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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Jun 02. 2019

정확한 자기소개

 고등학생 때 유행했던 것들이 있다. 레스포삭 가방, 아베크롬비 티셔츠, 쎈수학 문제집, 그리고 <시크릿> 책이다. 읽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끌어당김의 법칙이 발동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나오자마자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금세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런 대대적인 유행은 때론 프레임을 남기곤 한다. '꼰대'라는 단어는 전국의 꼰대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으며, '욜로'는 마음 놓고 탕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시크릿>이 남긴 것은 '부정'에 대한 부정이었다. 부정적인 사람에게는 칼날이 겨눠졌다. 나에게 '넌 너무 부정적이야.' 라고 뾰족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도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크릿>으로 내적 갈등을 겪는 일이 잦아진 것은 고민이었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인가? 난 한때 긍정적 사고 캠페인의 대명사인 컵 속의 물 테스트도 통과한 사람이다. 컵 속의 반만 채워진 물을 보고 '반밖에 안 남았다.' 대신 '반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란 말이다. 왜 주변인들에게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을까. 그것은 정확한 성격 때문이었다. 나는 어떠한 상황을 직시할 때나 미래를 예측할 때 장밋빛 청사진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주변 환경이나 내 능력 등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해 정확하게 기대하고 정확하게 실망하기를 원한다. 긍정적이라기보다 똑 부러진 것을 선호하는 나의 판단이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살아내기에 녹록지는 않은 곳이니까.


  물론 무한 긍정의 태도가 인생에 미치는 좋은 영향에 공감한다. 긍정적인 태도의 사람들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에게 앞으로 살날이 일주일밖에 안 남았으니 삶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치료될 거니까 꼭 이겨내라는 말을 해줄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정확한 기대를 하는 편이 나에게는 더 잘 맞는다. 게으른 나에게 해맑은 긍정은 준비를 소홀히 할 여지를 주며, 뭔가 믿을 구석을 준다. 그렇다고 내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부족한 부분을 알맞게 파악해 보완하고 만반의 준비를 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편이 내게는 더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준다. 무한 긍정의 배신은 내게 쓰나미 같은 대미지를 가져올 따름이다.


  정확한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인간관계도 정확해졌다. 진짜 친한 친구만 주변에 남았다. 그러나 친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나를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보통 조언을 구하거나 고민 상담을 한다. 오랜만에 연락을 하더라도 나는 그들은 내치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정확히 공감해주고 응원한다. 소정의 판단을 거쳐 긍정적인 결과가 예상되면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도 하니까. 긍정으로 무장해 응원해주는 친구만 있다면 세상이 믿을 수 없는 곳이거나 재미없게 느껴질 때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영업에 쉽게 도전하고 맛집으로 가득한 초록색의 세계에서 미식가의 존재의미를 생각해 본다. 야속하지만 필요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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