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야기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by 밤호랑이

원래 이 글은 안 쓰려고 했는데, 술기운을 빌려 펜을 든다. 술 안 마시고 아무렇지 않게 그의 이야기를 다루기에는 어딘가 씁쓸해서.

몇 명의 여성과 치열하고 깊은 연애를 했던 그는, 교회 친구의 소개로 한 여성과 교제를 시작했다. 아담하고 귀여운 그러면서도 기품이 있어 보이는 그런 여성이라고 했다. 드디어 인연을 만난 것 같다고,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던 결혼 얘기를 꺼냈다. 내게 결혼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하는 그가 대견스러웠고 내심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무척 아끼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잘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가 통하고 같이 있으면 설렌다고 하는 그 친구의 모습에서 내 어릴 적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소위 말하는 부잣집의 장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디 비료 공장이라던가 시멘트 기업인가의 대표였고 전국 곳곳에 숙소 혹은 거처가 있었다. 처음 만나던 날 그녀는 메르세데스 스포츠 세단을 몰고 왔고, 내 친구는 아버지 양해를 구하고 오래된 차를 빌려서 약속장소로 향했다. 신혼집으로 전세를 얻어 자신의 힘으로 소박하게 시작하고자 했던 그는 그녀와 벌써부터 어긋나기 시작한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떤 이벤트를 해야 할까 설레는 그의 마음 안에 마음속에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불안감.


결혼식조차 소박하게, 형편에 맞게 하고 싶었던 내 친구와 결혼식만큼은 특급호텔에서 멋있게 올리고 싶었던 그녀는 결국 헤어졌다. 둘의 사이는 서로 삐걱거리다가 헤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그녀는 내 친구에게 만남을 지속하지 못하겠다면서 떠났다.


남자의 어깨는 여성의 골반. 남자의 키는 여성의 가슴. 남자의 돈은 여성의 외모라는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시덕거리 우리는, 이런 철없는 말들에 하나 둘 수긍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 입 밖으로 꺼내기 조차 저급해서 술자리 안주로만 주고받으며, 위의 조건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춘 것 없는 우리가 어떻게 이성을 만나겠냐고 한탄하던 그런 시답지 않은류의 얘기였는데.. 누군가는 씁쓸하게 웃으며 수긍했고 누군가는 그게 현실이라고 앞을 직시하라고 나에게 핀잔을 주었다. 나 역시 '그녀는 너를 사랑한 게 아니라 조건에 맞는 남자를 사랑하고 싶던 거야'라고 친구를 위로했지만, 눈물이 그렁거리던 그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제대로 그라인딩 되지 않은 원두 찌꺼기 마냥.


한동안 내 친구는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 내 친구를 양육하며 뒷바라지하셨던 그의 부모님. 이미 어긋난, 앞으로 힘든 여정일 것을 예감하고 관계를 일찌감치 정리했던 그녀.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최선 다해보려 했던 내 친구.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불혹이 된 나는 감히 중립을 택했다.


내 친구와 이별을 했던 그녀는 몇 달 지나지 않은 따뜻한 봄날, 원하던 특급호텔에서 식을 올렸다.

그리고 내 친구는 뒤늦게나마 인연이라고 생각되는 이를 만나 다시 결혼이란 단어를 꺼내고, 또 조심스럽게 미래를 준비 중이다.




난 그와 그녀 둘 다 응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따라 술이 무척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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