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나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원주에 농구 경기를 보거나 교육받으러 오는 방문객에 불과했다. 지금은 원주에서의 새로운 삶을 상상하는 예비 원주민, 주말마다 원주를 오는 바람에 반 원주사람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원반인이 되었다. 원주에 유입된 사람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로 원주라는 지역과 관계를 맺는다.
작년 9월, 원주에서 교육에 참여하게 되어 교육일 이틀 전에 표를 예매해야 했다. 평일 아침이니까 괜찮을 줄 알았는데 원주역으로 가는 표를 봐도 매진, 만종역으로 가는 표를 봐도 매진이었다. 교육이 오후 1시부터 시작이라 오전에 무조건 가야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침 7시 22분 만종역으로 가는 표를 겨우 예매했다. 주로 주말에 가거나 평일 오후에 출발했기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만종역에 가까워지자 주변에 앉아있던 대부분 사람들이 일어났다. 사람에 휩쓸려 정신없이 역을 빠져나오니 큰 버스가 줄지어 서 있었다. 버스 문 앞의 창문을 살짝 들여다보니 여러 기관, 기업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원주 혁신도시에 있는 공기업, 공공기관의 통근 차량이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 덩그러니 역 앞에 앉아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갈 수 있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으로 검색했다. 대기 시간과 함께 50분이 걸린다길래 택시를 타고 10분 만에 교육 장소 근처로 이동했다. 그 당시 버스가 빠져나간 풍경을 바라보면서는 막연히 지역 이주에 관심이 있었으니 ‘원주에 일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끝이었다. 이후 원주로의 이주를 생각하게 되면서 지역에서 살아가는 일상의 현실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원주에 오는 원반인이 아닌 원주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원주민이 되기로 결심하자 원주에 사는 친구들이 가장 먼저 하는 조언은 원주에서는 차가 없이 살기 힘드니 ’운전면허‘를 따라는 말이었다. 서울 같은 수도권에서 살 때는 대중교통을 타고도 어디든 갈 수 있었기에 오히려 차는 비용이자 짐이었다. 원주에 오면 그게 반대가 된다. 원주역에서 시내로 갈 때 우연히 시간이 맞으면 30~40분 정도 걸려서 버스를 탈 수 있지만, 시내로 가는데 택시에 비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고 편도 7,000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버스를 탔더라면 1,700원은 버스비로 쓰고, 나머지 5,300원은 중앙시장에서 커피 한 잔과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다.
원주에 일터가 있는 사람과 원주에서 살고 싶은 나와의 차이는 일터가 원주에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 저마다의 이유로 원주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원주라는 지역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 ‘어떻게 보고 느낄 것인가’의 물음표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원주에 통근 버스를 타고 와서 자신의 삶터와 일터만 오가는 사람들은 여가 시간을 원주에서 보내기가 어렵다. 몸은 이사를 왔지만 마음은 이사를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주에서 자신의 의지로 지역과 관계를 맺을 계기가 필요하다. 일을 계기로 원주에 오게 되었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도 즐길만한 문화생활도 없는 곳에 마음이 함께 올 리가 없다.
주말마다 원주에 놀러 오는 자칭 반 원주사람, 원반인인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 중 하나는 중앙시장 인근이다. 여행에서 시장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이 모였을 때 느껴지는 시장 특유의 활기가 좋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오래된 풍경을 간직하고 있고 여러 시장이 모여있는 곳이기에 원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카페는 매력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유일함과 새로움, 고유성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다닌다.
원주에서 지역 친구를 처음 만들었던 프로그램에서 아카데미 극장을 방문했다. 뒷마당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더니 오래된 가정 내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통로로 연결된 아카데미 극장 내부에는 아카데미 극장을 지키기 위해 모금에 참여한 시민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를 원주에 초대한 친구는 “아카데미 극장 모금에 참여했을 때 내가 원주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어”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쌓여있던 먼지와 쓰레기를 치우고 의자 하나하나 닦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원주 사람들의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카데미 극장 투어를 마치고 자유시장 1층 지하에 쭉 늘어져있는 분식집에 갔을 때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떡볶이와 튀김을 먹고 있었다. 주말 이른 시간인데도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손잡이 끝이 뭉툭해진 수저와 그릇, 사람들을 번갈아 보니 친구가 “여기는 오래된 가게가 많아서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와서 먹고, 나중에 커서는 아이와 같이 와서 먹으면서 추억을 나누는 곳이야.”라고 말했다. 가족과 추억을 나눌만한 시내가 없는 시골 동네에서 자란 내게는 낯설고 부러운 풍경이었다.
원주가 또 오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가 되려면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 ‘어떻게 보고 느낄 것인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뉴트로(New-tro)가 청년세대의 인기를 끄는 이유는 쉽게 변하는 세상에서 오래된 흔적 안의 새로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의 산물을 재해석하고 재미를 더하는 다양한 문화와 세대의 교집합을 찾아 다른 세대의 경험을 공감으로 바꿀 수 있다. 당장 들이는 돈이 많게 느껴져서 포기하기에는 장소적 가치로서 그 값을 돈으로 매기기 어렵다.
원주에 살고 있지만 마음을 두지 못하거나 원주에 새롭게 온 이주민과 원주에 정착해서 살아온 사람들인 선주민이 관계를 맺고 함께 새로운 기억을 쌓아갈 수 있는 곳으로 아카데미 극장만 한 장소가 없다. 오랜 세월 선주민의 추억의 장소이자 앞으로의 추억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아카데미 극장이 다른 곳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와 구경거리가 있는 중앙시장과 함께 있기 때문에 장소적 가치는 배가된다.
원반인이 원주민이 되었을 때, 차로 다닌다면 편하긴 하겠지만 원주에서 지낸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이 지역에 살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 소유한 차는 특정 장소에 함께 존재하더라도 분리된 다른 공간이다. 차로 가면 편하게 빨리 갈 수 있지만 지역 전체를 다채로운 감각으로 즐기고 기억할 수도 없고,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특정 지역과 지역을 따라 이동하며 그 사이에서 멋진 풍경을 놓치게 된다. 다양한 원주 사람들과 접촉하며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으면서 그 지역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소속감은 지역을 지키고 있는 고유한 문화로부터 오는 건강한 자부심으로 완성될 것이다. 지금 반 원주사람, 원반인으로서의 목표는 원주에서 잘 정착해 뿌리내리는 것이다. 원주민이 되었을 때의 목표는 아카데미 극장과 중앙 시장 같은 원주의 다양한 재미와 가치를 소개하며, 다른 사람을 원반인으로 만들어 원주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글은 강원일보 [여론마당]원주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2023.04.30.) 기고문의 긴 버전입니다.
http://m.kwnews.co.kr/page/view/2023043016220550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