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현: 터 기, 검을 현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댄서 기현입니다. 하우스 댄스팀 오버라이즈(Overaiz), 슬로우 플로우(Slow Plow), 스타일 스텝스(Style Steps)라는 팀에 소속되어 있고, 그래비티 컬처그라운드(Gravity Cultureground)라는 댄스 학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현이라는 이름은 본명인가요? 기현님의 이름은 어떤 뜻을 담고 있나요?
- 네 기현은 본명이에요. 터 기, 검을 현이라는 한자를 써요. 검을 현은 ‘깊이 있고 심오하다’라는 의미이고 터 기는 사업을 뜻한대요. 합쳐보면 의미 있고 깊이 있는 공간, 혹은 커뮤니티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본인의 이름처럼 살아오신 것 같으세요?
- 실수도 많이 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참 많이 넘어지고 엎어졌어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좋은 친구들이 많이 남아있고, 큰 도전을 할 때마다 주변에 연락이 많이 오곤 해요. 대단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며 살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 보자면 나름 이름대로 살지 않았으려나 싶습니다. (웃음)
속해 있는 팀이 많아요. 각 팀을 조금씩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 제일 오래 전부터 속해있던 팀은 스타일 스텝스예요. 제 모교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동아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이죠. 제가 춤을 시작할 수 있게 중심축 역할을 해줬던 팀이에요. 지금은 각자의 삶이 생겨서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현재는 춤 활동은 없습니다.
오버라이즈는 2018년에 유럽을 다녀오면서 경험한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저를 구제해준 팀이에요. 제 입장에서 보면 구제를 당한 거고, 오버라이즈 입장에서는 제가 패기 있게 ‘나 팀 같이 할래’라고 얘기한 인물일 거예요. (웃음)
슬로우 플로우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형이 같이 팀을 하자고 제안해서 만들어진 팀이에요. 비교적 최근에 생긴 팀이고, 아직 활동 여정을 많이 그리지는 않은 팀이에요.
어떻게 보면 스타일 스텝스는 제 춤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팀이고 오버라이즈는 터닝 포인트, 슬로우 플로우는 새로 도전할 3막 같은 팀입니다.
이런 소속에 국한되지 않는, 기현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 다양한 걸 좋아하고, 상상도 하고, 망상도 하고 허상도 하는, 생각 많은 사람이에요. 재미있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 모습이 춤으로 많이 표현되고 있고요.
#댄서 기현
기현님은 언제 처음 춤을 시작하셨나요?
- 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 영상을 봤을 때였어요. 운명처럼 문워크하는 걸 보게 된 거죠.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움직이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궁금해지더라고요. 그게 시초였던 것 같아요. 제 누나가 아이돌을 굉장히 좋아했어서 아이돌 춤을 따라했던 시절도 있었어요. 그러면서 춤추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이후 무대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남들 앞에서 춤추는 것의 매력을 느끼게 됐고요.
춤을 업으로 시작해야지 생각했던 건 21살 때였어요. 대학교를 입학할 때 문득 ‘내가 왜 여길 가야 되지? 왜 이런 선택을 했지?라고 고민하게 됐어요. ‘나는 앞으로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니 좋아하는 걸 해야 되는데, 그럼 난 뭘 좋아할까 싶었죠. '어렸을 때 춤추는 거 되게 좋아했었지. 그럼 앞으로 춤을 출 거야'라고 결론 내렸어요. 복잡한 과정을 거쳐 굉장히 단순한 결과에 도달한 거죠. 그렇게 춤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춤의 무엇이 기현님을 즐겁게 했나요?
-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멋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던 것 같아요. 멋있는 동작, 외적인 멋있음에 많이 빠져 있었어요. 춤추는 것도 멋있고, 춤추는 사람도 멋있고, 저도 그렇게 멋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멋있는 나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데 즐거웠던 거죠.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멋있는 동작을 하거나, 우승을 하거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타이틀을 얻는 것보다 ‘표현하는 것’이 더 즐거워진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가 동작을 구사할 수 있게 되고, 그 동작들을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되고, 몸을 움직이면서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게 되는 영역에 왔다는 게 너무 즐거워요.
춤이 언어라고 한다면, ‘나 영어 잘하는 사람이야!’라는 게 더 좋은 걸까요? 아니면 영어라는 언어로 내가 하고픈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걸까요?
- 후자인 거죠.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멋있고 싶어서 멋있는 동작을 연구했다면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스스로 멋있다고 느껴요. 기준이 저 자신에게로 바뀐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자유로움이 굉장히 감동적이에요.
#하우스 댄스
기현님이 다양한 춤을 추시지만 하우스 댄스를 가장 오랫동안 춰오신 것 같아요. 하우스 댄스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 말씀드렸듯이 어렸을 때는 멋있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비보잉을 시작했어요. 직관적으로 멋있는 춤이잖아요. 그러던 어느날 제 선배 중 한 명이 드레드락 머리에 부츠컷 바지를 입고 동아리 연습실에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스텝을 밟으시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저에겐 새로운 멋이었죠. 나중에 ‘이 춤은 뭐냐’고 여쭤보니 ‘이건 하우스 댄서라는 건데 나중에 너도 꼭 해봤으면 좋겠다’고 답해주셨어요.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춤을 시작할 때 하우스 댄스를 시작하게 됐어요. 스텝도 멋있고, 정말 자유로워 보이는 춤이었어요. 말하고 보니 결국 하우스 댄스도 멋있어서 시작하게 됐네요. (웃음)
하우스 댄스는 정확히 어떤 춤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에게는 정의하기 쉽지 않은 춤이었어요. 하우스 음악 위에서 추는 춤은 모두 하우스 댄스인 걸까요? 아니면 하우스 댄스적인 스텝을 밟아야만 하우스 댄스인 걸까요?
- 정의보다 정리를 하자면, 하우스 댄스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그루브나 스탭들이 요소요소 잘 섞여 있으면 저희는 그걸 다 하우스 댄스라고 불러요. 다만 저희는 좀 더 컬쳐(문화)적으로 다가가는 것 같아요. ‘이런 스텝을 밟으면 하우스 댄스야’라고 말하기 보다 음악, 문화, 사람, 이 문화를 대하는 자세를 모두 통틀어 보고 ‘저 사람은 하우스 댄서야, 저 사람은 하우스 컬처에 있는 사람이야’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어떤 면으로는 정의하기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음악, 음악이 흐르는 공간, 그 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우스 댄서라고 할 수도 있죠. 기술, 동작 형태적인 것으로만 정의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 모든 걸 다 아우르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우스에서는 그 마음을 러브(Love)라고 표현해요. 이 모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움직임, 그걸 하우스 댄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현님은 굉장히 오랫동안 하우스 댄스를 춰오셨잖아요. 이 춤의 매력은 뭔가요?
- 하우스 댄스의 첫 번째 매력은 음악 같아요. 하우스 음악이 정말 다양하거든요. 트라이벌 하우스, 아프로 하우스, 재즈 하우스, 라틴 하우스, 테크 하우스, 테크노 하우스, 딥테크, 딥, 소울풀, 10~15개 정도 있어요. 하우스 스텝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럼 그 조합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진다는 거고 그 얘기는 표현할 수 있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는 거예요. 다양한 음악을 통해 다양한 춤을 출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그 다음, 같은 음악,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그걸 추는 사람이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소극적이고 어떤 사람은 적극적이고, 힘이 센 사람도, 부드러운 사람도 있죠. 이렇게 다양한 변수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만들다 보니까 보는 재미도 생겨요.
다양한 음악과 동작, 사람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그 안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갖게 돼요. ‘나도 또 다른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저 사람과 똑같이 구사하지 않고 나만의 루즈 렉 나만의 파드브레를 할 수 있구나.’라고요. 이걸 알게 되는 순간 자존감이 생겨요. 하우스 문화 자체가 개개인의 존재를 중요시해요. 똑같이 하는 것보다 달랐을 때 더 존재감이 드러나고 ‘너 다르다, 매력적이야’라고 해줘요. 그런 건강한 느낌, 존중해주는 느낌 때문에 저에겐 하우스가 정말 매력적이에요.
흥미롭네요. 나의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해주는 춤이라.
- 그래서 저는 하우스댄스를 가르칠 때 제 스타일을 가르치지 않아요. 기본적인 단어들을 알려주되 그 단어를 말하는 억양은 본인들이 알아서 하도록 해요. 대신 예시를 알려주죠. ‘이런 억양으로 말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받아들여’, ‘저런 억양으로 말하면 사람들은 저렇게 받아들여’라고요. 그렇게 단어, 문법, 구와 절을 알려주면 거기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죠. 그런 매력이 있는 춤 같아요.
사실 기현님의 춤은 하우스라는 장르에 국한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기현님은 본인의 춤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 꽤 오랫동안 고민해왔는데요. 최근에 이에 대한 정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오버라이즈 앰티를 간 날이었어요. 친구들이 도착하지 않아서 밖에서 바람을 쐬다가 풍경이 너무 예뻐서 사진 한 장을 찍었어요. 맑은 하늘에 구름도 있고 펼쳐져 있고, 갯벌에 해초도 있고 갯벌 위쪽으로 잔디도 있고, 꽃도 나 있고. 근데 그 모습이 너무 조화로운 거예요. 그때 '나는 사실 이런 사람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완벽한 하늘일 수도 있고 완벽한 구름일수도 있어요. 어느 하나에 특출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특출남은 없지만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좋아하고,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뭔가 다양한 걸 하는 사람이잖아요. 선을 그으며 하나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좋겠지만 애초에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지금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자고 생각했어요.
아프로를 추더라도, 코레오를 하더라도, 힙합을 하더라도, 하우스를 하더라도, 그냥 그 춤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진실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제 춤은 ‘다양한 걸 할 수 있는 춤’ 같아요.
그렇다면 그런 기현님의 춤을 만들어나가고 다듬어가기 위해 본인만이 가진 생각이나 마음가짐, 루틴이 있나요?
- 저는 목표 설정을 명확하게 하는 것 같아요. ‘이 춤이 어떤 사람을 만족시켜야 하는 춤이라면 그 어떤 사람은 누구지?’라고 생각해요. 어린이일 수도 있고, 지자체 사람들, 일반 대중, 제 또래 댄서들일 수도 있죠. 그걸 잘 파악한 다음 제가 가지고 있는 춤의 언어를 그 누군가에 맞게 사용해요. 대신 내가 설정하는 목표는 열려 있고 다양한 목표를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나는 목표 지향적으로 춤을 출 수 있어, 대신 그 목표는 열려 있어서 다양한 목표에 맞게 다양한 춤을 출 수 있어. 그런 의미에서 난 다양한 걸 할 수 있는 사람이고 다양한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의미일까요?
- 맞아요. 에피소드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최근 제가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2> 레이디바운스 메가 크루 미션에서 객원 댄서로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제가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이미 주인공은 레이디바운스로 정해져 있고 저는 서포터죠. 그럼 저는 제 목표를 ‘최고의 서포터가 되는 것’으로 정할 거예요. 최고의 조연이 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 그것도 정말 재미있는 그림이잖아요.
#Gravity Cultureground: 그래비티 컬쳐그라운드
지금 인터뷰는 기현님이 운영하고 있는 공간 Gravity Cultureground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이 공간은 어떻게 시작된 공간인가요?
- 처음 이 공간을 만든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어요. ‘내가 만약 열심히 활동하는데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거나 내가 춤출 공간이 없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질문이 떠올랐을 때, 안도감을 주는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간이 있으면 적어도 저는 춤을 출 수 있잖아요. 그렇게 시작한 공간이 어느새 8년차가 되었네요.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인데 상상과 실제 현실은 조금 달랐어요. 막상 만들고 나니까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진 거죠. 제가 누군가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예요. 그렇다면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좋은 사람들을 한 데 묶어서 운영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기현님은 이 공간을 어떤 마음과 철학을 가지고 운영하고 계신가요?
- 저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이상적인 목표를 가져야 현실이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마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다 보면 불편한 현실 속에서 계속 살아야 되잖아요. 이 공간은 댄서들, 춤을 배우는 모든 분들한테 이상적인 공간이 되었으면 했어요. 적어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어떤 사람이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있기를 바라요. 어떤 외부의 압박이 있어도 그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서로를 서포트해주는 사회가 많지 않잖아요. 이곳에서 사람들이 그런 배려, 존중, 다양성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한 두 명씩 경험하다 보면 그런 사람이 많아지겠죠.
좋은 댄서를 길러내는 건 두 번째인 것 같아요. 이곳에서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느끼는 게 제가 생각하는 첫 번째 철학이에요. 춤을 가르치는 곳이지만 인간으로서 지켜야 될 품격을 배우고 얻고, 실천하게 하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을 춤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 말한 ‘문화로서의 하우스’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기계적으로 춤을 배우고 움직임을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커뮤니티 문화를 배우고, 나중에 댄서가 되었을 때 그 문화의 일원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 같아요.
-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댄서와 수강생, 이 공간이 모두 지금의 결을 유지하고 우리의 철학을 증폭시켜주는 도전을 계속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창의적인 공간으로서 창의적인 브랜드로서 이곳을 운영하고 싶어요.
영원한 건 없으니까 언젠가는 이 공간도 사라질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이곳이 공간 자체로 의미를 가지기 보다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감성, 철학이 더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공간이 없어졌을 때 '여기 좋았는데 아쉽네.’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기서 배웠고 경험했던 것들이 사람들의 삶에 적용되고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누구와 춤을 췄고, 누구와 영상을 찍었고, 무엇을 배웠어’라고 생각하는, 앨범처럼 생각나는 곳이길 바라요. 공간이 없어지더라도 철학이 남아서 각자의 삶에 양질의 양분이 되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네요. 그게 그래비티 컬쳐그라운드의 비전인 것 같아요.
기현님 본인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신가요?
-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상상하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요. 춤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다 해보고 싶어요. 욕심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것 같네요. 제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살아가며 만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댄서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은 춤에 진심이었고 커뮤니티를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진중하고 진지하고 애정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제 작업물이나 활동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본인들도 새로운 작업물을 시도해 보고 했으면 좋겠네요. 다양하고 재미있는 것들을 하고 규모에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댄서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춤을 추고 그래비티 컬쳐그라운드를 운영하며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 입장에서, 후배 댄서나 동료 댄서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으실까요?
- 스스로의 목표가 있다면 일단 그 목표를 밀어붙여 봤으면 좋겠어요. 예컨대 목표가 대회에 우승해서 나를 알리는 것이라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밀어붙여서 성과를 내보기도 하고 실패해보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는 거죠. 대회가 춤의 전부는 아닐 테니까요. 그 후에 다시 나의 새로운 목표를 찾아 밀어붙여보고, 이 과정을 꾸준히 이어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꾸준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도 있겠죠. 그때는 '내가 왜 춤을 좋아했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답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찾은 즐거움의 이유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게 재미있는 표현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위해서도 애쓰거든요. ‘그렇다면 왜 내가 즐거워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한가’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스스로 이뤄낸 본인에 대해 감사하고 칭찬 아끼지 말고, 앞으로 본인이 나아갈 목표를 확실하게 하고 밀어붙이고, 그 과정에서 자기가 즐거워하는 게 뭔지 찾아보고 그걸 지켜내려고 애쓰라고 말하고 싶어요.
#기현의 춤
기현의 춤 하나: 동방배틀 Vol.25 심사 쇼케이스
동방배틀은 제 춤 여정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행사예요. 제가 춤을 시작했을 때부터 댄서들의 로망이자 루키들의 등용문 같은 대회거든요. 이 대회에서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요. 예선도 탈락해 보고, 본선도 올라가 보고, 4강도 가보고 준우승도 해보고 우승도 해봤어요. 촬영 담당도, 게스트 출연도 해봤어요. DJ랑 MC 빼고는 다 해본 것 같아요.
당시에는 심사위원 분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상상해보곤 했어요. 그러다 시간이 흘러서 저에게 심사 제안이 온 거예요. 상상이 현실이 된 거죠. 너무 행복했어요. 한편으로는 동발 배틀에서 춤 출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도 깨닫게 됐어요.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춤출 수 있는 마지막 무대인 거죠.
이날 무대는 5분~6분 정도를 춤을 췄어요. 이렇게 길게 출 생각은 없었고 어느 정도 춤을 추다가 내려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원래 내려오려던 포인트에 오니까 춤을 더 추고 싶더라고요. 영상을 보면 제가 잠시 정지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부분이 사실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내려갈까, 더 출까’ 그러다가 ‘마지막인데 더 추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시 춤을 췄어요.
무대에서조차 정말 솔직했던 것 같아요. 마음이 열려 있었고 감정의 소용돌이도 쳤고, 가만히 있어도 춤을 추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많이 즐겼던 무대였고 좋아하는 무대였습니다.
기현의 춤 둘. KEEHYUN x BEOMSU HOUSE DANCE
이 영상을 제작할 때는 두 가지 포인트가 있었어요. 하나는 하우스의 진짜 멋있는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우스 영상 중 좋은 퀄리티로 촬영된 영상이 많지 않거든요. 이런 영상을 하나 만들어두면 다른 분들도 이런 느낌으로 하우스 영상을 찍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두 번째 포인트는, 이 영상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함께한 댄서 범수는 저와 굉장히 오래된 연을 가진 친구예요. 제가 1~2년차 댄서였을 때 댄스 동아리 후배였죠. 어렸을 때 같이 즐겁게 춤을 추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기로가 갈라지게 됐어요. 저는 댄서의 삶을 살게 됐고, 범수는 다른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결정한 거죠. 그러면서 서로 사이가 소원해진 적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어요. 제 팀 친구 재상이 운영하는 ‘With Session’이라는 하우스 파티가 있는데 거기서 공연을 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가 온 거예요. ‘솔로보다는 듀엣 무대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무대를 구상하다 범수가 생각났어요. 그래서 십수 년 만에 다시 무대 위에서 같이 춤을 추게 됐어요.
무대는 너무 좋았어요. 이 감정이 아까워서 남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범수에게 ‘이 감정을 남겨줄 수 있는 작품을 하나 찍자’고 제안했고 그게 이 영상이 됐어요. 영상을 보면 예전 생각도 많이 나고, 지금은 슬로우 플로우라는 이름으로 다시 범수와 한 팀이 되어서 정말 기쁘기도 해요. 영상을 볼 때마다 일련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애틋한 영상이에요.
기현의 춤 셋: 2022 루키즈 게임 저지 쇼 무대
작년 루키즈 게임 심사했을 당시 무대 영상이에요. 이 영상도 사연이 있어요. 이 대회는 심사위원 피드백 시간이 있었는데 한 댄서 친구가 질문을 했어요. ‘음악이 갑자기 다운되거나 브레이크가 걸리면 무대에서 집중이 안 되고 슬럼프가 찾아온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었어요.
저는 ‘그 순간에 음악과 나만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떻게 보여질지 생각하고 ‘이러면 관객들이 이렇게 반응하고 심사위원들도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기 보다 잘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답했어요. 시간이 흘러서 저지 쇼 시간이 됐고 제가 무대에 올랐는데 갑자기 음악이 브레이크가 걸린 거예요. (웃음)
영상을 보면 모자를 쓰고 있어서 잘 안 보이시겠지만 찰나 동안 마음이 복잡했어요. '내가 여기서 집중을 못하면 내가 했던 말이 다 물거품이 된다. 이거 위기다, 이거 잘 살려야 된다.'고요. (웃음)
정말 짧은 순간에 그 생각이 들고 그 다음에 스스로를 믿고 집중해서 음악과 싱크를 맞췄어요. 천천히 움직이면서 생각할 시간을 가진 다음, 아래로 내려갔다가 춤을 전개하는 모습이 보이실 텐데 그 순간에 집중하고 싱크를 맞췄던 것 같아요. 다행히 사람들도 그 모습을 좋아해 주셨고 현장 분위기도 정말 좋았어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던 영상이었어요. 더불어 춤 자체도 마음에 들어서 앞으로도 계속 재미있게 춤 추고 싶다는 의미에서 영상을 소개해봅니다. (웃음)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 자신이 좋아하는 걸 확실하게 알고 그걸 유지하려고 애쓰는 과정이 우리 삶에 많은 에너지를 준다고 생각해요. 모두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힘들더라도 그 좋아함을 계속 유지하며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것, 다양한 것 많이 하시면서 시간을 아름답게 보냈으면 좋겠어요.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