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밥 짓는 능력

by 주드


AI가 등장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몇 년 전부터 AI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사무직인 나는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비중이 늘어난 것 외에는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CES에서 공개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고도화된 로봇과, 그 이후 이어진 현대차 노조의 반발을 보며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미래’가 제법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AI로 무장한 로봇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어떤 세상이 될까? 일을 하지 않고 기본소득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론 머스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보편적 고소득의 시대가 올 것이며, 인류는 노동에서 해방되어 찬란한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 말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는 실제로 점차 노동에서 해방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농민의 수는 크게 줄었고, 현재는 중산층에 더 많은 인원이 진입해 과거에 귀족만 누리던 미식과 예술을 일상적으로 향유하고 있다.


다만 나는 일론 머스크가 말하는 기본소득의 수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흐름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 결과로 지급될 기본소득이 과연 ‘고소득’일까. 지금 기업이 노동자에게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을 떠올려보면, 중위 혹은 하위 소득 수준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틀려서 예상보다 훨씬 많이 주면 좋겠다. 어쨌든 돈을 많이 받든 적게 받든, 일하지 않는 삶이 전제가 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 지점에서 나는 퇴사 후 백수로 지냈던 시간이 떠올랐다. 생계의 위협이 없다는 점에서는 다르지만, 시간이 많아지고 수입이 줄어든다는 조건은 꽤 비슷하다. 백수의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여기서 밥벌이를 제외하면 결국 남는 건 ‘먹고사는 일’이었다. 내 목표는 지출을 줄이면서도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었고, 그 해답은 운동과 집밥이었다. 막상 해보니 요리는 생각보다 숙련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식 조리기능사 수업까지 찾게 됐다.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반복해야만 속도와 감각이 붙는다. 운동과 비슷했다.


무엇을 먹을지 정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고려해 살이 찌지 않으면서도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식단이 필요했다. 한 끼가 아니라 하루, 나아가 일주일 단위로 식단을 짜야 재료를 낭비 없이 사고 썩지 않게 소진할 수 있었다. 챗GPT로 식단을 짜보려 했지만, 최소한의 영양 지식이 없으니 질문조차 막막했다. AI를 쓰는 데에도 결국 기본적인 이해와 검증 능력이 필요했다.


기본소득을 받고 일을 하지 않게 되면 사람들은 밥을 할까. 남편과 가끔 이 이야기를 한다. 나는 할 것 같고, 남편은 안 할 것 같다는 쪽이다. SF 영화 속 디스토피아에서 사람들이 통조림 같은 음식을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의 근거 중 하나다. AI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물건은 더 싸질 것이고, 인간의 손이 들어가거나 자연 그대로의 것은 더 비싸질 가능성이 크다. 신선한 채소가 비싸지면 요리는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과거에서 답을 찾아본다. 밥 하는 일은 오랫동안 ‘노동’으로 여겨져 왔고, 그래서 점점 주변으로 밀려났다. 귀족은 요리를 하지 않았고, 요리는 노예의 일이었다. 노예 해방 이후에는 여성이 그 역할을 맡았고, 여권이 신장된 이후 지금은 HMR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밥 짓는 일이 사라진 이유는 단순하다. 모두가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았던 시대에는 밥 짓는 일은 성가신 노동으로 취급됐다. 하지만 미래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노동에서 해방된 사회에서 밥 짓는 일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더 중요해질까, 아니면 완전히 사라질까. 이 질문의 답은 점점 더 궁금해진다.


어쨌든 만약 내가 소량의 기본소득을 받으며 살게 된다면, 나는 밥을 할 것 같다. 퇴사 후 백수였던 나는 수입이 없었지만 여가 시간이 늘고 체력이 회복되자 오히려 더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어졌다. 물론 이런 고민 필요 없이 경제적으로 가능한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귀족이 노예를 부릴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의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밥짓는 로봇이 나오면 부리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기본소득에는 그 정도의 여유는 없어 보인다.


모두가 내 생각 같지는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밥이 중요한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밥 짓는 일이 성가시거나 먹는게 중요하지 않다면 요리에서 해방되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나 같은 사람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적어내라면, 백수를 경험해본 나는 ‘밥 짓는 능력’을 그중 하나로 적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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