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당구는
내 기억 속에 뭔가 음지, 껄렁한 사람들과 자욱한 담배 연기 그리고 당구장 짜장면이 그렇게 맛있다는 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선배들이 당구 좀 치냐? 축구 좀 하냐? 농구는 좀 해? 술은 좀 마셔? 와 같은 물음에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어서 초라했고 얼마 되지 않는 남학생 숫자에 이바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차라리 여자 향수에 대해 좀 아냐? 분위기 잡을 만한 곳 좀 아냐? 맛집 어디가 괜찮냐? 하면 성심성의껏 알려줬을 텐데.
우연찮게 유튜브에서 당구 중계 하이라이트를 보다가 이질적인 장면 두 개를 보았다. 프로 경기였는데, 첫 번째는 우연히 득점하는 상황에서 선수는 자신의 실력이 아닌데도 스코어를 따낸 것에 대한 사과로 목례를 한 것이었다. 자신이 이겼는데도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내가 이겼으니까 상대방을 눌렀음에 오는 성취감과 정복감에 오는 승리자의 여유 있는 웃음이 아니고, 굳은 얼굴로 정중하게 고개를 굽힌다.
두 번째는 자신의 스코어가 오를 상황이 아닌데 득점이 되었다고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정당한 득점이 아님을 밝히는 판독을 요청한다라..
쇼크였다. 말이 안 되는 상황. 아무리 신사적인 스포츠라고 해도 경쟁이고, 어떻게든 이겨야 승자가 아닌가. 사회도 그렇지만, 경기에서 예의 바르다고 해서 우승컵을 안겨주지 않을 텐데.
우연히 네이버 뉴스에서는 '레펀스'라는 벨기에 선수가 최근 한국의 챔피언십 경기에서 우승을 했고, 기자는 그의 인품을 칭찬하는 기사를 실었다.
생각해 보니까 예의 없고 껄렁한 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