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오랜만인 것 같다. 오늘 글은 당신을 위해 쓴다.
당신이라고 하면 내 친구는 '또 누구야...? 누구한테 쓴 거냐'라고 할 것 같은데, 늘 특정 대상이 있거나 혹은 애매모호했다. 언젠가는 삼성을 들어갔다던 짝사랑녀였고, 또 언젠가는 내가 오해하던 나를 오해하던 누군가였고, 언젠가는 내 소식을 궁금해할지 모르는 친구들, 또 언젠가는 내 안의 나였다.
오늘 역시 그럴 테고.
여전히 강바닥 찌꺼기들이 시도 때도 올라와서 시야를 흐릿하게 할 때가 많다- 애초에 각오했던 일. 내가 평생 동안 지고 가야 하는 짐 혹은 싸워야 하는 것들을 알고 있음에도 어느 날은 그 사실이 서글프고, 그 흐릿한 것들을 다시 잠재우고 또 밖으로 퍼내는 그 작업을 할 여력이 없다고 느낄 때면 끝없이 밑으로 가라앉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진통제로 누군가를 찾거나 주섬주섬 그 어떤 것이라도 입에 털어 넣거나 혹은 불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를 무척 줄였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아버지 차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 엉엉 울던 때가 기억이 나는데 그가 하는 말이,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은 단지 진심을 전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의 편이었으므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의 방법이 서툴렀다는 것에 그리고 서로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는 것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위로랍시고 무슨 음악인지 틀어놓고 멍하니 있던 게 다였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불행해도 당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만족하겠다는 무서운 말들을 내뱉는 날이 많았었다. 말에 그토록 무서운 힘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렇게 쉽게 모든 걸 걸지 않았을 텐데. 그 이후로도 나는 누군가를 돕고 싶어서 아니 나를 맡기고 싶어서 내 마음을 털고 잔고를 털고 했던 일이 잦았다. 정작 그런 식으로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디에 희망을 걸었던 것일까 싶다.
마치 주식처럼 누군가 웃는다면 누군가는 울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모두가 같이 행복한 일은 정말 드문 것 같다. 피해자는 있는데 그러니까 다치고 세상을 떠난 누군가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가해자가 없다. 아무도 가해자라고 나서지를 않으니 그걸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움직임이 있을 뿐이지 누구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구태여 사회 정의를 실천하고 다른 이의 아픈 기억들을 보살피는 것은 그리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 유익한 일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세상이 돌아갈 뿐만 아니라. 그걸 밝혀내자는 사람 사이에도 시비가 붙고 싸움이 일어난다. 이미 마음과 몸이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졌으므로, 그 선하던 눈동자들이 도끼눈이 되고 초점도 흐려 보인다. 반정부주의자가 된 것은 덤이고.
언젠가는 나아지겠지만, 제 자리로 돌아오겠지만 지금 이 시간을 오롯이 감당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근 6개월간 오롯이 감당하다가 작은 물결이 좀 큰 파도가 되고 풍랑 주의보 뉴스를 접하면 지레 겁을 먹는다. 또다시 허우적거리고 숨을 못 쉬다가 수장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