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없어.”
“너네 에어랩 있어?”
얼마 전 친구 몇 명이 있는 단톡방에 한 친구가 말했다.
한 친구는 있다고 했고 한 친구는 대답이 없다. 둘째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뒤늦게야 나도 쓰고 있다고 답했다. 그 친구는 “그럼 나만 없는 거야?” 라며 흐음… 에어랩이 사고 싶은데 남편에게 얘기해 볼까…라고 했다. 제일 늦게 답이 온 친구는 본인은 머리를 묶는 게 편하다며 아직 에어랩이 없다고 했다. 에어랩 때문에 고민(?)이던 친구는 이윽고 “오빠에게는 너도 있다고 얘기할게… 나만 없다고 그래야지.” 라며 살짝 귀여운 거짓말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에어랩을 샀다고 다시 톡이 왔다. 남편에게는 정말 나만 없다고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친구 생일 겸 해서 남편이 흔쾌히 사라고 했다고 한다. 비싸게 샀는데 아직 컬이 잘 안 나온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톡이었다. 일단 해보니 좋긴 좋은데 과연 비싼 값을 하는지 구매 후에도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이 녹아있는 듯했다. 이미 사용하고 있던 다른 친구와 나는 처음부터 잘 되는 게 어딨냐고 해보면 솜씨는 좋아진다고, 그리고 요령을 터득해야 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아이가 2학년이 되면서 사용하던 키즈폰이 고장이 나서 다소 저렴했던 보급형 스마트폰으로 바꿔주었다. 처음에는 본인만의 스마트폰이 처음 생겨서 그랬는지 대부분의 기능에 제약을 걸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케이스도 고민해서 구입하고 배경화면도 바꾸면서 한참을 신났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마트폰을 가지게 된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늘어가면서 서로의 기종을 알게 되었나 보다. 기능이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르는 아이가 어느 날 말한다.
“엄마 ㅇㅇ이는 아이폰이래.”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또 “ㅁㅁ이도 아이폰이래.”
분명 아이는 나에게 사실 전달만을 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누가 들어도 속내가 뻔히 들여다 보이는 말이었다.
“그래서 뭐?! 아이폰 사달라고?”
“아니, 그냥 그렇다고..”
사달라고 말해봐야 씨알도 안 먹힐 걸 아는 건지, 아니면 무서워서 그랬는지 그 대화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그 다음번에 아이폰에 관한 이야기가 또 나왔을 때 난 아이에게 다른 아이폰을 가진 친구가 또 있는지 물었다. 내 기대와 다르게 아이폰을 가진 친구들이 몇 명 더 있긴 했다. 하지만 친구의 이름을 하나씩 댈수록 아이폰보다 다른 평범한 기종을 가진 친구들이 더 많았다.
“거봐. 다른 친구들도 너랑 똑같은 거 많이 쓰잖아.”
심지어 아이는 선생님도 똑같은 폰을 쓴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더 반가운 목소리로 응수했다.
“선생님도 쓰시는 거니깐 네 거 좋은 거야~선생님이랑 똑같으면 좋지 않아?”
그런가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아니면 더 이상 안 먹힐걸 알았던 건지 아이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나만 없어”의 마법은 최근에 생긴 것은 아니었다. 30여 년 전부터 내가 우리 엄마에게 써먹었던 수법이니까… 옷이나 신발 등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마다 ‘나만 없어.’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나에게만큼은 그 말이 마법의 말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그럼 그 집 가서 살래?!’ 아니면 ‘친구들이 다 하면 너도 다 할 거야?!’ 라며 다시 강력한 펀치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에겐 통하지 않았던 '나만 없어.'의 마법. 우리 집만 예외였던 것일까.
몇 년 전 등골브레이커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고가의 패딩이 유행이었는데 부모의 경제적 상황과 상관없이 또래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으니 기호에 상관없이 나도 가져야 한다는 것. 불행하게도 유행하던 그 아이템은 매우 고가였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았던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꽤나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정말 길거리에는 북쪽을 향한 얼굴 브랜드의 검은색 패딩을 입은 중고생들이 한가득이었다. 당시 나는 학원강사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수업시간이 되면 검정 롱패딩을 입은 김밥 같은 아이들이 한 무리 들어오면 신기해서 본인 것은 구분할 수 있느냐, 바뀌지는 않느냐 물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냐는 듯이 자기 옷은 다 안다며 쿨하게 대답해 줬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유행은 얼마가지 않아 바뀌었다. 숏패딩으로, 롱패딩으로… 참으로 그놈의 유행… 잘도 바뀐다. 그리고 바뀐 유행에 주인을 잃은 패딩들은 부모님 차지가 되었다는 다소 웃픈 이야기도 들었다.
“나만 아이폰 아니야.”
아이가 이렇게 말했더라면 아마 나와 남편은 아이폰을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미 검색에 들어갔을 것이다. 다들 쓴다는데 우리 딸만 안 쓰게 할 수는 없지! 라며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극성 부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 아이만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뜻이 있으니 대쪽같이 참고 견뎌라!라고 말해줄 수 있는 곧은 심지의 부모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아이만 없는 게 아니었기에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아마 아이가 커갈수록 이 고비는 몇 번 더 올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 즈음이면 그 고민이 절정에 닿겠지. (그때가 절정에 다다른 것이라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나만 ㅁㅁ 옷이 없어.
나만 아이폰이 없어.
나만 ㅇㅇ에 안 가봤대.
그땐 무슨 다양한 말로 응수해야 할까. 아니면 현실과 타협해서 가장 싸게 그 다른 친구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을 공수해 줘야 할까.
애들에게든… 어른에게든… 마법의 단어는 맞는 것 같다.
혹시 모르니 나도 남편에게 한 번 써먹어볼까
“여보, 나만 없어….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