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쓰고 남은 질문

by 주드


작년 한 해는 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은 단연 '결혼'이겠다. 평생의 동반자를 결정한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그 결실을 맺기 위해 치러야 할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피로했다. 신중함보다는 신속함이 앞서야 했던 늦깎이 결혼 준비는 단 5개월 만에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여유 없는 일정 탓에 글 한 줄 쓸 시간조차 없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소란스러운 시간 덕분에 마음속에는 글감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결혼을 결심한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는 막막했지만 할 일이 태산일 것이란 직감만은 또렷했다. 지인에게 건네받은 결혼준비 엑셀 체크리스트가 내 직감이 틀리지 않음을 알렸다. 그것은 마치 빠짐없이 색칠해야 하는 밑그림 같았다. 식장 투어, 스드메, 청첩장 등 빼곡한 리스트는 선택의 연속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최소한을 갖추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고, 평균 이하를 선택하면 '허술하거나 예의 없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의 연속이었다. 결혼은 내가 선택했지만, 그 과정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드레스 투어만 해도 그렇다. 생전 처음 입어보는 옷임에도 입어보는 행위 자체에 업체당 수만 원의 '피팅비'가 추가됐다.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대여료를 지불하면서도, 드레스를 입혀주고 치맛자락을 잡아주는 '이모님'의 수고비로 별도의 현금봉투가 자동 추가됐다. 헤어 변형을 추가하지 않고 올림머리 하나로 버티려 해도, 귀 옆 잔머리 몇 가닥을 싹둑하는 데 2만 원이라는 추가금이 붙었다. 분명 도움을 받았고 필요한 서비스였지만, 촘촘하게 설계된 추가금의 굴레는 피할 길 없는 불가항력적인 시스템처럼 느껴졌다. 청첩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버려지는 종이가 아까워 생략하려 해도 예의가 아니라는 마음속 검열에 부딪혔고, 모바일 청첩장은 구색을 갖추기 위해 '셀프 촬영'이라도 해서 사진을 채워 넣어야 했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는 멈출 수 없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결혼이라는 의례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나는 하객에게 결례를 범하지 않으려 애쓰는 신부이자 예뻐 보여야 하는 주인공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지갑을 열어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역할.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자유롭게 소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본의 세계에서 소비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소비자의 배역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철저히 돈을 써야 하는 소비자’ 로서의 나라는 자각은 온라인 세상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에도 선명했다. '신혼부부 자가 마련 꿀팁', '초보자도 3개월 안에 수익낼 수 있는 경매 투자 비법', ‘부린이와 함께하는 독서 챌린지 모임’ 과 같은 종류의 게시글들이 다르게 보였다. 유익함을 앞세운 콘텐츠들이 쏟아지지만, 막상 클릭해 보면 작성자가 돈을 벌기 위한 콘텐츠였다. 개중에는 알맹이 없는 정보와 검증되지 않은 성과뿐인 경우가 많았다. 예전엔 '이거 모르면 손해'라는 문구에 조급함을 느끼며 클릭했겠지만, 이제는 실망 섞인 눈으로 지나친다. 혹하는 제목들로 타인의 조급함을 이용해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 웨딩 시장의 구조와 어딘가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질문은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왔다. 나 또한 온라인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생산자의 삶을 지향하기 때문일 테다. 소비자로서 느꼈던 이 허탈함과 실망감을 나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직 명확한 정답은 내리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기준은 생겼다. 화려한 수식어나 불안의 불가항력으로 결제를 유도하기보다는, 내가 실제로 필요로 했고 진심으로 도움을 받았던 구체적인 경험들, 특히 정말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성과를 스스로 내본 경험을 나누고 싶다. 나를 위한 콘텐츠가 아니라 남을 위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생산할 것. 그것이 정신없이 흘러간 결혼 준비 끝에 내가 얻은 가장 값진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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