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의 나는 나인투식스 워킹타임을 제외하면 블로그만 했다. 넉 달을 그렇게 하니 빠른 속도로 이웃이 늘었고 업로드되는 새 글에 많게는 200개가 넘는 좋아요와 1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한창 읽고 씀에 빠졌을 때는 회사 화장실에 앉아서도 블로그 생각만 했고, 주말엔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러 친구와 카페에 앉아있는 시간마저도 아까워했다.
하루 24시간 중 워킹타임을 제외하면 머릿속에 온통 온종일 블로그밖에 없었다. 오늘은 뭘 쓸까? 오늘 이걸 다 읽어야 내일은 이걸 쓰겠지? 이번주에는 이렇게 하면 몇 개가 올라가지? 이거 사진 찍으면 그 글에 어울리겠지? 눈을 뜨고 감는 사이 어느 한 곳 곁눈질하지 않고 정말 하나만 했다, 블로그. 아침 7시에 일어나 회사로 출근하고 저녁 6시 퇴근하면 집에 와서 새벽 2-3시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몇 달을 그렇게 사니 오른쪽 눈밑이 격렬하게 떨려왔다. 그래도 그땐, 마냥 재밌었다. 아무튼 재밌고 설레고 흥겹고 다했다.
2년이 지난 현재, 그 블로그는 꾸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령 블로그로 전락했다. 한 달에 한 번 월말 일기라도 남기는 용도로 희망의 끈을 붙잡아보려 했으나 2022년 12월 일기를 2023년 1월 17일 새벽에야 남기는 꼴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마저도 성에 차지 않는 메모 수준으로 압박감에 떠밀려 부질없는 숫자만 채우는 빈 수레 같았다.
야밤에 통화를 하다 대뜸 "도대체 그때와 지금 다른 게 뭐야?"라는 물음에 일말의 지체 없이 대답이 쏟아져 나와 스스로도 적잖게 놀랐다.
"무역회사에서는 객관식이었어. 선택만 하면 됐다고. 물론 그 선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해외 파트너들과 얼마나 유연하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일 처리가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지만. 외국어 능력치가 아니라 적어도 커뮤니케이션에 한해서는 자신 있었어. 그러니 객관식만 잘 풀면 됐던 거야.
그런데 지금은 달라, 책방 일은 주관식이야. 심지어 가끔은 아예 정답이 없어.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니까 이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해도 해도 도무지 독이 차지를 않아. 그 와중에 최대표님은 자꾸만 더 큰 독을 가져와 내밀고는 채우기를 권해. 나는 또 욕심이 나.
그래서 처음엔 분홍 바가지로 물을 붓다 안 되겠다 싶어 기를 쓰고 그릇을 키웠어. 이번엔 은색 세숫대야로 물을 부어, 그래도 안 차니 이번엔 빨간 고무대야를 가져다가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니면서 물을 퍼부어대는 거야. 근데도 독이 안 차. 그니까 끝이 없어!"
"재밌지 않아?"
"재밌어. 그러니까 매달리지? 근데 그 이상 할 기력은 없어."
"그래서 네 독은 계속 차질 못하는구나. 근데 정민아,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뭐?"
"팔은 두 개야. 다른 한 손이 남았잖아? 그걸로 네 독을 채워야지."
"빨간 고무대야라니까? 두 손으로도 겨우 들고 있다니까? 빈 손이 없다고!!"
한밤중에 고요한 방이 울리도록 소리치지만 나도 알고 있기에 한숨을 돌리고 말을 이어갔다.
"방법은 하나야. 팔 근육을 키우는 수밖에. 빨간 대야를 열 번 들어도 지치지 않을 만큼의 근력을 키우는 거지. 그래서 밑 빠진 독 채우면서 동시에 내 독에도 물을 붓는 거지."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내가 하려던 말이었어."
"알아, 근데 알아도 안 되는 게 있어. 그게 아직너와 나의 차이겠지. 그러니 너는 그만큼 벌고 나는 이만큼 버는 거겠지. 채찍 고마워."
"채찍이 아니라 응원이야!"
"채찍이야. 근데 필요한 말이었어."
"네 속도대로 하면 돼. 괜찮아."
"아니, 나도 너만큼 벌고 싶어. 그만큼 벌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 봐."
"떡국 먹고 한 살을 더 먹긴 먹었구나. 그런 생각을 다하고. 기특하다!"
동시에 웃음이 터져 한참을 웃었다. 그래,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 또한 기특했다. 그런데 항상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앞으로도 작아질 리 없는, 커져만 가는 밑 빠진 독에도 출렁출렁, 나의 독에도 찰랑찰랑 물을 채우는 2023년이 되도록 근육을!
전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폰 액정이 am 1:00으로 반짝였지만 노트북 앞에 앉아 막 마친 대화를 정리했다. 말은 단숨에 증발되고 단발에 사라지지만 글은 사진처럼 삭제를 누리기 전까지 그대로 남아있으니까.
오늘의 이 대화의 시작은 '5년 사이 완전히 뒤바뀐 서로의 입장'이었는데, 쓰다 보니 5년이라는 시간을 실감한다. 예전엔 신나게 일에 파묻혀 살던 너와 그걸 기다리는 나였는데, 이제는 낮이고 밤이고 신이 나 일하는 나와 그걸 기다리는 네가 보인다. 연락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도, 마무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모두 너의 역할이 되었다. 우리의 지난날을 아는 지인들이 이 상황을 들으면 누구 하나 빠짐없이 기절초풍할 테지만 사실 기록하면서 그보다도 놀랐던 건 너와 나의 차이를 시원하게 인정하고 객관화해서 나에게 적용하고 발전을 꾀하는 나 자신이었다.
못나게 기죽지 않고, 시원하게 내뱉고, 더 나은 내일을 스스로 응원했다는 것. 오늘 내가 한 진정으로 기특한 일은 바로 이것이다. (이 사소한 기특함을 발견하게 만드는 게 글쓰기의 매력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