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새벽에 느끼는 기분이 분노보다는 화에 가깝다. 분노라고 하면 뭔가 전문적인 용어 같기도 하고, 합당한 상황에 합당하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생겨나는 기분인 것 같아서 쓰기 싫었다.
차라리 합당하지 않은 상황에 합당한 기분이 화인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일요일 오전시간까지만 해도 마치 천국에 있는 양 아름다운 부녀간의 모습이었고, 나 역시 어딘가 다정하고 따뜻한 아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꾸며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아이들만이라도 순수하고 순결하게 양육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교회 예배는 빠지지 않도록, 예배시간에 늦지 않도록 픽드롭을 하는데 또 내 완벽주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내가 쟁여놓은 청소기 필터, 아이들을 위한 모기 기피제, 오후에 아버지를 보여드리려 했던 큰 딸의 작품.
없으면 사면되고, 지금 당장 없다고 해도 크게 지장이 없는 그런 물건들. 품목당 100달러가 넘어간다거나 (와 나한테 100달러면 크다) 그렇다고 내가 실수로 버리지 않았을, 분명 어딘가에 있는 물건들.
난 금세 예민해졌고 가까스로 아이들 예배시간에 맞춰 교회에 도착했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파킹 자리를 찾아봤다. 교회 옆 공영 주차장까지 만차라서 차를 돌려 나오려는데 흰색 고급세단이 내 앞에서 얼쩡거린다. 출구 바로 옆에 무리한 통로 주차를 하려고 후진 등이 들어오는 순간, 난 액셀을 밟아서 뒷부분을 받아 버릴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차량 후미를 가격함에도 내 과실이 백프로로 잡히진 않겠지. 출구 옆 불법주차를 하는 당신에게도 과실이 잡히니까 보험회사에서는 나를 사이코패스로 보지 않겠지 하는 다분히 '사이코패스'적인 생각을 하면서.
모처럼 아이들과 외식을 하고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는 게 플랜이었는데, 내가 무척 좋아하는 피자집이 눈에 들어왔고, 아이들에게 아빠와 오늘만큼은 이곳에서 같이 식사를 해주었으면 하고 양해를 구했지만, 큰 딸은 내가 정한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익숙한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 가기 싫다고 했다. 곧이어 메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며 무작정 떼를 피웠다.
구원투수로 아내가 우리와 합류한 다음에도, 타협점을 찾은 다른 레스토랑에서 가서도, 내 기분은 풀리지 않고 더불어 굳어진 얼굴도 풀리지 않았다. 그제야 내 눈치를 보며 내 옆에서 고양이 마냥 치근덕 거리는 내 딸.
내 근사한 플랜을 취소하고 어찌 모를 피곤함에 난 꿈속으로, 아내는 아이들과 놀이터로 향했다.
저녁이 되어서야 난 다시 다정한 아빠로 돌아왔고, 다 같이 라면과 김밥을 먹으려던 나에게 내 친구의 딸이 컵라면을 기다리다가 부주의로 다리에 화상을 입어 응급실에 가는 길이라며 카톡을 했다.
그리고 한밤중에 잠에서 깬 내 딸이 자신을 재워달라고 나를 깨웠기에 이 글을 쓴다.
26년이 되도록 잊히지 않는다면 그건 트라우마겠지 분명. 지금의 악한 버릇들을 만든 근원적인 사건이라면 그건 트라우마가 맞겠지.
분노
학술용어로는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하거나, 손해를 강요당하거나, 위협을 당하거나 혹은 상대방의 언행이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등 여러 불합리하고 부당한 상황에서 생길 수 있다. 흔한 감정이지만,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정이다 보니 어떤 인간이라도 때로 심한 경우는 분노를 통제하기 힘들다. 짜증, 스트레스,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는 승화라는 방어 기제를 활용할 것이 권장되어, 운동이나 드럼이나 취미 등으로 분노를 해소할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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