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빨리 이거 글 써.’
2023년을 보내며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내가 쓰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독후감, 논설문, 동시와 논문.. 타의로 글을 쓰긴 했었다. 과거의 나는 자의로 글을 쓰는 자는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야만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소박한 나도 소박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가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고작 글 쓰는 것 하나로 뭘 그리 호들갑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요즘은 자존감의 시대 아닌가. 고작 이 하나, 글 쓰기 덕분에 나의 자존감이 콩나물 자라듯 쑥쑥 자랄 수만 있다면 이건 콩나물보다 더 가성비 넘치는 일이 아닐까.
지금 어려운 일을 겪고 있어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글을 써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고작 두어 달 써본 내가 어찌 이렇게 감히 이야기를 할 수 있냐고 하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힘든 일 자체에 매달려 마음을 갉아먹고 있던 것들이 단순히 소재가 된다는 것이다. 힘듦을 소재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듦 속에 있던 내가 그 밖으로 나와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내가 작가가 되어 내가 주인공인 글을 쓰는 것이다. 힘든 상황이 소재가 되고 배경이 되어 글을 쓰고 있자니 힘듦 속에 있던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이가 된 듯하기도 하다. 내가 나이지만 또 내가 아닌듯한.. 아리송한 상황. 어쨌든 그 힘듦 속에 파묻혀있지 않다 보니 마음이 덜 힘들다. 그래서 또 잘 견뎌 낼 수도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웃어도 글감이요, 화가 나도 글감이다. 장난을 치다가 음료를 쏟아 일이 두 배, 세 배로 늘었지만 그 역시 글감이다. 나의 이야기로 말할 것 같으면 아팠던 스토리도 글감이요, 치료 과정도 글감이 되었다.
얼마 전 치료 때문에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게 되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들로 두려워하고 있을 찰나 ‘나중에 써야겠다.’ 며 사람 없는 곳을 피해 이리저리 사진을 남기고 있는 나를 보았다. 두려움에 떨며 들어섰던 병원이었는데 피식 웃으며 병원 문을 나서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저 아줌마 뭐 하는 거야?’라고 이상하게 생각했으려나.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며 아이들이 엄마가 뭔가를 하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냥 엄마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이 아니구나.라고 느낀 건지 내가 요즘 컴퓨터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면 진짜 글을 쓰는 건지,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는 건지… 팩트 체크도 하지 않은 채 “엄마, 또 글 써?”라고 묻곤 한다. 엄마가 웹 서핑만 하는 줄 알았는데 글을 쓰는구나. 뭔가 느낀 게 있는 것인지 아이는 눈치껏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곤 했다. 내가 좋아서 글을 썼는데 아이가 책을 읽게 되다니. 이것이야말로 도랑치고 가재 잡는 효과 아니겠는가.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아이에게 쇼핑하고 있다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되기에 alt+tab 신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3년 마지막날 우리 가족은 분식파티를 했다. 거창하게 제목을 붙이긴 했지만 뭐 별건 없다. 얼마 전부터 남편이 ‘어쩌다 사장 3’을 보면서 늘 먹고 싶다던 집 김밥, 큰아이의 최애 음식 떡볶이, 둘째를 위한 어묵탕까지. 가족들이 좋아하는 분식을 배불리 먹고 볼록 나온 배를 두드리며 동글동글해진 얼굴과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결과는 모두들 대 만족.
큰 행복은 멀리 있다. 대단한 부의 축적, 커리어의 성공, 자녀들의 대입 합격 등… 티브이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실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얼마나 큰 행복인지. 멀리 있기에 가는데 그만큼 시간과, 노력도 많이 든다. 하지만 작고 가까이 있는 행복도 행복이다. 글을 쓰고 있는 따뜻한 집이 있고(비록 난방비 폭탄을 맞아 보일러를 낮춰놓아 그렇게 아늑하고 따뜻하지많은 않다), 워드가 잘 돌아가는 컴퓨터도 있다. 무엇보다 글 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도와준, 감기 걸리지 않고 등원, 등교를 완료한 두 아이들. 이 또한 행복 아닌가. 글을 쓰며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고, 글을 쓰며 불행을 불행이라고만 여기지 않게 되었다.
2023을 뒤늦게 마무리해 본다. 내년에는 주먹만 한 행복의 눈덩이를 조금 더 굴려 보아야겠다. 열심히 굴리고 또 굴리다가 언젠간 저 멀리 있는 산더미만 한 행복을 만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