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사전이 있을까?
여의도 ifc몰에 영풍문고를 찾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산리오 전시회를 찾았다가 아이들에게 서점을 보여주고 싶어서 들렀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책 한 권씩을 선물했는데 큰 딸이 고른 책이 바로 '아홉 살 마음 사전'이라는 책이다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사실 우리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기분도 뇌의 전기신호에 따라 이루어지는 입출력의 과정인데, 왜 누군가는 당혹스러움과 창피함으로, 누군가는 즐거움을 동반한 하나의 에피소드로 쉽게 흘려버릴 수 있는 걸까.
큰 딸과 좋아하는 감정, 싫어하는 감정을 각자 하나씩 골라보기로 했다.
그녀는 좋다 / 불쾌하다의 감정을 골랐다. 어쩌면 아이가 고를만한, 단편적이지만 직관적인 감정을 선택한 것 같았다
우리도 매일 '좋은 것'을 선택하고 '기분 나쁜 것'은 멀리하지 않던가. 사람이던, 물건이던, 여행지던, 음식이던.
아빠가 자기를 재워주는 일러스트와 자신을 비난하고 놀리는 친구가 실려있는 페이지를 보고 선택한 것 같아서 큰 딸의 마음이 대번 와닿았다.
다음은 내가 고른 감정들이다.
난 스무 살부터 난 항상 마음의 평안을 원했다.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의 어떠한 파동이 없는 고요한 상태. 아니 파동이 있더라도 은은하게 울려 퍼져서 마음에 '조용한' 울림이 있는 그런 상태. 자연과 벗 삼아서 마음 치유되는 그림을 상상했다. 큰 딸은 이 감정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며 '정말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이네?' 하고 공감해 주었다. 벌써 이 만큼이나 컸구나 너.. (조리원에서 큰 딸을 안았을 때는 두 손, 아니 한 손과 내 팔을 이용해서 그녀를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발은 엄지 손가락만 했고.)
주저 없이 이 감정을 내가 싫어하는 것으로 골랐는데, 오른쪽에 감정을 설명하는 페이지를 보자마자 불쾌함과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내가 어릴 적 느꼈던 그것들을 있는 대로, 너무나 직관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내가 왜 학창 시절부터 불안정 애착과 유기 불안으로 시달렸는지. 나를 평가하는 그 모든 순간에 내가 미칠듯한 불안감에 한 겨울처럼 덜덜 떨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심층적인 심리분석을 받지 않아도 말이다. 난 이 불안이라는 친구는 내게 애정결핍은 물론이거니와 인간관계와 가정, 회사 생활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이 세상과 작별해야 하나 심각한 고민을 했을 정도로.
신나게 회복하곤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인다. 과거를 후회하는 단계는 넘어섰지만 여전히 생채기가 아물어 가는 과정이 쓰리다. 여태껏 이 상처에 술을 들이붓고 상처를 스스로 벌리기도 하고 여타 잘못된 연고들을 덕지덕지 발라서 많이 덧나버렸고, 결과적으로 회복을 시작하는 시점이 무척 길어졌다.
큰 딸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작은 딸은 옆에서 '가진 것에 만족하고 불평하지 않아요'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천만금을 줘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들을 각자의 속도로, 마음이라는 스펀지로 조용히 흡수하고 있는 내 딸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