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36살, 많이 산 건 아니지만 적게 산 것도 아닌 것 같다. 확실한 건 ‘대학교 때까지 배우고 경험한 이유가 평생 나 스스로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였구나’를 깨닫기에는 충분한 나이다. 해가 지날수록 밥벌이의 고단함을 알게 된다.
인생을 살아내려면 계속 돈을 벌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다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언젠가는 자립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는 회사 밖에서도 무슨 일이든 계속해야 하며 그 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조금은 막연한 이야기이기에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려본다. ‘회사의 시스템이 좋았다.’, ‘좋든 싫든 무조건 출근해야 되니까 좋았다.’, ‘새로운 정보, 변화를 계속 따라갈 수 있어 좋았다.’ 이런 말들을 종합해 보면 벌이는 차치 하더라도 밥벌이 행위 그 자체를 자율적으로 지속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자율적인 지속을 위한 모범 답안으로는 호기심과 흥미에 따르는 방법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 이유다. 좋아하면 계속하게 되고 오래 하다 보면 실력이 쌓이고 영향력을 얻게 되니까. 그리고 시키지 않아도 새로 나오는 정보를 찾아보고 그것을 적용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그래야 더 잘하고 싶은 욕구가 끊이지 않고 날로 성장을 욕망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적 이야기고 실제로는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강제적인 장치를 필요로 한다.
지속성이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이어가기 어려운 것인지는 지난 몇 년간 몇 개의 SNS 계정을 운영하면서 몸으로 깨달았다. 인스타그램에 동기부여적인 힙합 노래 가사를 카드 뉴스로 만들어 업로드했었고 을지로의 점심 백반 맛집을 기록하는 계정도 운영해 봤다. 초반에는 호기롭게 1일 1 업로드했으나 금세 소재는 고갈되고 내 흥미 자체도 떨어졌다. 심지어 이런 지속성 부족한 나 같은 친구들이 모여 이번엔 지속해보자며 ‘간헐적 중독자들’이라는 매거진과 유튜브까지 시도해 봤으나 그것 또한 두세 달을 넘기지 못했다. 지속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지속을 위해 완벽주의를 버린 것도 이런 경험 덕이다. 지속가능성이 제일 중요했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오랜 기간 계속해서 실력을 올리는 편이 나았다. 그러면 인위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도 퀄리티가 좋아졌다. 온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는 일, 어렵고 힘들지 않은 일을 하면 에너지가 덜 들어 지속할 수 있어 결국엔 성장했다. 선순환이었다.
일뿐만 아니라 먹는 일도 그랬다. 핸드드립 커피도 처음에는 물줄기를 가누지 못해 떫은맛 커피만 한 달 이상 마셨다. 두 달 정도 지나니 이제 물줄기 조절이 좀 된다. 실패한 방식이어도 잘하려고 욕심부리지 않고 계속하다 보니 어느 날은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다 에너지까지 조금 남는 날은 유튜브나 인터넷을 뒤져봤다. 어느 날은 물양 레시피 변경, 어느 날은 손목 스냅으로 물줄기 조정을 하나씩 찾았다. 그렇게 조금씩 배운 것을 적용해 보면 그다음부터 그 적용한 지식과 행동이 내 것이 돼있었다. 그 시간들이 쌓여 이제는 내 커피에서 제법 로스팅 원두의 진한 맛이 느껴진다.
커피보다 밥은 더 난감하긴 하다. 다이어트 식단도 일상의 식단으로 바꾸어 지속해야 몸무게가 유지되고 요리도 그랬다. 퇴사를 하고 밖에서 사 먹지 않고 대부분 내 손으로 해 먹으려 하니 쉽지 않다. 지속성을 필요로 한다. 맛있는 밥은 둘째치고 난이도와 소요 시간이 우선순위가 됐다. 라면보다 쉽고 짧아 보이는 레시피만 도전 중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쌓여 가길 바랄 뿐이다. 그러다 보면 더 복잡한 요리의 경지에 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먹고사는 일뿐만 아니었다. 연애도 그랬다. 처음엔 스파크와 호기심이 1순위였다가 이제는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지가 우선순위에 올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아니면 어느 것이라도 진득하게 유지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했다. 여기에 추가로 여러 관점과, 취향과, 삶을 대하는 태도 등이 비슷해야 했다. 이런 것들이 맞지 않으면 인위적으로 맞추느라 힘들었다. 내가 고통스럽게 맞추지 않으면서 함께 할 수 있어야 했다. 애쓰지 않는 것이 바로 나와 맞는 것, 지속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연애를 통해 배웠다.
지속성의 관점에서 보면 글쓰기는 내가 힘들이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위다. 처음에는 잘 써보려고 힘을 너무 들여 한 줄도 써내려가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욕심을 버렸다. 좋은 글을 쓰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문자화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하나의 글 쓰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됐다. 무계획 퇴사를 마음먹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글이나 콘텐츠 생산을 힘들이지 않고 지속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내 목표는 힘들이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밥벌이를 찾아 자립하는 것이다. 아주 지난한 과정이 될 것 같다. 내가 이미 지속하고 있는 것들 중에 찾아야 할까, 아니면 새로 찾아야 할까 매일이 고민이다. 아니, 솔직히 벌써 실행 중이다. 흥미롭고 어렵지 않은 일이 지속하게 하고 지속하는 것만이 성장을 가져다준다는 일념으로. 앞으로의 삶에서도 지속할 것을 찾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오늘도 시간의 복리에 베팅해 본다.
* 퇴사하고 카카오 이모티콘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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