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습니다

by 밤호랑이

이 새벽에 카톡 구버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성공했습니다.

아이폰은 안되고 상대적으로 오픈된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보통의 갤럭시 폰이라면 가능합니다. 카톡 개편 이후 저는 분명 업데이트 설정을 해제했음에도 무용지물이었고, 결국 불필요한 사진들과 숏폼이 재생되는 카톡을 보고 있노라니 불쾌했습니다.

사실 카카오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입니다. 그들이 13년 전 떠오르는 강자로 자리매김할 당시, 광고 따위는 앞으로도 넣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공언은 마케팅 담당자의 실수겠지요. 지금은 조직이 처음의 그것보다 백배 정도 커졌다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전 이 새벽에 나름의 인간승리를 했습니다.




회식시간에 상사들로부터 제가 일취월장했으며 당신들이 바라던 모습이 '바로 이것'이라고,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뿌듯한 마음이 들더군요. 이건 뭐랄까요, 사람을 적당히 믹서기에 갈아 넣은 다음 월급 올려주고 승진시켜 주고 보너스 주고 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 같습니다. 혹자는 금융치료가 제일이다라고 말할 테지만, 전 애초부터 치료가 힘든 사람입니다.


요새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밤호랑이씨는 그래도 얘기가 통하는- 동료, 거래처 직원, 위층 사무실 근무직원.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전문성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고 같이 고민해 볼만한 넉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준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습니다.



정말 아주 오랜만에 상사들과의 회식자리가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스성 장염을 안겨주었던 그의 고충이 보이고 팀리더로서의 막중한 책임감과 사람들로부터의 비난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그냥 한 명의 아버지로 보입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도 경쾌합니다. 환경이 바뀐 건 아무것도 없는데, 제가 보는 시각과 목표의 각도가 조금 달라진 것뿐인데도 말입니다 정말이지 아주 조금.




저는 카카오처럼 혹은 프로페셔널한 그대들처럼 부유하지 않고 능수능란하지 못하며, 그렇게 가난한 게 맞습니다. 헐렁한 지갑은 그렇다고 쳐도 마음까지 헐렁할 필요는 없는데 말입니다.

만약 마음이 가난한 흙수저라고 한다면 전 완벽히 흙수저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전 좋은 흙을 물려받았습니다. 어떤 씨앗이던 최선을 다해 싹을 틔워보겠습니다. (아 그 이후에는 사실 모릅니다. 햇빛과 바람과 물이 싹을, 나무로 열매로 꽃으로 피워주겠지요. 저도 그렇게 자랐으니까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구버전 카톡이 참 반갑다는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