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HIND THE MOVE Dec 02. 2023

팀 넛츠 <반추> 제작기

비하인드 더 무브 영상 제작 지원 프로그램 선정 팀 넛츠의 이야기

*올해 초 비하인드 더 무브는 댄서들에게 영상 제작 비용을 지원하는 <2023 영상 제작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지원, 심사, 선정을 거쳐 팀 넛츠가 선정되었고 올해 하반기 작품 <반추: Rumination>을 제작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팀 넛츠의 작품 <반추>와 작품의 작업기를 담았습니다.


#팀 넛츠


Q. 간단하게 본인을 소개해 주세요.


조성하: 저는 팀 넛츠(Team Nuts)에서 <반추>라는 작품의 디렉터를 맡게 된 조성하라고 합니다.


김준서: 성하와 동갑이고요. 이번 작품의 공동 디렉터 22살 김준서입니다.


Q. 팀 넛츠는 어떤 팀인가요?


조성하: ‘넛츠라는 팀이 어떤 팀이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민해보지만, 저희끼리도 결론이 나진 않았어요. 엄청나거나 뚜렷한 목적을 가진 팀은 아니에요. 꾸준히 달려나가는 과정을 즐기는 팀이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그간 했던 작업들을 돌아보면 저희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업을 많이 해요. 그런 면에서 저희 팀의 색깔은 '솔직함’ 같아요


김준서: 되게 애예요. (웃음) 어리고, 멍청하기도 하고, 재밌고, 슬프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진 팀입니다. 그리고 도전적인 것들을 하고 싶어 하는 애들입니다.



#기획


Q. 이번에 비하인드 더 무브의 예산을 지원받아 <반추>라는 작품을 만드셨어요. 우선 작품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성하: '반추'라는 단어의 의미는 ‘되풀이하여 생각한다’예요. 지금까지 저희가 했던 퍼포먼스나 작업은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를 중심에 뒀는데 이번 작업은 ‘반추’라는 단어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영상은 상자에 누워있는 화자가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현실에 있는 화자를 저희가 바라보는 순간이죠. 그다음부터 장소가 계속 바뀌게 돼요. 화자의 반추를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옛날 기억일 수도 있고 회상일 수도 있어요. 다른 댄서를 만나는 장면은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어요. 혹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 대한 생각일 수도 있죠. 그런 모습들을 계속해서 보여줘요. 마지막 엔딩에서는 화자가 누워 있던 상자에서 일어나요. ‘아 이제 현실 세계로 돌아왔구나’라고 하는 순간 화자가 또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아요. 화자가 여전히 반추하는 상황 속에 있다는 걸 알리며 영상이 끝납니다.


'깨어났는데 아직 이런 곳에 갇혀 있다니, 안돼!' 같은 느낌을 주려 한 건 아니고요. 긍정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언제나 고민해야 한다. 그러니 계속 나아가야 한다'라고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고민해야 할 게 너무 많아'라고 볼 수도 있어요. 의견을 전달하기보단 여러 가지 해석의 길을 열어놓고 싶었어요.


상자 위에 앉아 있는 <반추>의 화자 |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Q. 작품의 기둥이 되는 단어가 흥미로워요. ‘반추’라는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게 된 건가요?


조성하: 저희가 주제를 정할 때마다 하는 게 있어요. 멤버들이 각자의 메모장에 하고 싶었던 주제나 ‘신박하다’ 하는 단어들을 적어온 다음 같이 낭독회를 해요. 그때 나온 단어 중 반추도 있었어요. 


김준서: 여러 단어들이 나왔었는데요. 다른 단어들은 그냥 듣고 넘겼는데  반추라는 단어는 재미있는 얘기들이 1~2개 정도 바로 덧대어졌어요. ‘뭔가 여러 가지 도전을 해볼 수 있겠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걸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유도 높은 단어라고 생각해서 이 단어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Q. 단어를 영상으로 기획한 과정을 들어보고 싶어요. 어떤 과정과 단계를 거쳤나요?


조성하: 반추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준서가 중국식 물고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어요. 옛 중국에서 했던 고문인데요. 눈을 가린 상태로 사람을 눕혀놓고 주기적으로 머리에 물방울을 떨어트리는 고문이에요. 떨어지는 물방울은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준이 전혀 아니잖아요. 근데 당하는 사람은 물방울의 느낌이 점점 크게 다가와서 나중에는 몸이 버티지 못할 고통이 된대요.


그 이야기를 반추라는 단어에 대입해보니 떨어지는 물방울이 ‘되풀이하는 생각’이랑 잘 맞더라고요.그 이미지를 토대로 ‘되풀이하는 생각’을 표현할 이미지들을 하나씩 찾아 넣어보았어요.


김준서: 많이 생각했던 건 '뭘 사용하면 반추를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였어요. 그때 중국식 물고문, 수조, 상자 같은 게 나왔고,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Q. 영상의 시작점에서 물방울을 맞는 화자가 상자 안에 들어있잖아요. 그 상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조성하: 상자는 현실 세계와 화자의 상상 속 세계를 구분해주는 장치예요. 현실의 화자가 상자 안에서 반추를 하면서 자신의 상상 속으로 들어가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죠. 엔딩에서는 화자가 상자 밖으로 나오잖아요. 화자가 상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장면을 구성했는데 이 과정을 잘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상자를 썼다고 보시면 됩니다.


Q. 촬영 기획을 처음 봤을 때 ‘장소가 굉장히 많다’고 느꼈어요. 공간을 다양하게 구성한 이유가 있나요?


조성하: 크게 3가지 공간이 있어요. 수족관 ,집, 야외인데요. 먼저 수족관의 경우에는, 작품 음악의 뮤직비디오에 물에 빠지는 것 같은 소스가 있었어요.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영상은 아니지만 그 소스가 저희의 작업 방향과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래서 그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수족관을 선택했고요. 집은 ‘답답함’을 표현하고 싶어서 선택했어요. 집의 복잡한 구조를 이용해서 그 답답함을 표현해 보려 했죠. 반대로 야외에서는 뻥 뚫린, 광활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Q. 지금까지 설명해주신 내용을 보면 ‘영상적인 표현’에 많이 집중한 영상이에요. 이 영상은 안무에 시네마틱함을 얹은 영상일까요? 시네마틱 영상에 안무를 얹은 영상일까요?


김준서: 제 생각에는 시네마틱한 영상에 안무를 곁들인 것 같습니다. 춤을 보여줄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작업에서는 저희 머리에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싶었어요. 안무를 짤 때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영상의 음악이 잘 묻어나는 안무, 영상 속 여러 요소나 씬의 느낌이 잘 묻어나는 안무를 짜려고 했어요.


작품 <반추>의 화자가 상자에 난 구멍을 통해 빛나는 밖을 바라보고 있다 |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제작


Q. 지금까지 말씀해주신 기획을 영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들어보고 싶어요. 우선 영상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조성하: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구도, 영상이 이어지는 부분, 트랜지션 같이 바로 눈에 들어오는 요소들이었어요.


김준서: 첫 번째로 ‘장소가 바뀌는 전환점’을 고민했고요. 두 번째는 ‘물’이었습니다. 저희 작품의 시작과 끝에 항상 물이 있고 중간 중간에도 물이 있습니다. 물이 저희에게는 의미있는 오브제였기 때문에 물을 사용하는 씬, 물을 사용한 전환점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수조 촬영을 위해 댄서 김준서가 수조 위에 앉아 있다 |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Q. 총 두 번의 촬영이 있었잖아요. 각 촬영 날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준서: 첫 번째 날에는 상자 안에서 물방울을 맞는 화자 개인 씬, 수조 씬, 집 안에서의 장면까지 총 3가지 촬영을 했어요. 3곳의 다른 장소에서 촬영을 하다 보니 시간에 쫓기긴 했지만 그래도 무탈히 촬영을 마쳤던 날이었어요. 저는 피사체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표정과 시선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화자가 중심이 되는 영상이기 때문에 제 표정, 제 시선에 관객이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Q. 촬영 과정에서 힘들었던 건 없었나요?


조성하: 영상 속 상자가 실제로 엄청 커요. 무게도 상당하고요. 연습할 때나 영상 촬영 때 상자를 옮기려면 여러 명이 달라붙어야 하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상자 옮기다가 예민해져서 싸우기도 했어요.(웃음) 또다른 어려움은 소통이었어요. 저희 둘이, 감독님과, 팀원들과 소통을 많이 하며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맞춰가야 하는데 이런 작업은 처음이어서 쉽지 않았어요. 소통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 작업이었어요.


김준서: 수조 촬영이 워낙 힘들었어요. 덕분에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생각보다 몸이 잘 안 따라주고 가라앉지도 않더라고요.

 

두번째 촬영지에서 댄서들이 몸에 기댄 채 서 있고 그를 촬영 감독이 찍고 있다 |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Q. 두 번째 촬영의 경우에는 로케이션 문제로 촬영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조성하: 맞아요. 야외 로케이션 정하는 과정이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광활한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이동하는 시간, 비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다 보니 생각보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어요. 실사를 정말 많이 다녔어요. 인천이나 화성은 저희가 안 간 곳이 없었습니다. (웃음)


김준서: 저희 머리 속에 있는 공간을 대한민국에서 찾는 게 쉽지 않기도 했고 대한민국 땅의 대부분은 주인이 있잖아요. 촬영 허가나 비용 문제 등등 어려움이 많았어요. 촬영하려고 할 때마다 비가 온 것도 큰 문제였고요. 야외 촬영이 저희에겐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계속 공간을 찾아다니다 촬영 3~4일 전에 간신히 로케이션을 결정했어요.


조성하: 저희가 선택한 공간은 양평역 인근 생태공원에 있는 굴다리 밑이었어요. 원래 생각했던 뻥뚫린 공간과는 차이가 있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촬영하다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공간이라고 느껴서 안심했어요.

 

두번째 촬영지인 양평역 인근 생태공원 아래 굴 다리 |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Q. 저는 야외 로케이션을 잘 선정했다고 생각했어요. 다리 구조 때문에 공간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반추’라는 단어를 표현하기에 좋은 느낌이었어요. 물론 공간의 방향성이 바뀌어서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을 듯하지만요.


조성하: 저희는 천장이 없는 하늘이 보이길 원했는데 이 공간은 위가 막혀 있는 공간이었으니까요. 하늘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찍을 수 없다 보니 장소에 맞춰서 다시 기획을 했었던 것 같아요. 천장의 유무가 생각보다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김준서: 로케이션이 주는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어요. 실외지만 실내이기도 하고, 굉장히 어두운 톤이기도 하고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고, 비도 오고요. 원래 방향과는 달랐지만 다른 의미로 좋게 찍을 수 있겠다 싶었죠. 다만 시간이 너무 야속했어요. 바뀐 로케이션에서 촬영을 하다 보니 시간에 쫓기면서 촬영을 하게 됐고, 바뀐 상황 속에서 디렉터들이 빠르게 판단을 내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감독님과 이야기되지 않은 즉흥적인 장면들도 많았고요. 여러모로 죄송했습니다. 팀원들에게도, 감독님에게도 헬퍼님에게도요. 시간이 참 미운 날이었어요.


촬영 소품인 물 거울을 통해 비춰지는 팀 넛츠 멤버들 |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소회


Q. 작업이 다 끝났습니다. 전체 여정을 돌아보니 기분이 어떠신가요?


김준서: 일단은 후회가 제일 컸어요. 더 했어야 했는데, 더 잘하고, 더 얘기 나누고 더 빠릿하게 준비했어야 했는데 싶어요. 경험하고 나니까 생각이 드네요. ‘그때 이렇게 했어야 됐구나’ 하고요. 그렇지만 좋습니다.100%까지는 아니어도 하고자 했던 것들을 어느 정도 구현했고,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그 경험이 소중했기 때문에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조성하: 팀원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덕분에 팀원 개개인의 성향을 더 잘 알 수 있었어요. ’내 옆에 있는 얘가 이런 타입이구나, 이런 스타일이구나’를 정말 잘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Q. 시청자들이 영상을 보고 ‘이런 느낌을 얻어갔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나요?


조성하: 한국에서 댄서들이 ‘영상을 찍는다’고 하면 본인의 춤을 보여주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분들 중에 영상적인 요소를 잘 담을 수 있는 댄서도 정말 많거든요. 그 분들이 저희 영상을 보고 이런 시도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런 영상을 더 많이 보고 싶거든요. 그리고 반추라는 단어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준서: 성하와 같은 의견입니다.스토리적이고, 영상적인 요소가 많고, 시청자 입장에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상을 잘 만들 수 있는 댄서 분들이 한국에도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분들이 이런 작업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을 시각화한 영상들을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팀원들에게 한 마디 남겨 주세요 (웃음)


조성하: 영상 편지인가요? (웃음) 준비하면서 디렉터들이 억지 아닌 억지를 부린 부분이 참 많았는데 저희 팀원들이 그걸 잘 받아줬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얘들아 고맙다.


김준서: 다들 정말 고생했고, 성하 말처럼 많은 억지가 있었는데 너무 미안했어. 그렇지만 우리 어떻게든 했잖니 (웃음) 용서해 주길 바라.



- The End -



매거진의 이전글 천영돈 <날개> 제작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