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쓰고 싶은 글은 성경이야기다. 요새 미치겠다 과학 관련 유튜브 - 세모과학, Veritasium을 자주 시청하면서 과학, 의학, 종교학, 생명과학, 천문학, 철학 등등이 결국 '공식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들을 접하면서 마음이 너무 무거우면서 또 쿵쾅대는 것을 느낀다.
난 애초부터 종교는 신성하지만 '내 생활' 과는 동떨어져있고, 또 과학은 종교 및 철학과 같이 갈 수 없고, 천문학은 대체 뭘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도 종잡을 수 없어서 그 괴리감에 곤란한 적이 많았는데-
모두가 원하는 합리적이고 실험에 기반한 과학적인 근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설계자'가 있다는 생각 말고는 할 수가 없다. 혹자는 그게 홀로그램 우주, 매트릭스처럼 다른 누군가가 시뮬레이션한 세상, 아니면 어쩌면 우연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난 전율이 흐른다.
성경도 그렇다. 그냥 심심해서 혹은 지면을 채우려고 넣은 삽화나 문구가 하나도 없다. 그게 역사와 가족을 소개하는 페이지던, 연극처럼 인상적인 삽화와 예를 드는 구절이던, 아무 이유 없이 적혀 있는 구절이 없다.(마커스 워십 김남국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깨달았다)
예전에 성경을 번역하여 기록하던 사람들은 '야훼-하나님, 신'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목욕재계를 하고 절을 세 번 하고 그 일을 계속했다고 하던가. 나는 불경? 스럽게도 그를 너무나 친구처럼, 혹은 내 애착인형, 불만을 터뜨리는 대나무 숲처럼 여길 때가 많다.
마가복음에는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간추리자면..
과부는 말 그대로 남편을 잃은 유부녀를 뜻한다. 사별이던,, 어떠한 이유던,, 내가 듣기로 그 옛날 그 시절에는 과부는 불가촉천민처럼 정말 낮은 지위와 더불어 동정심을 유발하는 대상으로만 취급받았다고 본 것 같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부자들이 헌금궤에 많은 돈을 내는 와중에 뜬금없이 과부가 등장한다. 그리고 두 렙돈을 넣는데,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그 누구보다도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시며 마가복음 41장 첫 챕터가 끝난다. 그 어떠한 사족도 없다. 그냥 그렇게 끝난다.
난 성경이 좋은 이유가 나처럼 멍청해빠진 사람에게 '예시'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평, 감회, 감상 이런 것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운을 좋아하는 감성변태 같은 나에게는 마음에 와닿을 때가 많다.
그런데, 두 렙돈이 얼마길래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하지? 아니 과부에게 생활비 전부는 좀 선 넘은 거 아닌가, 대단한데. 하고 두 렙돈의 가치를 찾아보다가 얼어붙었다. 현재 가치로 2천 원이라고 한다.
아픈 사람들 앞에서 나도 아프다고 들어내기는 그나마 덜 어려울 것 같다. 마음이 헛헛하고 우울하고 외로운 사람들 사이에는 뭔가 통하는 게 있다(내 경험상 그렇다) 그런데, 부자들이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보란 듯이 헌금궤에 넣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괄시받고 천대받으며 원치 않는 동정심까지 받는 누군가가 그 자리에 동참하는 게 과연 쉬울까.
그리고 가진 전부를 넣는 그 과부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금방 눈물이 맺힌다.
사람이 사방이 막히면 절망적이게 된다. 신앙심이 두터워지고 진리 앞에서 신실해지고, 이런 얘기는 차라리 신화에 가깝다.
과부는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전부를, 할 수 있는 최선을 드리고자 했는데 그 금액이 2천 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아 급히 글을 마치고 싶다. 이해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문득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고 싶다. 그 가난한 마음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올인할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