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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HIND THE MOVE Nov 11. 2022

천영돈 <날개> 제작기

비하인드 더 무브 영상 제작 지원 프로그램 선정자 천영돈의 이야기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비하인드 더 무브는 댄서들에게 영상 제작 비용을 지원하는 <영상 제작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지원, 심사, 선정을 거쳐 두 팀이 선발되었고, 그간 두 팀의 제작 과정을 기록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선정자 천영돈님의 작업 이야기와 작업기를 담았습니다.


천영돈과 협업 댄서가 함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천영돈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영돈: 안녕하세요. 춤추고 있는 천영돈입니다.


Q.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영돈: 뻔한 말이기는 하지만 계속 알아가는 중이에요.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 같아요. 어쩔 때는 차분하고, 논리적이기도 합니다.


춤, 그리고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누구나 춤을 출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게 만든 세상에 관심을 가졌고, 이제는 춤이라는 언어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그 틀의 다양한 면을 살펴보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Q. 본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영돈: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하나의 점에 불과한 그런 사람입니다.

 


#. 날개


Q. 이번에 제작한 <날개>는 어떤 작품인가요? 어떤 이야기, 주제를 담고 있나요?


영돈: 이번 작품은 천사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천사에게는 날개가 있잖아요. 사람들에게도 그런 날개가 있다고 생각하며, 각자의 삶의 여정이 날개라고 비유해 보았어요. 날개가 있는 사람, 혹은 없는 사람, 날개가 있는데 모르는 사람, 날개가 잘린 사람.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어요.


각자의 날개를 잊은 채,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이전에는 본래의 자연에서 자유로이 날아다니던 때가 있었겠죠. 시스템 속 삶을 버티기 위해 모든 것이 수단이 된 사회상에 의문을 품은 작품입니다. 정답을 말하는 작품은 아니에요. 이 시스템을 쭉 따라 사는 것도, 이 시스템 밖으로 나오는 것도, 틀린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그런 요소들이 흥미로웠어요.


Q.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영돈: 시스템 속에 적응하는 ‘무언가들’이 있고, 그 시스템 속에서 이상한 커넥션들이 있어요. 그 연결점이 휴대폰일 수도 있고 SNS일 수도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겠죠. 그런 연결 가운데 ‘무언가들’은 뭔가를 깨닫고 인지하게 돼요. 그 후 ‘무언가’들 중 일부가 하나둘씩 시스템에서 빠져나오게 되고 결국 ‘본래의 것’으로 돌아가게 되는 내용입니다.


사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설명하기보다는 보는 이가 사유할 수 있게끔, 다양한 쪽으로 해석할 수 있게끔 여지를 던져주려 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방식을 더 매력적으로 느껴요.



#.기획부터 제작까지


Q. 작업 과정을 들어보고 싶어요. 처음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영돈: 처음 작업을 시작했던 건 작년이었어요. Tinashe의 <Angels>라는 음악을 듣고 영감을 받아서 구성을 짜놓았었죠. 사진 작업도 진행했었고요. 그 이후에 안무 영상을 만들고 싶었는데 원하는 장소를 찾지 못해서 작년에는 구상한 걸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어요.


그러다가 비하인드 더 무브 영상 제작 지원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직감적으로 ‘이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원 시기에 찾았던 노래인 mAsis의 <Make Me Higher>가 마음에 들어서 작년에 짜놓았던 컨셉을 이 음악에 얹게 됐어요. 그 위에 스토리보드를 짜고 안무 시안을 만들어서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됐죠.


한편으론 저 자신의 이야기가 작품의 토대가 됐어요. 과거에는 (무언가를 할 때) 늦었다고 생각하고, ‘어떤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러다가 춤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 자신이 많이 변화했어요. 춤과 함께 살아가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됐고, 제 의지가 아닌 채로 이루어졌던 선택을 인지하는 순간이 쌓이기 시작했죠. 그런 경험을 토대로 날개가 잘린 채로 사는 사람, 스스로 날개를 자른 사람, 아니면 훨훨 날아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Q. 작년에는 장소는 찾지 못해서 구상한 걸 실행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를 원하셨나요?


영돈: 큰 나무가 있는 우거진 숲에 흰색 큐빅 같은 게 있는 공간을 원했어요. 그리고 숲 장면과 바다 장면, 크게 두 가지 장면으로 작품을 구성해 보려고 해서 바다가 있는 곳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프로그램에 선정된 다음에 로케이션을 엄청 찾아다녔어요. ‘딱 봐도 여기에서 찍었네’ 같은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영상에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를 없애고 싶었죠. 그래서 ‘일단 섬으로 가자’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가봤던 섬부터 주변 섬들은 하나씩 돌아봤죠.


그러다가 정말 좋은 장소를 찾았어요. 운수 100점인 날이었어요. (웃음) 원하던 촬영 기법이 있었고 그 기법에 잘 맞는 동선이 갖춰진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비가 와서 촬영이 연기됐고, 함께 하는 댄서들의 일정 문제로 이 공간을 활용하지 못했어요.


천영돈님이 자신이 찾은, 절벽과 숲이 있는 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 사진 제공 및 출처: 천영돈


Q. 최종적으로 선택한 장소는 블랙 호리존이었죠.


영돈: 장소를 못 정하고 갈피를 못 잡던 상황에서 우연히 어떤 이미지를 하나 봤어요. 검은색 먹을 칠한 것 같은 완전 검은 배경에 흰색 붓질을 한 번 한 그림이었는데요. 그게 크게 와닿았어요. 그 모습이 천사의 날개 같더라고요. 야외 로케이션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배경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제가 전달하고 싶은 바가 분명해졌어요. 그래서 촬영하는 곳을 블랙 호리존으로 변경하고 안무도 그에 맞춰 수정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로케이션과 춤이 어울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게 뭐지?’는 오히려 퇴색되고 흐려졌던 것 같아요. 그 로케이션에서 영상을 찍었다면 이미지적으로는 더 예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서 말하는 바가 뭐야?’라는 생각이 드는 영상이었을 것 같아요.


촬영이 진행되었던 블랙 호리존 | 사진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Q. 안무 창작 과정은 어땠나요?


영돈: ‘날개’에 대한 이미지로 안무 창작을 마무리했고 작품에 대한 틀이 존재했지만 안무와 안무 사이의 이음새, 스토리 라인을 계속 고민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댄서들과 안무 연습만 하지 않고 창작 리서치 시간과 움직임 트레이닝, 가벼운 잼 세션도 진행했어요.


특히 (앞에서 언급한) 시스템에 대한 부분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댄서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각자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구성을 변경하기도 하고, ‘이 부분에서는 네가 말한 걸 생각하면서 이렇게 춤췄으면 좋겠다.’고 디렉션을 추가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작품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Q. 작업 과정을 들어보면, 장소도, 일정도, 안무도 여러 번 바뀐 것 같아요. 그 과정이 영돈님에게는 어떻게 다가왔나요?


영돈: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많은 수정 작업이 있었어요. 저를 해체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영상 준비하던 당시, 첫 현대무용 공연을 준비하기도 했어요. 제가 몸담고 있는 씬의 틀과 대비된, 새로운 방식을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저의 춤 언어, 방식, 속도, 움직임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던 고민 점이 해소되고 틀에 묶여있던 제가 해체되는 과정이었어요. 그런 변화 속에서 작품을 준비하다 보니 여러 차례 안무를 수정하게 됐어요.


Q. 창작 과정에서 특히 중점에 둔 게 있었나요?


영돈: 최대한 아무 의미 없이 움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안무로 어물쩡대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고통스러웠고 (웃음) 짜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의미를 담아보고 싶었어요. 많이 부족했지만 그게 제가 그리는 이상향인 것 같아요.


6명의 댄서들이 일렬로 자세를 잡고 서 있다. | 사진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Q. 총 6명의 댄서들이 함께 했어요. 이들과 함께하게 된 과정도 들어보고 싶어요.


영돈: 제가 정말 좋아하는 부분을 가진 댄서들을 컨택했어요. 크게 3가지가 있었는데요. 첫 번째는 ‘이 사람은 춤출 때 어떤 몰입점을 갖고 있다.’ 두 번째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잘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존재 자체로 영감을 받는 친구’였어요.


Q. 함께 작업을 하며 느낀 소회를 나눠주실 수 있나요?


영돈: 다들 고생을 많이 했죠. (웃음) 새벽 연습도 많이 했고요. 기나긴 시간 동안 끝까지 잘 집중해 줘서 고마웠어요. 덕분에 디렉터로서 재미있었어요. 특히 댄서들과 리서치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즐거웠던 것 같아요. 함께하는 시간 가운데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Q. 댄서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영돈: 그동안 너무 감사했고, 죄송합니다. (웃음)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밥 한번 사겠습니다. (웃음)


댄서들을 촬영하고 있는 다니엘 송 감독 | 사진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Q. 안무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건 또 다른 과정이죠. 다니엘 송(Daniel Song) 감독님과 함께했는데, 이 과정도 들어보고 싶어요. 감독님은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요? 안무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과정에서 무엇에 주안점을 뒀나요?


영돈: 2-3년 전 다니엘 감독님 작업물을 보면서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용기 내어 연락드렸습니다. 작업할 때 ‘영상 레퍼런스를 최대한 정확하게 드리자’고 생각했어요. 특히 이번 작업은 수정이 많았기에 잘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조명 연출이나 앵글 등 준비된 것 이외에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시도하고픈 것을 위한 준비이기도 했어요.


감독님이 기술적인 부분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타이밍, 무빙샷 같은 부분은 제가 디테일하게 디렉션을 어떻게 드릴지 생각할 수 있었지만, 빛의 심도나 조명, 어떤 카메라 렌즈를 써야 하는지, 어떤 화각으로 찍어야 하는지는 제가 잘 모르는 영역이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감독님이 잘 해주셨어요. 덕분에 합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저는 표현하고 싶은 바가 있었고, 영감, 생각이 있었다면 감독님이 그를 기술적으로 잘 표현해 주셨던 것 같아요.


댄서들을 촬영하고 있는 다니엘 송 감독 | 사진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Q.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체 과정을 진행하면서 무엇을 얻고 배우셨나요?


영돈: 댄서들과의 일정 조율, 의도치 않았던 야외 로케이션 상태, 큰 변화를 겪고 있었던 저 자신을 포함하여, 여러 상황이 맞물렸어요. 선택하고 결정해야 했던 순간이 많았어요.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최선의 선택을 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잃는 것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기획 단계에서 ‘최선이 아닌 최대를 만들자’고 다짐했던 제 모습도 떠올렸어요. 이러한 과정을 다 겪고 작품이 나왔기 때문에 더 단단해졌던 것 같아요. 앞으로의 영상작업에 있어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 많이 변화했다고 느꼈어요. 제가 희미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 ‘이게 맞구나’라고 확신이 들었던 순간들이 많았어요.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에 많이 집중했던 것 같아요. ‘멋있게 보이자’거나 ‘잘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했으면 끝까지 못 했을 것 같아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보는 사람도 잘 느끼게끔. 깔끔하게 또 진정성 있게 전달을 하자’, 이 부분에 초점을 맞췄어요. 프로그램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했고 ‘어찌 됐든 출구는 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댄서들이 다리로 즉흥 안무를 보이고 있다. 다니엘 송 감독은 이를 촬영하고 있다. | 사진 촬영 및 제공: 비하인드 더 무브


Q. 이 작품을 본 시청자가 어떤 감정, 느낌,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나요?


영돈: 자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색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영상 속에서 자신을 찾아도 되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천사, 날개, 이런 컨셉을 다 빼고 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영상 제작 지원 프로그램


Q. 영상 제작 지원 프로그램의 시작은 올해 초 3~4월이었죠. 심사부터 영상 제작까지 1년을 꽉 채운 것 같아요. 과정을 돌아보니 소감이 어떠신가요?


영돈: 정말 기나긴 여정이었는데 끝나서 후련하고요. 끝까지 해내서 뿌듯했던 것 같아요.


Q. 이 프로그램이 본인에게, 본인의 작업에 좋은 도움이 됐을까요?


영돈: 지원해 주신다는 것 자체가 큰 도움이었고 감사였어요. 그리고 ‘내가 이거를 하고 있다’는 그 책임감 덕분에 끝까지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과정 가운데 저를 존중해주신다는 걸 느꼈고 믿고 맡겨주셨던 게 그 자체로 힘이 됐고 도움이 됐어요.


Q. 내년에 지원할 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영돈: (조금 오글거릴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비하인드 더 무브에서 믿고 존중하고 맡겨주시는 만큼, 스스로를 믿고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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