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오고가며 만나는 이웃 주민들
내가 구한 농지는 원주시 호저면에 위치한다. 시내에서 가깝기도 하고, 작년에 일하며 알게 된 사회적 농장이 호저면에 위치하고 있어서 종종 오고가며 내게는 제법 익숙한 동네다. 농지은행을 통해 농지를 구하던 시점에 살던 집의 계약이 만료되어 살 곳도 함께 알아봤지만, 밭과 집 모두 만족스러운 위치에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내가 사는 집에서 10분 거리인 지금의 밭을 구하게 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서울에 살 때는 어느 동네에 사느냐가 중요했지만, 원주 와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아주 외곽이 아니고서야 차로 20분이면 대부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내에서 10분 떨어진 면단위로 이사를 오면서 단구동이나 관설동이 20분이 걸리니 묘하게 멀게 느껴졌다. 원주 외곽을 도는 자동차 전용 도로를 타고 바로 가는 동네가 아니고서야 원주 사람들이 말하는 ‘20분’의 거리 감각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 중이다. 간혹 내가 사는 동네가 횡성과 더 가깝지 않냐면서 내가 사는 곳은 원주가 아니라고 놀림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사는 동네에서 횡성읍내까지 차로 15분 거리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주 시내에서 엄청 먼 것도 아니다. 흥!
그렇게 흘러 들어오게 된 호저면. 처음에는 문이 열린 식육점에 들어가 인사를 나누고, 근처 초등학교의 플라타너스 나무를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역시 발바닥을 직접 딛고 다니니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한다. 동네가 참 귀엽고 아늑하다. 밭 바로 옆 자전거 도로 겸 농로는 강을 끼고 있어서 풍경이 정말 멋지다.
산이 부채처럼 펼쳐진 풍경을 보며 산책하는 이웃 주민을 종종 만난다. 가장 먼저 알게된 주민은 나처럼 밭만 이곳에 있는 분이다. 은퇴 후 자급자족 농사를 지으며 지인의 아지트로 쓰느라 계약 전 농지를 확인하러 갔을 때 마침 고기를 굽고 계셔서 옆에 앉아서 얻어먹기도 했다.
대체적으로는 젊은 사람이 농사를 짓겠다는 말에 호의적이다. 손녀딸과 또래라며 농사를 짓는다는 말에 걱정을 하고,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시는데 이런 관심은 참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가끔은 필요 이상의 개인적인 부분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 결혼했냐고 물어보면 ‘이미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청년 여성 혼자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뒤에 이어질 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예측할 것이다.
밭에 비닐을 씌우며 옆에서 망초대를 캐고 있던 한 어르신을 만났다. 혹시 작년까지 이 땅에서 농사를 짓던 분인가 싶어 인사를 하러 갔는데, 대뜸 내가 빌린 땅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으시는 게 아닌가.
‘여기서 농사 절대 못 지어. 왜 이런 땅을 빌렸어? 옆 땅을 같이 빌려야지. 거긴 작년에 들깨가 참 잘됐더만.’
‘제가 빌릴 수 있는 땅은 이런 땅 밖에 없어요.’
‘보니까 좀 젊은 것 같네?’
‘네, 그래도 서른은 넘었어요.’
‘결혼은 했고?’
‘안 했어요.’
‘어휴, 결혼을 안해? 여기서 농사를 어떻게 지어? 골칫덩어리라 부모님은 어쩌니?’
‘저희 부모님은 저 열심히 산다고 좋아하시는데요?’
사회생활용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했다. 서른 넘은 여자가 결혼을 안 해서? 농사를 지어서? 알 수 없는 잣대로 누군가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하다니. 이건 잘못된 일이다. 나는 절대로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좋은 사람만 가득 만날 때 한 번씩 찾아오는 이런 이들은 인간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준다.
저런 말은 가볍게 튕겨내는 게 당연하다. 부모님께나 나 자신에게나 부끄럽게 산 적 없고, 내 몫을 해내려 무던히 애를 쓰며 살았다. 대화한 지 5분도 안된 모르는 사람에게 내 소중한 기분을 맡길 수는 없다.
어릴 때 들었다면 무심한 말 한마디에 상처 받았겠지만, 이제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던지는 말을 들으면 지나온 인생을 떠올린다. 그럼 내가 마구 자랑스러워지거든!
이런 땅에서 농사 짓는게 어때서?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가족으로 선택한다면, 그건 적절한 때가 되어서지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함은 아니다. 무엇이든 내 삶에 꼭 맞는 타이밍으로 흐르고 있다. 봄이 오지 않는다고 의심할 때가 아니다. 그저 믿어야 한다. 봄은 꼭 와야 하는 때 알아서 오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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