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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 Nov 06. 2024

글 쓰기를 잘했다.

고소한 냄새는 덤입니다. 

여느 저녁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 살림에 서툰 주부는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저녁 시간이면 더 정신이 없다. 아니 영혼이 탈출을 했다고 해야 할까.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난리고 동시에 유치원에서 내준 숙제를 혼자서 할 수 없다고 난리다. 게다가 곧 있으면 큰아이까지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더 늦기 전에 저녁식사 준비를 마쳐야 한다. 

주어진 미션.  


햄과 두부 굽기   

국 데우기

밑반찬 덜어서 식탁 차리기


얼핏 보면, 아니 스치면서 봐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하지만 식탁에 앉은 아이가 “엄마!”를 100번씩 부르고 있다면 식사 준비시간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마치 옛 가수(?) GOD의 노랫말처럼.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있네


탄단지를 골고루 맞춰 저녁을 있는 반찬으로 대충 때우려고 했던 나의 꼼수는 둘째와 함께 하자 전쟁터로 돌변하고 말았다. 프라이팬에 잠시 올려놓은 두부는 고소하게 구워지기는커녕 지글지글 타들어가기 시작하고, 아이는 숙제를 빨리 도와달라며 보챈다. 거기에 티브이에서 들려오는 이런저런 심난한 뉴스들까지… 째깍째깍 시간은 너무나 빨리 간다. 이렇게 빨리 갈 거면 필라테스하는 동안 좀 빨리 지나갔으면… 무심하기도 하지. 원망스러울 정도다.

by pixabay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사자성어인가. 설상가상이다. 지글지글 타들어가고 있는 두부에 기름이 부족하다! 추가하려는데 또 소분해 둔 기름을 다 썼다! 큰 통에 있는 기름을 작은 병에 소분해야 한다. 

으챠! 하며 들기름을 드는 순간… 삐끗했다. 물도 아니고, 기름을 싱크대위에 쏟았다. 무엇보다 청소하기 힘들다는 그것. 들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온 주방을 휘감는다. 신혼시절 깨 볶아서 고소하다던데 그것도 아니고 진짜 들기름의 고소한 냄새다. 이 냄새를 좋아해야 하는 건지 처참한 주방의 모습을 보고 울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인형..너는 왜 하필 또 거기 쓰러져 있는거니 ㅠㅠ

하지만 순간 소재라고 생각했다! 어서 빨리 사진을 찍어야 해! 팬 위에서 타들어가는 두부를 뒤로하고, 고소한 냄새를 배경 삼아 핸드폰을 찾아 헤맸다. 어서어서.. 빨리빨리.. 찰칵! 

여전히 아이는 배고프다고 아우성이고, 그 사이 학원에 갔던 큰 아이도 돌아왔다. 난장판인 주방을 뒤로하고 핸드폰부터 찾아 헤매는 내가 참 웃기다. 그래도 다행 아닌가? 이것이 소재가 아니었다면 칭얼대는 아이에게 화가 나고, 기름병 하나 제대로 붙잡지 못한 나에게 분노하지 않았을까.

비록 아직도 많이 어설프지만 참 다행이다. 글을 쓰게 되어서. 그리고 울고 웃는 모든 게 소재가 되어서. 이러다 보면 언젠간 나도 멋들어진 글을 쓰는 날이 오겠지. 


덧붙임.

그날의 두부는 정말 까맣게 타버렸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이븐 하게 타버려서 바삭한 스타일의 두부를 원 없이 먹게 되었다. 애들에게 차마 타버린 두부를 줄 수는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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