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오랫동안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30대가 끝나기 한 달 전, 돌연 나는 결혼했다. 6월에 준비를 시작해 11월에 식을 올렸으니 준비 기간은 고작 5개월이었다. 보통 준비기간을 1년은 잡는다는데, 겪어보니 왜 그런지 알겠다. 그 번거롭고 절차 많은 행사를 5개월 만에 해치웠다. 이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하나다. 결혼은 내 인생에서 급진적이었고, 그만큼 당시의 내 마음도 급박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행복과 관련 있다. 취업 이후, 늘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인생의 최우선 과제는 언제나 하나였다. 이 불행을 어떻게든 벗어나는 것. 그러다 보니 결혼은 늘 뒤로 밀렸다. 그러다 눈 떠보니 어느새 마흔이 부쩍 가까워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마흔이 코앞인 무렵 나는 퇴사한 상태였다. 진로를 바꿔보겠다고, 새로운 공부와 밥벌이를 바닥부터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년간 나는 무엇인가를 수없이 시작했지만, 무엇 하나 만족스럽게 끝낸 적이 없었다. 발버둥은 쳤지만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며 퇴사를 선택한 상황이었다. 요즘 배우자 조건중 하나가 맞벌이임을 생각하면 결혼과 꽤 동떨어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비혼주의자는 아니었다. 연애도 계속해왔다. 2024년 봄, 지금의 남편을 만났을 때도 결혼은 여전히 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는 결혼할 상대를 찾고 있었다. 만난 지 석 달쯤 되었을 때 내가 회사를 그만두자, 그는 꽤 당황했다고 한다. 내가 결혼 생각이 없는 줄 알았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느낌처럼 당장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영원히 안 하겠다는 마음도 아니었다. ‘언젠가 하겠지’라는 막연함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문득 퇴사 이후 시도한 일들이 연달아 실패하고 막막함이 극에 달했을 때, 이런 질문들이 나를 잠식했다. 이 발버둥은 언제 끝날까. 끝이 있긴 할까. 내가 원하는 방식의 밥벌이는 가능하긴 한 걸까. 답은 없었다. 가능하더라도 아주 늦은 이야기일 것 같았다. 아주 늦게서야 겨우 행복해졌을 때, 그때도 나와 결혼할 사람이 남아 있을까. 그때 아기는 낳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을 계기로 결혼을 처음으로 현실적인 문제로 바라보게 됐다.
그동안 결혼을 미뤄온 이유는 결혼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나는 늘 진로와 스스로의 행복이 선결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나은 상태의 나’가 된 이후에야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퇴사 이후 모든 것이 없어진 상태에서 깨달았다. 그 ‘조금 더 나은 상태’는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성취를 조건으로 삶을 유예한 채, 가능성 속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도.
사실 나는 혼자 사는 인생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가족을 만들고 싶었고, 인생을 함께 걸을 동반자를 원했다. 다만 그 선택을 계속 미뤄왔을 뿐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분명해졌다. 일만을 추구하는 게 맞을까. 내가 원하는 삶은 더 성공한 삶이기도 했지만,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조금 더 따뜻한 삶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삶은 가만히 미뤄둔다고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보였다. 당시의 남자친구였다. 결혼을 전제로 다시 보니, 그와 헤어져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이직처도 알아보지 않은 채 퇴사를 하며 기행을 벌일 때에도 그는 묵묵히 옆에 있었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그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이후 정말 후다닥 결혼을 했다.
결혼은 저절로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었다. 내가 마음을 먹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성취만을 좇으며 미뤄왔던 삶의 다른 중요한 부분을 이제는 외면하지 않겠다는 자각이었다. 원하는 삶에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조금 더 따뜻한 삶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