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먹는 건가요?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읽는 사람도 아니었다. 책이 재밌어서 책만 파고든다는 사람들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와 마주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 연예인들이 시시덕거리다 끝나버리는 예능, 하물며 눈만 감고 있어도 스르륵 빠져드는 낮잠의 달콤함. 세상에는 독서 말고도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가.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전문가의 말들도, 전집을 한가득 꽂아 놓으면 한 장은 펼쳐 보겠지.. 했던 엄마의 노력도 모두 내 본능 앞에서는 소용없었다.
언젠가부터 갓생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그즈음 새벽에 일어나 무엇이 됐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행에 뒤처질 수는 없다. 나도 갓생 한번 살아볼까. 기교를 원하지도 않고, 기술도 필요 없다. 독서, 바로 이거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단 하나, 베스트셀러. 독서의 내공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다들 읽으니 나도 한 번 읽어볼까. 속도는 더뎌서 한 달에 한 권도 버겁지만, 우리 엄마가 들으면 이제야 한을 푼다며 버선발로 맞이할 소식이다.
읽다 보니 쓰고 싶어졌다. 그동안 써본 거라고는 일기 몇 줄.
오늘은 친구를 만났고, 커피를 마셨다.
치과에 갔다. 치료도 무섭고, 치료비도 무섭.
녹색어머니회 가는 날
고작 이런 내가 쓸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이 하늘에 닿았나. 클릭질 몇 번을 통해 브런치까지 도달했다. 브런치는 미드 섹스앤더시티에서 주인공들이 모여 이야기가 시작되던 그거 아닌가? 성공한 여성들이 모여 연애와 일에 대해 주저 없이 얘기를 나누며 포크질 하던 그것. 왠지 해장국을 먹는 아점과 다른 것.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읽고, 쓰고 남기다니. 턱이 빠질 일이다. 나만 놀았나. 세상에 쉬운 일 없다지만 글 남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합격해야 자격이 주어지다니.
‘당신에겐 합격 목걸이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블로그를 찾아보고 끄적여본 첫 쓰레기. 당연히 될 리가 없지. 들였던 노력이 적었던 만큼 서운함도 그만큼이다. 다행이다.
하지만 올해 닭띠 삼재도 아니라던데 안 좋은 일이 연거푸 터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죄송하다며 열심히 치료받으라고 하셨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온갖 신을 다 원망했다. 신에게 내 원망이 또 한 번 닿았나. 새로 만난 의사 선생님은 내가 가진 림프종 때문에 내 장수에 방해되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생명엔 지장이 없다니 간절했기에 더 반가운 말이었다. 한 달 만에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암환자가 되었다. 뭐 이런 웃긴 상황이 다 있는지, 지금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때마침 평소 나 혼자 몰래 팬클럽이라고 외치고 있던 이은경선생님의 브런치글쓰기 수업이 열린다고 했다.
이거다!
결심은 했지만, 결제 버튼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 애들 학원비가, 이번 달 생활비가 얼마지. 애들을 위해서는 가볍게 꺼내던 카드지만 나를 위해서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죽다 살아난 내가 아닌가.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은 그랬다.)
띠링.
결제 문자음이 경쾌하다. 질렀다. 이제 시작이다. 시작했으니 다음 단계는 장비를 갖춰야 할 터. 결과물은 어떨지 몰라도 시작만큼은 거창하다. 필기구류부터 컴퓨터에 책상까지 질렀다. 일이 너무 커지는데…. 이제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잘라야지.
대문자에서 이제 겨우 소문자 i 가 된 나는 온라인이지만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걱정되었다. 오프모임도 있다고 하는데 더더욱 걱정이다. 가고 싶지만 가고 싶지 않은 마음.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오픈카톡방도 들어가고, 줌 수업도 들어갔다. 과감하게 얼굴도 까봤다. 다들 무슨 마음으로 왔을까. 신기하게 처음 만나는 거 맞나 싶게 대화가 이어진다. 선생님은 작가님이라고 불러준다. 아줌마에서 작가님이 되는 건 몇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 주, 한 주 글을 쓰고 과제를 남긴다. 매일같이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은데 뭘 써야 할지 고민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사소한 것도 메모한다. 맨날 먹던 떡볶이도, 둘째의 사소한 귀여움도 글감이다. 치료를 위해 받았던 검사에서 느꼈던 수치심도 평소 같으면 짜증 내고 말았을 것이지만 이 또한 글감이 되었다.
브런치 수업 동기들은 서로의 글을 읽어주며 따봉을 남긴다. 다들 처음 써본다더니 은둔의 고수들인가. 어찌어찌 쓰레기 같던 글을 자르고 붙여서 브런치 작가에 합격했다. 하지만 볼수록 내 글이 부끄러워졌다. 그런데 다들 안 볼까 봐 걱정이다. 내 글을 안 봤으면 좋겠는데 조회 수가 안 나올까 고민이다. 다들 구독자도 급등하고 조회 수도 폭발한다. 내가 더 작아지는 느낌. 때려치울까 생각이 들지만, 또 그러기는 싫다.
죽음까지 생각했던 폭풍 같던 가을을 보내고 잔잔한 11월을 맞이했다. 드라마같이 지나간 몇 달은 나를 많이 변화시켰다. 주변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모든 것들이 글감이다. 예쁘고, 못생기고, 이상하게 생긴 도토리들을 모아 매일같이 쓰레기를 만들겠지만 브런치가 허락해 줬으니 남겨야겠다. 다음은 구독자들의 몫. ‘아무도 저를 모르지만 부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던 어느 연예인의 말처럼 나 또한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많이 없으면 좋겠지만 조회 수는 폭발하고 싶어요.’.
정말 못생긴 쓰레기든, 좀 다듬어진 예쁜 쓰레기든 일단 남겨야겠다. 브런치가 발행은 해 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