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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Here Live Here Jul 27. 2018

여성을 유혹하는 바람둥이집(2)

바람둥이집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찾아서 

카사노바의 자서전 <불멸의 유혹>을 펼치며 나는 ‘바람둥이집'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마지막 910페이지를 넘기기까지 카사노바에게는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부모와 살던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멋진 집 없이도, 뚜렷한 직업이나 부 없이도, 오직 커뮤니케이션만으로 유럽 전역을 다니며 무수한 여성들을 유혹한 카사노바가 진정한 능력자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빼어나게 잘생긴 얼굴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또다른 프로토타입 후보는 미국 TV 프로그램에서 본 싱글남들의 집이었다. 해당 프로그램명은 <The Bachelor>로 부유하고 젊은 싱글남의 집에 초청받은 싱글 여성들이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경쟁을 펼치고, 싱글남이 마음에 드는 여성 한 명을 선택하는 구도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나의 관심사는 부유한 싱글남이 자신의 집을 어떻게 꾸미고 사는가였다. 언뜻언뜻 본 프로그램이었기에 총평을 내리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내가 기억하는 싱글남들의 집 스타일은 어두운 톤의 원목이 많이 들어간 클래식한 스타일의 단독주택들이었다.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The Bachelor>가 처음 방영될 당시의 미국, 그러니까 2000년대에는 이와 같은 스타일이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디자인 트렌드였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의 사람들은 선호하지 않는 디자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어느 한 기간을 잠시 풍미한 디자인을 프로토타입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여성을 유혹하는 집(1) - 나도 걸려든 그곳>에 등장한 건축가를 소개하여준 지인이 싱글남의 집을 ‘Bachelor pad’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Wikipedia에서 살펴본 정의는 다음과 같다.  


"A "bachelor pad" is a slang term for a living space owned by a bachelor (single man) that is designed as a collective space (as opposed to individual items) with the purpose of facilitating a bachelor in his daily activities to include but not limited to daily functionality, use of free time, hobbies and interests, entertaining friends, and seducing women." 


“"bachelor pad"는 싱글 남성의 주거 공간으로서 일상의 기능성을 넘어서 여가시간을 사용하고 취미와 관심사를 즐기고, 친구들을 초대하며, 여성들을 유혹하는 그의 일상 활동들을 촉진하는 목적으로 디자인된 집합적 공간을 의미한다.”


이 정의는 싱글남의 일상 활동에 ‘여자들을 유혹'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으며, 집이 ‘유혹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넌지시 일러준다. 집이 ‘유혹의 도구'라니? 상상이 안 갈 수 있는 이 개념을 체계적으로 동시에 진보적으로 정립하여 보여준 곳이 있다. 


1953년에 창간된 <플레이보이>는 단순히 아름답게 연출된 여자의 누드 혹은 세미누드를 보여준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철학, 문학, 예술 등의 콘텐츠를 함께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남자의 내면의 성장을 자극시킨 최초의 남성 인문학적 매체였다. 즉, <플레이보이>가 제시한 바람둥이 상은 단순히 여성의 아름다운 육체를 시각적으로 즐기는 원초적인 본능에 사로잡힌 남자를 넘어서, 그 내면에서 여성을 유혹할 수 있는 근본적인 자질 혹은 매력을 갈고닦은 남자였다. 


바람둥이의 자질 혹은 매력에는 자신이 사는 집, 언젠가는 여성들을 초대할 가능성이 있는 집에 대한 디자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플레이보이>는 창간 시점에서부터 시대를 앞서 나간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을 다루면서 인류 최초로 ‘바람둥이집’의 프로토타입을 구축해나간다. 재미있는 것은 과감한 포즈의 아름다운 여성들을 디자인과 결합시켜 보여줌으로써 당시의 남성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진보적인 디자인을 큰 거부감 없이 흡수하도록 했다는 점이다(감성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수법?). 


Saarinen의 Wombchair (*출처: pinterest)


<플레이보이>가 보여주는 싱글남의 집은  천고가 높은 펜트하우스로 집 안에는 Saarinen의 Womb Chair, Noguchi Coffee Table,  Eames의 LCW Chair가 놓여 있는 식이다. <플레이보이>가 구축해간 바람둥이집의 프로토타입은 남성들의 무의식을 서서히 변화시켰다. 자기 자신과 더불어 자신의 집을 아름답고 품위 있게 가꾸고 싶은 욕망-마음에 드는 여성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자신을 미적 감각이 있는 남자, 성공한 이미지를 가진 남자로 어필하고픈 욕망 포함-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집을 선택하고 꾸미는 주체에 젊은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들어서도록 했다. 이것은 태초부터 굳어온 남성상의 사슬을 끊은 새로운 남성상의 탄생이었다. <플레이보이>는 남성이 남성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해냈다. 




8월 말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아파텔 M은 현재 준공 전이기에 세대 내부를 들어가서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유혹하는 바람둥이집 1편-나도 걸려든 그곳>에 등장한 40대 초반의 싱글남은 부동산 중개업소에 내놓지도 않은 내 집에 세를 들어오고 싶다고 노크를 해왔다. 나는 그가 <플레이보이>가 문을 열기 시작한, 새로운 남성상의 역사를 충실히 거쳐 진화한 남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싱글남의 등장 소식을 주변에 알리자 한 지인이 물었다. 


- 지인: 그 사람은 아직 안에 들어가 볼 수 없는 집, 그것도 특이한 평면 타입을 어떻게 벌써 원한다고 한 거지? 파노라마뷰라고 하지만 모델하우스 안 가본 사람으로서는 바깥 뷰가 상상이 잘 안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 나: 그건 말야, 바람둥이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반드시 센스가 뛰어나야만 해. 상상력, 안목, perspective taking의 삼박자를 갖추어야 하는 거지. 아마 이런 걸 갖춘 센스 충만한 사람일 거야. 



<플레이보이>가 1950년대부터 구축을 시작한 바람둥이집의 프로토타입은 2018년 아파텔 M의 특이한 평면과 파노라마뷰를 원하는 한 준수한 싱글남을 생산했다. 그리고 그 집의 소유주인 내게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선사했다. (지금은 생명력을 다했으나)이 얼마나 섹시한 잡지인가.





*섹시함의 기준

얼마 전 친구(40대 기혼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섹시함'에 대한 정의를 유사하게 내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에게 ‘섹시함'은 외모 혹은 외관과는 큰 연관이 없다. 그보다는 ‘어떠한 문제나 사건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자기다움을 가지며, 상대에 대한 존중과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창조적인 해답을 찾는 자세’가 섹시함의 핵심이었다. <플레이보이> 잡지도 이런 면에서 섹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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