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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광 May 30. 2022

할당이 친절한 배려라는 착각

여성 할당과 같은 형태의 청년 할당은 같은 맥락에서 배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가령 어떤 정당에는 청년 최고위원이라는 몫으로 한두 자리를 나눠주고 대학생위원회, 청년위원회 등 참 많은 자리들을 만들어 놓지만 과연 '청년'이라는 사람들은 젊다는 공통점 말고는 모든 게 다를 텐데 퉁쳐서 한두 명이 그들을 대표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청년'이라는 할당을 해줌으로써 어쩔 수 없는 제로섬 게임이 항상 존재하는 우리의 사회에서 소위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서의 '청년 할당'을 성취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결론에 도달합니다. 


즉, 대충 25% 정도의 인구를 점유한 가진 소위 '2030들'에게 10% 정도 떼어줄 테니 우리가 할당하면서 약속한 '선'을 넘어오지 마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모 정당의 젊은 비상대책위원장의 답답함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성별과 나이, 출신 등으로 인간을 갈라치는 것은 참 나쁘고 몹쓸 짓입니다. 다만, 어떠한 영역에서 성별이나 나이, 출신 등이 장애물이 되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자기의 분야에서 객관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청년들이 '할당 대상'이 아닌 '건설적 경쟁 대상'으로서 제 역할을 해나가길 진심으로 기대하는 마음이 강하게 드는 요즘입니다.


저 또한 청년이라고 징징거리지는 않으려 합니다. 그것보다는 유능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은 모두 언젠가 죽지만, 그와 동시에 언젠가 본인이 소속된 사회에서 기득 계층이 될 확률이 높고 그것은 시간의 흐름처럼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크게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것저것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살의 조영광보다 30살의 조영광은 이미 많은 것을 '기득'하였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여하튼,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이념과 성향의 스팩트럼 양극단에 계신 분들은 제외하고) 본인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담보하여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할 젊치인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어쩌면 그러한 경험들 조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쌓여가며 기득하는 것일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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