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대한 소회

탕자의 고백.

by 밤호랑이

중독에 대한 다소 '이론적인' 글을 쓰기 전에 잠시 내 얘기를 하고 싶다. 끔찍한, 이를 악물어야만 하는 기억 불러오기 과정이지만 이걸 하지 않고서는, 인정하지 않고서는 내 마음속의 아이를 달래주기 힘들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어느 정도냐면 밤새 한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과거의 내 모습이 나를 무표정으로 아니, 눈물이 가득 찬 상태로 날 바라보고 있다.




어려서는 인정 중독이었다. 외가에서는 첫 손주였고, 친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네 살 무렵에 한글을 익혔기에 아마 더 큰 기대를 거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과 더불어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평범한 가정이었는데 우리 부모님은 내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다, 꼬마였던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조금이라도 다양한 경험을 해주고 싶어 모든 종류의 학원을 등록시켜 주셨다. 사실 어린 나이에 벅차고 큰 스트레스였지만 그때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내 능력을 한참 초과했음에도 강행하셨던 건 아마 부모님의 욕심도 한 스푼 있지 않았을까.

결과는 내 맘 같지 않았다. 나보다 뛰어난 친구도 많았고, 항상 학업과 체육과목은 어렵게만 느껴졌다. 주변사람들의 실망한 표정과 분위기는 내게 좌절감을, 그리고 마음 약한 기질과 조그만 체구의 나는 곧잘 놀림감이 되었고, 곧 무력감이 되어 나를 덮쳤다. 어린 나이- 6학년으로 기억한다- 에도 현실을 잊고 싶다는 글을 주기적으로 썼다. 결과적으로 나는 인정 중독과 게임중독에 빠졌다. 그리고는 주로 애정결핍 혹은 관계중독으로 내 인생 전반을 외로움과 우울, 절망감속에서 지내게 된다. (가뜩이나 찌푸리고 무거운 표정과 마음을 가지고서 이성관계 또한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정말 힘겨웠던 20대 중반까지 어찌어찌 보내고 나서는 20대 후반에 동반자를 만났고, 여행중독자로 신나는 신혼생활을 한 것 같다. 어김없이 우울과 절망의 그림자는 다시 나를 찾아왔는데, 난 그때부터 온갖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것을 찾아 방황했다. 도파민이 뿜어져 나온다면 그 어느 것도 거리낌이 없었다. 관계중독, 알코올중독, 항우울증 약물의존 등등에 빠지게 되는데, 내 입으로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다. 오로지 도파민을 위해 음지에서 불나방 마냥 방황하던 내 모습이 처참할 정도로 가증스럽고 안타깝고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 시기에 대해 아주 조금만 언급하자면, 야간 근무를 할 때면 얼굴이 벌게져서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고, 다른 사무실 직원들이 건물 안에 상주하는데도 나는 넋이 반쯤 나간 얼굴로 복도에서 술냄새를 풍기는 때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인 내가 '가정 밖에서' 애정결핍을 위시한 관계 중독, 인정 중독에 빠지고 나니 당연히 가정은 박살이 나게 되었다.

마약중독자 같던 나는 금단증상과 더불어 잠시간의 공황장애를 겪은 후에야 끊어 낼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사회적 규범이 있다.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법과 규칙으로 강제성을 띄고, 이런 부연 설명이 없더라도 나를 사랑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난도질한다는 점에서 모든 중독은 이롭지 못하다. 내가 단정 짓는 말투로 말한다면 그것은 내가 겪어봐서 정말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경험한 사실만으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는 생생한 증인임을 자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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