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과장님을 추억하며.

by 밤호랑이

안녕하세요 과장님,

저 밤호랑이입니다. 너무 늦게 인사드려서 죄송합니다.

그간 무탈하셨죠. 여긴 분명 가을이 온 것 같은데 또 낮에는 이상하게 덥고 새벽에는 정말 추워서 딱 뭐라고 감을 잡기 어려운 날씨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여자마음 같은 날씨라고 얘기하곤 하는데.. 동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ㅎ

그곳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지만, 항상 과장님의 평안을 바라고 또 친절한 미소를 떠올리며 늘 감사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 저는 성격을 좀 바꾸고 싶기도 하고 또 용돈을 벌어보고 싶은 마음에 레스토랑에서 서빙 파트타이머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말도 못 하던 저를 과장님은 참 아껴주시고 또 공감해 주셨습니다. 바쁜 레스토랑에서 주말 휴무는 절대 불가하다는 불문율을 깨고 주일 하루는 푹 쉬다오라고 말씀해 주신 것도 과장님입니다. 이미 알고 계셨을지 모르지만, 아르바이트 활동으로 용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그때 저에게는 살아갈 이유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그건 그것대로 무섭고 용기가 안 나서, 그리고 내 안의 목소리보다 주변 눈초리가 신경 쓰여서 그냥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제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거 아세요? 19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과장님의 표정과 눈빛, 말투가 생생합니다.

'교회를 가야 해서 일요일은 꼭 쉬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근무를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스무 살 까까머리 남자애가 무슨 실력이 있었겠습니까, 그냥 진심이면 최고인 줄 알았고, 패기 넘치는 게 젊음의 증거겠거니 하며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과장님은 주일 휴무를 요청하는 저를 초점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시다가 문득 당신의 이야기를 하셨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즈음엔가 횡단보도에서 어떤 차가 행인을 덮쳤고, 과장님의 바로 눈앞에서 마치 어떤 벌레 혹은 동물이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하듯 조각조각 나버린 희생자의 모습을 보셨다고요. 그 덧없음과 끔찍함에 구토를 했다고도, 삶의 의미를 한동안 잃었다고도, 그리고 종교를 잃었다고도 하신 것 같습니다. 이건 희미하지만, '너라도 교회 잘 다녀..'라고 말씀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정말 젠틀하지만, 화가 나면 새빨간 고추처럼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붉어지시던 과장님 덕분에 많이 웃기도 하고, 또 인생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가족을 떠나보내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하는.. 그 일련의 비보 속에 저는 과장님의 마음이 걱정되었었습니다. 평소 친절한 미소 속에 어떤 슬픔 같은 것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파트타이머를 하던 동기로부터 과장님이 하늘나라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 어떤 사고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고, '혹시..'라고 말을 건넸더니 동기는 '응.. 맞아'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는 그리고 저는 과장님의 SOS신호를 캐치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애써 모른 척하며 나의 생존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 원래 힘든 시절을 돌아보는 것은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기억 속에 같이 불러오기 되는 어떠한 장소, 사람 모두를 잊고 싶은가 봅니다.


과장님의 빛나던 서른 살 초반, 저도 어느덧 그 나이를 지나서 어깨가 무거워진 가장이 되었고, 또 인생의 중반부를 맞이하는 그 선에 서있습니다. 정말 많이 방황하던 제 모습도 다 보셨겠군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마도 겸연쩍은 미소로 어쩔 줄 모르는 저를 타박하다가도 큰 형처럼 웃으며 반겨주실 것 같아서 목이 메어집니다.

많이 응원해 주시고 또 지켜봐 주십시오. 과장님이 스무 살이었던 저에게 와인을 추천해 주시는 바람에 저는 여태껏 소주 혹은 맥주파보다는 와인파이고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욕 많이 먹고 지냈습니다 ㅋㅋㅋ


나중에 와인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아니다 술 이제 끊으셨으려나요, 그럼 향이 좋은 커피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푹 쉬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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