 환산될 수 있다면 오히려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은 결코 돈으로 채울 수는 없다. 소비는 만족을 주지만 행복을 주지 않는다. 소비 중독은 결국 우리를 점점 돈의 노예로 만든다.
더 많이 부와 기득권을 갖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낙오하지 않기 위해 버텨야 하는 사회에서 여유와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도 희망은 남아 있다. 사회는 느리게 변화하고 더디게 진보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한다. 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당신이다. 당신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마치 한 방울의 물방울이 드넓은 바다가 되는 것과 같다.
▲ 바닷가 선착장 여유있는 사람들 ⓒ 정무훈
북유럽에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소비하지 않고 유일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은 바로 자연과의 공존이다. 눈 시리게 파란 하늘과 쉴 새 없이 변하는 뭉게구름, 가슴 깊이 들이마시는 청량한 공기 그리고 숲과 호수가 전해주는 위로와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무구한 세월을 견뎌낸 푸른 빙하를 오르며 생각한다. 인생이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면 고달프고 힘들 것이다. 겨우 정상에 오른다고 해도 그곳은 더 높은 정상으로 가는 봉우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 매 순간 빛나는 보석과 같다면 우리는 정상을 향해 갈 필요가 없다. 매 순간 빛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노르웨이 빙하 빙하 오르기 ⓒ 정무훈
노르웨이의 숲은 일상에 지친 나에게 온전한 휴식을 준다. 투명하고 푸른 강물과 육지에 맞닿은 깊은 바다는 옹졸한 나를 넉넉하게 품어준다. 장엄한 폭포는 쉴 새 없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끝없이 이어진 길은 나에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길을 가다가 차를 세우고 풍경을 바라본다. 이제 여행은 목적지를 잃고 가야 할 방향도 사라진다. 그동안 살기 위해 버텼던 한국에서의 시간이 바람처럼 스쳐 간다.
▲ 노르웨이 산맥 산악길 ⓒ 정무훈
길을 가다 갑자기 울컥 눈물이 흐른다. 경이로운 풍경에 압도된지도 모른다. 힘들게 살아온 시간이 억울해서 서글픈지도 모른다. 무언가 가슴에서 빙하처럼 단단했던 응어리가 서서히 녹아 내린다. 그 응어리가 차갑고 투명한 강물을 따라 천천히 흘러간다. 그 순간 나를 또 다른 자유를 경험한다.
▲ 노르웨이 폭포 폭포수 ⓒ 정무훈
누군가 나에게 노르웨이에 관해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당신은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낯선 길에서 문득 또 다른 자신을 만날 것이다.
숲에 여러 갈래 오솔길이 있는 것처럼, 당신도 행복해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새로운 길을 걸어갈 용기가 생길 것이다. 당신과 함께 노르웨이 숲을 걷고 싶다. 언젠가 내가 만난 노르웨이의 숲을 당신도 만날 수 있기를…."
▲ 공원의 의자 오후 빈 의자 ⓒ 정무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