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교향곡
내가 그 녀석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였다. 어딘가 음침하고 어딘가 어둡고 적당히 생긴 녀석이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첫인상이 범상치 않았다. 먼저 가서 인사하고 싶은 부류는 도저히 아니었고. 하지만 본능적으로 나와 비슷한 부류라는 것을 알았다. 음란서생이라는 웃긴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와 나는 단번에 친해질 것이라는 이상한 예감, 아니다 육감이라고 하자.. 암튼 들어맞았다.
솔직히 난 그 녀석을 미친놈 혹은 미친 계집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내가 왜 성별을 특정하지 않냐면, 모르겠다 그 녀석이 남성이었는지 여성이었는지.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면 남성이겠지? 여성 혐오가 있었는데 여성 향수를 썼으며, 가학적인 모든 행위를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반디지룩에 관심이 있는 녀석이었다. -대체 반디지가 뭔지 한참 동안 인터넷 바다를 찾아봤었지 나는. 아무튼 한마디로 모순덩어리. 그런데도 '세상은 모순이니까 순대나 씹으며 그렇게 멋대로 살겠다'는 녀석이 미워 보이지 만은 않았다.
이성을 만나면 술을 오만 원어치 먹인 다음에 슬픈 이야기를 잔뜩 들려주고 눈물 콧물을 다 뽑아낼 거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눈물의 정수라는 향수를 만들고 한 5만 원 즈음 얹어서 팔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계획을 듣고 나서야 더 이상 가까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번의 사건과 몇 번의 다툼 후에 연락을 끊었었다.
직장을 잡고 몇 년 지나서던가, 다시 만난 그 녀석은 꽤 수척해져 있었는데 문학청년 느낌이 났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뭔지 아냐면서 '잘 지내 안녕 행복하길 바랄게'라는 문장을 끝으로 차단당했음을 깨달았을 때라 던가.
꽤 위태로워 보였다.
대체 무엇들이 내 친구를 힘들게 하고 뒤틀린 심성을 갖게 했을까? 부잣집 도련님 향기를 풍기던 그 녀석은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란 것 같았다. 아니다 결핍이 마음속 가득 차서 오히려 필요한 게 없어 보였을까? 돈을 벌면 노란색 머스탱을 사고 싶다는 바람을 종종 내게 얘기했는데, 아마 그가 의미한 노란색 머스탱은 세상 전부를 뜻했으리라. 갈구했던 사랑. 돈. 기대고 싶은 마음. 터놓고 얘기하고 싶은 누군가. 취미생활 혹은 유랑생활-
나는 그를 늘 사디스트 새기라고 놀렸지만, 뜻밖의 비보에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그를 이상한 녀석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둘도 없는 막역지우. 누군가에겐 자랑스러운 아들, 누군가는 그를 듬직한 선배이자 귀여운 동생으로 기억했다. 어느 누구도 음침하다던지 사디스트라던지 하며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이가 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사디스트가 아닌 새디스트라고 부를걸.
사디스트는 타인의 고통에서 쾌락을 찾고,
새디스트—가장 슬픈 자는 자기 삶의 고통을 삼킨다.
삶이란, 주느냐 견디느냐 사이에서 인간이 드러나는 이름.
이제와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여성적인 그 친구가 나와 단둘이 만나고 싶어 하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에게 어떤 해를 가하거나 부담을 준 적은 없었다. 디자인과로 편입한 그 친구는 대신 내 사진을 정말 멋들어지게 찍어줬다. 그 사진들을 진짜 찾고 싶은데 내가 여자친구랑 헤어질 때마다 싸이를 탈퇴하는 바람에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나의 멍청함이란.
오늘 같은 날 새디스트 내 친구가 보고 싶다. 같이 와인이라도 한잔 하는 건데. 나를 차단한 사람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이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