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야근하는데 아랫것들이 없으면 기분이 나빠

13년 차 엔지니어가 복기하는 악인전 2편

by 행복추구권


악인전 2편의 주인공은 국내 플랜트 건설 현장에서 단기 파견 근무를 하며 만난 전기설계 LE다. 복귀 후 설계부서 근무 당시 국내외 현장의 설계 조직은 각 공종별로 사수인 LE(Lead Engineer)와 부사수인 AE(Assistant Engineer)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현장 근무 당시 나의 사수이자 직위자였던 셈이다.


갑작스레 단기파견을 가게 된 경위는 이렇다.

당시 회사의 사정이 안 좋아져 무급휴직 1개월 제도를 운영 중이었고, 부서 여건에 따라 개인이 신청하면 사용할 수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건설업계의 여건상 현장에 근무하는 직원이 무급휴직을 사용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는데, 앞서 현장에 근무하던 선배가 진급에 누락하며 홧김에 무급휴직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본사 소속으로 근무하던 내가 선배의 휴직 전후로 약 3개월간 그의 땜빵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해외 현장에서 복귀한 지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국내 현장 파견은 처음이었기에 긴장이 많이 되었다.

파견 현장은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고 자차가 없이는 출퇴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발령 첫날부터 차가 없어 선배에게 신세를 져야만 했다.

KTX역으로 선배가 차로 데리러 나와서 함께 현장 사무실에 들어갔다.


거기서 악인전의 두 번째 주인공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된다.

작은 회의실에서 시작된 사수와의 첫 면담.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야근하고 있는데
옆에 아랫것들이 없으면 기분이 나빠.



이 대사는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박혀 떠나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동기가 말했다. "그거 신박한 미친놈이네?"

신박한 미친놈을 만났다는 직감과 함께, 나의 정시 퇴근 권리는 그날부로 압수당했다.


무급 휴직에 들어가는 선배의 휴직 전까지 원룸에서 둘이서 함께 지냈고, 전기설계 LE의 숙소 바로 아래층이었다. 차가 없는 나는 꼭 누군가의 차를 빌려 타야만 출퇴근이 가능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위 층에서 생활하던 전기설계 LE와 함께 출퇴근을 했다.


현장 생활 일주일쯤 지났을까, 점심 식사 후 팀원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에 전기LE가 대뜸 물었다.

"너 현장 생활 한번 해볼래?" 이런 3개월짜리 단기 파견이 아닌 장기로 지낼 생각 없냐는 말이었다.

당황해서 "아직 차도 없고 준비가 부족해서...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는 비웃듯이 말했다.



넌 그렇게 대답하면 50점이야.



이건 또 무슨 말이지? 개인에게 현장 장기파견은 근무지가 걸려 있는 큰 문제인데 그럼 그 자리에서 바로 '네. 알겠습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인가? 상사의 말에는 무조건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그의 계략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말려들고 있었다.


몇 주 뒤, 현장 설계 리더가 찾아와 물었다.

"얘 얘기 다 된 거지?" 전기설계 LE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싸한 기분이 들어 LE에게 묻자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너 파견 연장된다고.
전에 얘기했잖아.



나와 상의도 없이 지난 점심시간의 대화를 '동의'로 갈음해 윗선에 보고해 버린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그 자리에서 말했다.


나는 그의 안하무인에 독단적인 행동에 화가 났지만, 전기설계 LE는 오히려 자기가 더 화가 난 듯 퇴근시간 무렵 "잠깐 보자."라며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일대일 독대 자리였다.

"너 때문에 내가 면이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일방적으로 쏘아붙이는 그에게 지지 않고 할 말을 했다.

"저와 앞서 상의한 내용이 아니었잖아요?"

그러자 그는 "너 옛날에는 어땠는지 알아? 선배들한테 맞기도 했어. 이렇게 까이기도 했다고." 책상 밑으로 내 정강이를 세 차례 걷어찼다.

좁은 회의실 안, 정막을 깨는 둔탁한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소위 조인트를 까인 것이다.



당황해서 굳어버린 나에게 그는 미친 꼰대의 논리를 설파하며 독주를 시작했다.



너 회사가 누구인지 알아?
사람들이 '회사에서 뭐 하래',
'회사에서 어디로 가래', 그러잖아?

그 회사가 누군지 아냐고.
니 윗사람을 바로 회사라고 하는 거야.



그 말은 '짐이 곧 회사이니 내 말을 군말 없이 따르라'였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나랑 상의도 없이 왜 파견을 연장시키려 하느냐'는 나의 생각 자체가 옳지 않은 것이었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선배 한 명이 갑작스레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다. 나와는 한 직급 차이나는 젊은 축에 속하는 선배였다. "화장실 가는 길에 우연히 하는 회의실에서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개소리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났으니 회의실 옆에 지키고 서서 들었겠지? 쥐새끼 같은 녀석.

위로해 준답시고 저녁을 먹자 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회사 인사에서 개인의 의사는 중요치 않다. 까라면 까는 곳이 회사다.'와 같은 꼰망주스러운 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내가 화가 난 포인트는 전기설계 LE의 양아치 같은 행동이었다. 까라면 까는 게 회사인 건 맞지만, 거짓된 말로 윗선에 보고하여 나의 파견을 연장시키려 한 건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얻은 주요한 정보는 이것이다. 당시 내가 파견생활을 하고 있던 국내현장에는 다수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고 크게 2개 파트의 설계조직이 있었는데, 현장이 인력난을 겪으면서 인력운용 문제로 두 조직의 전기설계 LE들이 서로 다투고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전기설계 LE가 어떻게든 나를 현장에 잔류시켜 현장의 인력부족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 것이다.

그제야 내부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방식이 잘못되었다. 나와 충분한 대화도 없이 일관되게 고압적으로 행동하면서 일방적으로 나를 잔류시키려 했기에 내가 반발한 것이고, 트러블이 생긴 것이다.


이 선배는 본인이 겪은 현장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입사 초에 다른 국내 현장에서 근무를 했는데, 당시 현장 사수에게 나처럼 회의실에서 일방적인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그것도 나처럼 조인트를 까인 수준이 아니라 멱살잡이를 당한 채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고.


'그때 왜 가만히 있었지? 그 정도면 감사실에 찌르든지 경찰에 형사고발을 했어야지. 병신새끼인가?'

다시 생각해 보니 조인트를 세 번이나 까이고도 가만히 앉아있던 나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그 당시의 나보다 더 경험이 없었을 테니 그랬을 수도 있다. 이 선배의 입에서 왜 꼰망주스러운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는 이해가 되었다.


이 꼰망주 선배는 나의 퇴사 이후 몇 개월 뒤에 지방에 근거지를 둔 공기업으로 이직을 했다. 알고 보니 저 시기에 공기업 이직을 마음에 품고 기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본인도 건설업계에 질려 떠날 마음을 품고 있었으면서 그런 말을 늘어놓은 건 은연중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도 같다.



나는 그날 이후 남은 파견기간 동안 불편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차 없이 출퇴근이 불가한 현장에서 종종 그의 차를 얻어 타야 했기 때문에 차가 없는 설움이 폭발해서 다음 현장에서 차를 구매하게 되었다.

업무 관련해서 모르는 것이 있어 질문하면 "모르는 부분은 네이년(네이버)에 다 있어"라며 무시했고, "그래도 가르쳐주시면 안 됩니까?"라고 되물으면 "싫어 인마."라며 차가운 목소리로 나를 짓눌렀다. 이후 이 사람과는 모든 대화를 최소한으로 하고자 노력했다.


복귀 전까지 전기설계 LE는 매 순간 까칠하고 짜증스러운 태도로 나를 상대했고, 하위 직급인 나는 별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일로 트집이 잡혀 혼이 난 뒤에 "죄송합니다."라고 용서를 구하면 "많이 잘못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얼굴도 보지 않고 그 대사를 하던 그의 비열한 목소리와 표정이 생생히 기억난다.


직장선배로서 본받을 점이 없었다. 그가 일을 열심히 하고, 일을 잘한다고? 경험이 풍부하고 아는 게 많다고?

사람 같지도 않은 새끼랑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결혼식이 있어 돌아오는 주말에 휴일근무가 어렵다고 말했더니 그가 대답했다.


조사는 꼭 챙겨야 하지만 경사는 그렇지 않다.


나는 미친 꼰대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은 어느 퇴근길이었다. 그날도 전기설계LE의 갈굼에 주눅 들어 걷고 있는데, 당시 여자친구(지금의 아내)가 서프라이즈로 현장 숙소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피폐해진 나는 반가움보다 짜증이 먼저 났다. "혼령인 줄 알았어. 진짜 놀랐다고. 다시는 이런 거 하지 마."라며 소중한 사람에게 화살을 돌려버렸다. 이 일화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모임에서 아내로부터 회자되고 있다.

나의 두 번째 악인은 나의 업무 시간뿐만 아니라, 나의 인성과 소중한 일상까지 파괴하고 있었다.


지옥 같았던 시간이 흐르고 나는 계획대로 본사로 복귀했다. 이 짧고도 강렬했던 '조인트'의 기억은 내가 대기업 건설사를 떠나 공기업으로 이직하게 만든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랫것'이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닌, 사랑하는 이와 반지를 나눠 끼며 내일을 약속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내일의 나를 위해, 그리고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이제는 나를 파괴하는 것들로부터 용기 있게 걸어 나오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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