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랜디

애증과 고마움, 복합적인 감정에 대하여.

by 밤호랑이

벤순이 랜디 볼빙.

아내와 나는 차에 애칭을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도 매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주는 차에 대한 고마움 일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동차 잡지 사는 것을 좋아했다. 조그마한 경차부터 몬스터급의 슈퍼카까지 아주 다양한 전 세계에서 출시한 차들을 소개하는 잡지였는데, 난 그중에 특히 일반 세단이나 스포츠카 등을 '튠업'- 입맛에 맞게 외관이나 내부디자인, 주로 성능을 개조한 차량을 소개하는 페이지를 좋아했다. 원래 있던 차량을 다채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 정말 신기하고 매력적이었다. 그 와중에 성인이 되어 내 맘을 빼앗아간 차량이 있었는데,

크라이슬러 퍼시피카, @네이버이미지검색

뒷모습이 매력적이었고, 'Pacific' 바다를 닮은 그 이름에 나도 모르게 홀린 것도 같다. 나중에 언젠가 가정을 꾸리면 꼭 패밀리카로 해야지 하는 생각. 넉넉한 좌석만큼이나 넉넉한 마음으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는 무언의 바람도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는 하이브리드 SUV로 올드한 멋을 살린 차량으로 출시되었다.)




사람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늘 외제차를 꿈꾸던 내게 정말로 '외제차'를 운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비록 바다를 닮은 차는 아니었지만 내가 바라던 것들을 이루어간다는 점에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첫 차는 아주 오래된, 덜덜거리는 세단이었고 또 언젠가는 엔트리모델에 리스차량이었.

지금 타고 있는 차량도 외산인데, 이 차량을 중고로 인수하게 되었을 때 모두가 말렸었다. 과도한 수리비와 잦은 고장으로 유명한 차량이라고. 그래도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주어 여러 곳을 누볐다. 아이들도 이 차에 대해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갓난아이적부터 늘 함께했으니, 어쩌면 나의 추억만큼이나 애착이 생겼으리라.

그런데 주행거리가 10만 킬로를 넘어가니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겼다. 리콜대상이라는 통지문이나 심각한 문제를 의미하는 빨간 엔진 경고등으로 서비스센터를 여러 차례 방문했는데 수리비가.. 입을 벌리게 했다. 몇백만 원이 마치 몇천 원처럼 청구되는 모습을 보며 경악했다. 다행히 보증기간이었으니 망정이지..

내 차량은 권장하는 엔진오일도 다른 차량의 그것보다 두세 배 비싸고 공임도 비싸다. 어제는 계속된 경고등에 사설 서비스센터를 찾았는데, 사장님이 이 차량은 원래 그렇게 타는 거라고, 그리고 십만 정도 타면 '터질 때' 됐다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다. 공식센터의 정비사셨던 분이라 이 차량에 대해 잘 아신다. 가감 없이.




이제는 외산만을 고집하던 나의 어리석음과 허영심을 반성한다. 요즘엔 국산차도 정말 잘 만들뿐더러 무엇보다 럭셔리하고 아주 튼튼하다고 소문난 값비싼 차량은 그걸 유지할 능력이 되어야 빛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친구 랜디와 얼마나 더 오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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