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방문

by 밤호랑이

부천에 있는 큰 병원에 방문했다. 둘째 딸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 판막 기형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신생아 중환자실- NICU, 인큐베이터에 일주일 가량 있었다. (나도 태어날 때 인큐베이터에 며칠 있었다고 들었다. 태어났는데 울지 않아서- 울어야 자가 호흡이 가능하다는 증표였는데 나는 그때부터 조용했다) 심장 판막이 적절한 모양을 갖추고 정확한 타이밍에 닫히고 열려야 피가 역류하지 않는데 그 모양이라는 것이 약간 다른것이다.

지금 그녀는 정말 건강하다. 사람들의 우려와 다르게 낙천적이고 애교가 많고 핑크를 참 좋아한다. 출산한 병원에서 1년 후에 추적관찰하라고 했는데 6년이 다 된 지금에야 방문했다. 그만큼 못난 아빠이고 부모라는 사실이 참 미안하다. 내 마음의 어두움에 집중하다 보면 정작 정말 중요한 사람들, 중요한 일들을 망각한다. 이게 제일 미련한 짓 것을 알면서도 반복한다.

딸이 컴플레인을 한다. 자신은 아프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먼 병원을 데려오냐고, 집 근처에 있는 소아과 상호들을 대면서. 논리적인 그녀에게 논리적으로 대답해야 한다. 태어난 병원 담당의사의 사직, 그리고 오늘 받을 진료는 예방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를 다섯 살 수준에 맞게 풀어낸다. 물론 이해할리 만무하여 나는 능글맞게 대화주제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새로운 티니핑 피겨 구입건으로 돌린다. 그리고 그녀는 금세 불쾌감을 잊는다.


비밀인데 미리 마련해두었다. 유니크템이라 어렵게 구했다.


난 항상 쾌적하고 프로페셔널하며 럭셔리한 것들을 추구해 왔다. 난 소박하고 담백한 사람이라고 광고하고 다니지만, 최고의 것들을 한 번도 마다하지 않았고 오히려 뒤로 음흉하게 그것들을 탐했다. 모든 분야에서 그랬고 의료 부분도 예외 없고.

부천 종합병원 이곳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과거 번성기의 쇠락을 보여주는 듯 수많은 상가들은 공실이었고 잿빛도시의 모습이었고 주차장은 골목 굽이굽이 내려가서야 나왔는데 공터를 급조한 듯했다. 그리고 병원 내 많은 환자와 대기인들 중에 내가 제일 어린 듯했다.

그런데 병원 입구에서부터 환자의 경중을 구분해서 정문 앞 VIP자리로 안내할지 빌딩주차장으로 안내할지 원거리 주차장으로 안내할지 정하는 주차요원 아저씨부터 심상치 않다. 놀랍게도 두리번거리는 어르신들이 포착되면 어디선가 직원복을 입은, 혹은 간호사들이 나타나 그들을 케어한다. 나 역시 두리번거리는 방문객이었으므로 즉시 적절한 안내를 받았다. 고리타분하고 언프로페셔널 한 사람은 나였다. 접수처, 방사선사, 간호사 모두 생기 넘치고 전문적이었다. 심지어 무표정이거나 사무적이지도 않았고 어린 환자인 내 딸이 겁먹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한마디로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흠이 많은 인간이 이런 서비스를 받으면 할 말을 잃게 된다.



내 딸은 정말 씩씩했다. 마치 내 걱정과 아주 조금의 불안까지 불식시키려는 태도였다. 담당교수의 진료를 기다리며 유튜브를 보여줬는데 그녀는 대뜸 음소거를 해달라고 요청을 하더니, 음성검색을 하는데 들릴 듯 말 듯 속삭인다. 이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는 아닌데? 다들 시끄러운데? 하며 딸의 행동이 의아했는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옆자리에 내 손바닥 반만 한 작은 얼굴을 하고 있는 갓난아이가 고이 자고 있다.

최고의 배려와 최고의 서비스를 목격한 나는 숙연해진다. 숙연한 오후다.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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