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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민 Jan 28. 2023

1월 27일 pm11:32 생각기록

밑 빠진 독의 숨은 의미

어젯밤 2시간 가까이 글을 쓰고 자고 일어나 간밤에 쓴 글을 다시 읽었더니 거기엔 밑 빠진 독을 내미는 대표님과 돈이 벌고 싶은 내가 있었다. 기록하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었는데 의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쭈굴함에 글을 내리려다 삭제 대신 오늘밤도 글을 쓰기로 했다.


자꾸만 커지는 밑 빠진 독은 어떤 의미일까? 직장 생활을 할 때, 일을 너무 잘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잘할수록 일이 몰려 나만 힘들어진다는 뜻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이전 회사를 퇴사하며 쓴 글에는 더 이상 회사나 대표 이름이 아닌 나의 이름으로 일하고 싶다는 다짐을 남긴 적도 있다.


최인아책방에서 밑 빠진 독을 채우려 빨간 대야를 들고 뛰어다니는 건 뭐가 다를까? 다행히도 매우 다르다. 객관식만 풀던 전과 달리 이제는 주관식을 풀거나 창작을 해야 하는데 어느 쪽이든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 반복적인 업무를 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에 나를 내던지니 당장은 힘겨워도 문제를 해결하려 애를 쓴다. 그러다 보면 어떤 사물에 대해, 어떤 현상에 대해 정의를 내려야 하고 그게 쌓여 나만의 관점이 생긴다. 좋든 싫든 매번 다른 주제를 다루니 그중에 호불호가 생기고 나의 취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일을 잘할수록 일이 몰려 나만 힘들어진다'는 말은 시대가 변하면서 진리의 경계에서 조금은 벗어났다. 요즘은 일을 잘할수록 개인이 활약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 누군가는 회사가 전부겠지만 누군가는 낮엔 회사에서 일하고 저녁엔 유튜버나 강연자로 활약한다. 일명, 부캐로 삶이 다채로워질 수도 있다. 나를 만드는 건 내가 한 모든 경험이고, 경험이 많을수록 소재가 많아지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조직이나 상사의 무능에 따라 개인의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똑똑하지 못한 조직에서 앞사람은 종일 일만 하고도 야근을 하는데, 뒷사람은 종일 쿠팡에서 100원이라도 더 저렴한 링크를 찾겠다고 엑셀에 가격별 링크를 모우다 칼퇴하는 경우도 봤다. 첫 번째 회사에서 실제로 겪은 일이다. 동시에 유능한 상사는 일을 하고 싶게 만들지만 무능한 상사는 일의 의미를 공유하지 못하고 강요만 하다 사람을 나가떨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모든 애씀이 결과물로 연결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운이 좋게도 최인아책방은 똑똑한 조직이자 유능한 상사를 품고 있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 조직을 위한 헌신으로 끝날 것인가, 개인의 성장으로 연결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것인가, 선택이 가능하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결과가 쪼르르 뒤따라오는 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개인의 노력에 따라'라는 전제 조건의 실행이다. 인스타그램에 비버가 잔나뭇가지와 돌을 모으고 모아 애써 지은 집을 사육사가 비버의 눈앞에서 낱낱이 해체해 없애버리는 짤이 있다. 그때 비버의 황당하고도 당혹스러운 표정이 웃픈데 눈앞에 또 더 큰 밑 빠진 독을 나타났을 때의 내 표정과 완전히 같다.


모든 처음이 그렇듯 밀려오는 부담감에 숨고 싶은 날이 있다. 5만 팔로우를 대상으로 매일 같이 포스팅을 하는 것도, 수 십 명 앞에서 서서 마이크를 잡는 것도, 불쑥 무서울 때가 있다. 빠듯한 시간에 준비가 부족했거나 예기치 못한 상황에 실없는 소리를 하고는 이불킥을 날리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긍정의 힘은 결국 시간의 힘과 같은 말이라고, 네가 쌓아가고 있는 시간을 믿으라던 책방마님의 조언을 떠올린다. 무엇이든 단번에 되는 법이 없듯 시행착오를 겪으며 해나가고 있는 지금을 믿고 끝까지 해 보라고, 일의 재미는 시간을 들여 마침내 일의 본질까지 깊이 들어갔을 때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는 거라고.


어제 이야기의 마무리는 '나도 너만큼 벌고 싶어'였는데 그 또한 속뜻은 그게 아니었다. 점심은 떡볶이, 저녁은 호빵이면 되는 나는 일확천금이 필요 없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나도 너만큼 양쪽 독 모두 물이 찰랑였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너는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연구, 창업, 회사를 병행하던 숱한 날들이 쌓여 회사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독이 마를 날이 없게 물을 부을 수 있는 근육을 가지게 되었다.


서커스에 비유하자면 너는 부단히 노력한 끝에 자유자재로 저글링을 하면서 동시에 그릇을 돌리는 능숙한 단원, 나는 둘 중 하나만으로도 손발이 꼬이는 햇병아리 단원이다. 그만큼 해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당장의 조급함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다.


차이는 여기에서 나는 것 아닐까. 그 시간을 버텨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특히 제일 버티기 어려운 건 부족한 나를 외면하지 않고 참아내면서 계속계속 하는 것이다. 최종 결판이 여기서 난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축구선수, 콘서트장에서 가수, 보험회사에서 보험왕이 빛나는 이유 또한 결국은 시간이다. 우리가 박수갈채를 보내는 건 축구선수가 골망을 뒤흔든 찰나의 순간이 아니라 당시엔 눈앞에 보이지 않았을 이 골을 만들어내기까지 멈추지 않고 피땀 흘리며 노력한 고된 시간에 대한 '동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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