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 퇴사 후 가장 먼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역시 '밥벌이'였다. 쉬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몸이 회복되니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곧 밀려왔다. 월급이 끊기자 시간은 생겼지만, 그 시간은 곧바로 돈 벌 궁리들로 채워졌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유튜브를 올리고, 이모티콘을 만드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콘텐츠 수익화 방법을 실행에 옮겼다. 퇴사 이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밥벌이를 찾는 시간’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곧바로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바로 '세끼 식사'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 밥을 스스로 챙겨야 하며 그 유일한 대안은 결국 '집밥'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매 끼니를 사 먹기엔 식비라는 고정비가 너무 무거웠다. 수입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지출은 예민한 지표가 되었고, 외식은 통장 잔고를 녹이는 일이었다. 집밥이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으로 떠올랐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던 주거비와 달리 예측하지 못했던 의외의 복병이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나에게는 집밥을 운영할 능력이 없었다. 장을 보는 요령부터 식재료를 썩지 않게 보관하는 법, 식재료를 칼로 써는 조리방법까지 무엇 하나 익숙한 게 없었다. 요리가 서투르니 주방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졌다. 밥벌이에 온전히 투자해도 모자란 귀한 시간들이 꼬박꼬박 밥을 짓고 치우는 데 쓰였다.
하루 세끼를 집에서 해결한다는 것은 단순히 요리 몇 가지를 할 줄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정된 나의 하루를 계획하고, 관리하고, 또 지치지 않고 반복해 낼 수 있느냐는 삶의 기본적 운영 능력에 가까웠다. 밥벌이를 위한 시간과 밥을 해 먹기 위한 시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나는 퇴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치열한 생활의 감각을 몸소 깨달았다.
직장인일 때는 이런 고민이 필요 없었다.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는 동안 밥은 사 먹으면 그만이었고, 집밥은 가끔 기분 낼 때나 하는 이벤트였다. 1인 가구에게 집밥은 재료도 남고 시간도 많이 드는 비효율적인 선택지였다. 건강이 나빠지고 돈이 새어나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사에서 소진된 에너지를 돈으로 채우는 것이 당시엔 불가피했다.
퇴사 후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밥벌이'와 '집밥'이라는 이 두 가지 숙제가 동시에 닥쳤다는 점이다. 돈을 벌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도 부족한 시기에,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에너지를 써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한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한 시간'이 시간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두고 충돌했다. 에너지 측면에도 마찬가지였다. 밥벌이도, 집밥도 익숙하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다시 회사로 복귀한 지금, 월급으로 안정을 찾은 뒤, 우당탕탕 지나온 8개월 간의 무계획 퇴사의 시간을 복기해 본다. 지금은 다시 직장인이 되었지만, 언젠가 반드시 맞이할 다음 퇴사는 달라야 한다. 그때는 최소한 '밥벌이' 문제만큼은 어느 정도 해결해 둔 채 나가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람들 말이 맞았다,,)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다.
큰돈을 들여 치킨집이나 카페 같은 프랜차이즈 창업을 할 생각은 없다. 내가 지향하는 삶은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삶'이기 때문이다. 큰 자본을 잃을 위험 대신, 내 노하우를 강의로 만드는 등 나만의 콘텐츠로 소박하지만 단단한 수익 구조를 만드는 법을 고민 중이다. 동시에 ‘적게 쓰기' 위한 집밥 연습도 2순위 과제로 삼았다. 유튜브 볼 시간을 조금씩 줄여서라도 미리 일상을 운영하는 근육을 키워두려 한다.
무계획 퇴사를 겪어본 내가 결론 내린 퇴사의 필요조건은 명확하다. 소소하더라도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과 나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 이 두 가지가 모두 준비되지 않은 퇴사는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다. 퇴사 이후 곧바로, 동시에 두 가지 과제가 주어진다. 그러니 최소한 하나는 퇴사 전에 이미 연습된 상태여야 한다. 그중 1순위는 단연 밥벌이. 이것은 단순히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삶을 온전히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느냐는 실전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