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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라 Mar 26. 2023

[0] 왜 갑자기? 왜 덴마크?

갑자기 덴마크로 떠나게 된 이유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어떤 식으로 반영됐는지 생각하는 방법으로 기억을 재생산해 낸다. 포기와 선택을 반복하며 발견한 약함을 인정하고, 가진 특질을 활용하며 살기로 한다. 타고난 약점을 단점이라 여기며 온갖 애를 써봤지만, 결국 바꾸지 못했던 데서 생긴 열등감으로 과거를 헤매던 내가 살기 위해 고쳐먹은 마음가짐이다.


박혀있던 돌을 방해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껏 문제를 푸는데 경험이라는 보기를 제시한 후 O, X를 하며 살아오는 방식으로 다음에는 뭘 할지 거침없이 선택해 왔는데, 계속 X만 표시하게 되는 인생.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살아온 삶을 살펴봤다. 양심에 반하는 회사에 다니다 큰 고민 없이 그만뒀다. 삶의 모양과 방향성에 과한 강제를 요구하는 회사에서 어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조직 속 모든 관계가 오늘은 끊어졌다. 내 예민함이 감당하기에 큰 조직에 적응하는 일은 다시 못 할 짓이다. 보여주기 위한 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내가 제대로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고민하던 순간, 원래 받던 월급의 절반 그리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이름도 포기했다. 왜 해야 하는지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리는 일투성이에 파묻히는 삶도 결국 그만뒀다. 개인의 희생으로 굴러가야만 하는 구조, 다시 그대로 돌아간다면 반복할 수 없다. 견고한 수직적 위계질서에서 나는 늘 그 자리에 멈춰 있을 게 뻔했다.


규모가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특정 틀이어서, 조직의 주된 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의 잘못으로 못 견뎠다고 하기에 결과는 늘 같았다. 내가 잘못하는 걸까, 예민한 걸까를 넘어서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 보다, 사회 부적응자는 나를 말하는 것이라는 결론까지 이르렀다. 지금 같은 삶의 방식이 나로 존재하기에 적절한 방식인가? 답을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질문이 머리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늘 고민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 가만히 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규모도 바꿔보고, 조직의 성격도 바꿔보고 갈 수 있는 곳은 다 가봤는데 결국 어떤 방식도 내게 맞지 않았다. 질질 짜고 울면서 견뎌봤지만 결국 다시 선택의 순간 앞에 놓여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라며 무던히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앞에 놓인 결과물이 초라하다. 다시 조직의 형태에 진입한다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올 것 같다는 상상 아닌 현실이 나를 한동안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살아있고, 죽음으로 시간이 멈추지 않는 한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하니까. 조직 속에 있을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면 정말 무의미한 시간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즐겁고 행복했던 일이 있으니까 이제껏 무엇이든 해오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그런 순간들을 떠올려 보려 애썼다. 대신 이번엔 잘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로 방향을 틀었다. 대학 생활 대부분을 채우며 나름의 비전을 갖고 해내고 싶었던 소셜 분야는 부족한 역량으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픈 마음 애써 외면하며 내려놓았다. 그리고 떠오른 두 가지.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 그래, 내겐 좋아하는 게 있었다.


갑자기 예전에 봤던 짧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본인이 가진 것에서 가지지 못한 것만 찾다 보니, 내가 있는 상자 안에서 문제를 바라보다 보니 늘 그걸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말했던 내용이다. 나를 감싸던 틀을 벗어나면 작은 선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마지막 이야기도.


혹시 나도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방식을 벗어나 다시 바라본다면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있던 상자에서는 비현실적인 문제 해결 과정이자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의 흐름이지만, 어디에서도 거절당하는 혹은 스스로 거절하는 상황에서 선택지는 없어지는 상황이었다. 삶의 방식을 바꿔보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몇 개 안 되는 시도였다. 그렇게 어딘가로 떠나자고 마음먹은 계기는 회피성 결정이었다. 하나에 꽂히면 망하더라도 누가 말하더라도 내가 직접 해봐야 하는 성격인데, 고민의 결과는 언제가 되었든 행동해야 나만의 답이 나왔고, 이번에도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속 나와 대화를 시작했다. 외국을 간다면 어떤 방식으로 갈 수 있을까? 여행? 모아둔 돈 있어? 아니. 나 병원비 검사비로 돈 꽤 많이 날려서, 모아둔 돈은 기대하지 마. 그러면 여기서 돈 벌어서 갈 거지? 그럼 어디든 다녀야 하는데 하던 일 계속하기에는 암담한 결론만 기다리고 있는 걸, 견딜 수 있겠니. 여행이나 학업이 아니기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금으로는 '워킹 홀리데이'가 최선의 선택지였고, 1년이라는 단기 비자를 취득한 외국인 노동자로 일을 구하게 되면 서비스업 쪽으로 할 텐데, 해본 적 있니? 답하지 못했다.


발랄한 모습과 달리 나는 서비스업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나마 가까운 것이라 하면 토플 시험 감독관과 청소년 혹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했던 수강생 응대 정도.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24시간 회사를 벗어날 수 없는 정신적인 힘듦이 가장 컸다. 몸은 사무실에 앉아있더라도, 퇴근 후 집에 있더라도 내 정신은 회사를 벗어날 수 없었다.


왜 이제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나는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일을 좋아했으니, 이제 도전해 볼 만한 순간이다. 서비스업은 손님을 만나는 짧은 순간일지라도 정신적 고통이 있지만, 그래도 장기적인 스트레스는 아닐 테니 아는 사람에게 받는 정신적 상처가 컸던 내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업무 시간도 정확히 지킬 테니까 낮에는 생계 해결을 위한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내가 하고 싶었던 글도 쓰고, 관심 있는 분야 공부도 해보자고 새롭게 삶의 모양을 잡아갔다.


어차피 한국을 벗어나서는 외국인 노동자로서 먹고살아야 하니까, 다녀와서도 이 일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테니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도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찾은 ‘바리스타’라는 직업.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니 왠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원래 1년 할 생각은 없었는데 계획이 계속 틀어지면서 애매하게 가느니, 자격증도 따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생각하며 내 열등감을 털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그렇게 워킹홀리데이로 가닥을 잡고 어디를 갈지 나라를 알아보고 있었다. 많이들 가는 호주, 캐나다 등을 떠올리니 내가 어떻게 지내다 올지 대충은 예측이 되기도 하고, 주변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기왕 도전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는 어려운 도전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취향을 살펴봐도 무난한 건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독특함과 새로움이 내 마음을 이끌었고 가보지 않은 길에 호기심이 컸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언어인 영어로 살아가기에 적합하면서도 많은 정보가 없는 나라들이 있을 유럽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덴마크를 보는 순간 마음속 두근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영국-오스트리아-독일-체코 등 다른 나라도 많았는데, 심지어 비슷한 스웨덴도 있는데 왜 하필 비자 받기도 귀찮고 비용이 많이 드는 덴마크에 내 마음이 머무는 걸까? 미래를 고민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 걸렸지만, 막상 국가를 정하는 데는 3일 정도의 짧은 시간이 걸려 덴마크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친한 친구에게 '나 덴마크 가려고.'라고 말했더니 너무 놀라고 뜬금없어했다. 실은 나도 너무 뜬금없어서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세상이 골고루 재밌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왜 평생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 갑자기 마음이 끌렸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뭔가 내가 살아온 삶 속에서 이유가 있겠지 싶어 반대로 추적해 보기 시작했다. 대개는 그 순서가 반대여야 하는데 나는 직관적이고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바라보는 일편단심 사랑꾼이기에 반대로 과거를 추적해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2013년 3월~8월, 6개월 동안 필리핀에서 장기봉사자로 지내는 동안 덴마크 봉사자들과 같이 지냈던 기억. 그래서, 엄청 친해서 그들과의 추억을 잊을 수 없어서 덴마크로 떠나기로 마음먹었을까? 아니다. 같이 지내던 봉사자가 친했지, 나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초반에 같이 지내고 어울리면서 현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고 오히려 멀어지는 것 같아서 기관에 있을 때만 친하게 지내자고 결심한 이후로 기관에서 같이 요리해 먹거나 장 보러 갈 때, 덤프사이트(필리핀 톤도 내 쓰레기 하차장이 있던 지역을 지칭하는 말)에 활동하러 갈 때만 어울렸기에 사적으로 친하다고 할 수는 없고, 함께 지내는 기관 봉사자의 역할만 했다고 생각한다.


같이 지내는 동안은 그렇게 친하지 않았지만, 다녀와서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던 건 사실이다. 필리핀 사람들과 친해지고 기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도 힘들지 않고 마냥 기쁘기만 했나? 그렇다고 말할 수도 없다. 타고난 내 모습을 버리고 현지 기관에 맞추면서 심하게 눈치를 보며 안 그래도 예민한 성향 더욱 예민해졌다. 기관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마을 청년 단체와 어울리는 것도 눈치를 보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질투를 받지 않기 위해 늘 눈치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내가 만들어놓은 기준이 아니면 틀렸다고 생각한 부분도 많았다. 그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기 위해서 애썼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던 것을 버리고, 편한 방법보다 어려운 일을 선택하며 그 과정이 무척 힘들기도 했다. 같이 지내던 한국인 봉사자도 나와 비교를 당하는 경우가 있어 힘든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 잘 먹는 척했지만 쟁반만 한 접시에 밥을 가득 담아 먹어도 지금 몸무게보다 10kg 이상 덜 나갈 정도로 정신과 몸을 혹사했다. 말 그대로 무리했기 때문에 얻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닌 만들어진 내 모습을 향한 인정과 사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목적에 따라 봉사활동은 봉사활동대로 열심히 하고 자신들이 이제껏 살아온 방식대로 여가를 즐기는 건 즐기며 나름의 균형적인 삶을 지냈던, 힘든 건 힘들다 표현했던 덴마크 봉사자들을 신기하게 여겼다. 대화하면서 느낀 당당함과 솔직함에서 어떻게 저렇게 살아온 걸까 궁금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무조건 기관에 맞추고 그랬는데.


덴마크 봉사자들이 필리핀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헤어질 때도 See you someday라 말하며, 서로 만날 일이 있을까 내가 평생 덴마크란 곳을 갈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헤어졌던 게 마지막이다. 하지만 함께 지냈던 6명의 친구 중 한 명인 마가인이라는 친구와는 2년 전 필리핀에서 만났다. (이 친구와는 나중에 덴마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 당시 마가인은 미얀마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매년 필리핀을 간다는 걸 알고 먼저 연락해서 내 일정에 맞춰서 온다고 했다. 그렇게 이틀 정도 마을 축제할 때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때도 나라면 전전긍긍하고 고민했을 부탁도 척척 하는 걸 보고 날 편하게 생각하는구나 혹은 본인이 필요한 건 분명히 말하는구나 생각했다. 부탁을 하거나 요구를 할 때 감정소모를 많이 하는 나와 정말 아주 달라서, 내가 아는 부분이 모든 덴마크인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이질적이면서도 닮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긍정적인 느낌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세상을 바꾸는 15분이라는 강연을 유튜브를 통해 보기도 하고 직접 현장에 가는데, 3년 전인지 4년 전인지 꽤 오래전 그때 ‘휘게’라는 이야기를 처음 알게 해 준 에밀이라는 덴마크인과 그와 결혼한 유민 님의 강연이 있었다. 막상 그때는 한창 인기 있던 알베르토 님의 강연이 궁금해 갔던 게 목적이었는데, 물론 그 강연도 무척 좋았지만 오래 마음에 남았던 건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에밀 님과 유민 님의 강연이었다.


이런 무의식의 향연으로 3일 만에 덴마크라는 나라에 꽂힌 나는 덴마크라는 나라와 덴마크에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 해도 1년에 100명도 가지 않아 자료가 거의 없긴 했지만, 덴마크라는 나라를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마음 가는 부분이 많았다. 나는 뭔가 좋아하면 '아! 이건 인연이야!' 혹은 '우리가 마주치게 된 건 운명!'이라고 하며 금사빠 감정과잉이라 그렇게 해서 빠져들게 되어, 이제 4일 뒤면 출국을 한다는 이야기. 서론은 참 무겁고, 결정은 가벼운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였다.


20대의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며 새로운 방식의 삶을 상상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분리하는 시도를 했다. '꾸준히 글을 써보자, 하고 싶은 일 이것저것 해보자’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노동을 마친 후 여가를 충실히 보내고 있던 와중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될 강연을 듣게 되었다. 내가 관심 두고 있던 사회적 소수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상호문화’라는 개념을 알게 되며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단순히 좋아하는 일을 쫓아서 하게 된 경험으로 장기적 계획도 세우게 되었다. 잘하는 일을 하며 좋아하는 것을 일에서 찾지 않겠다며 떠난 방황의 길에서 과거의 경험과 실패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보이지 않던 여정도 멈추지 않고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보이고, 힘들어서 했던 결정들이 생각해 보면 내가 걸어온 길 속에 파묻혀있던 보석이었다는 것. 그걸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준 지난 1년, 참 의미 있던 도전이었다. 재밌는 길만 찾아갔는데 더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불안, 실망, 좌절, 슬픔, 그러면서도 뿌듯함, 즐거움, 사랑으로 가득한 여정! 나는 마음을 다해 느끼는 중이다.


(2019.04.10.기록 2023.03.09.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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