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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Jun 02. 2019

휴가갑니다


 날이 좋아 하늘이 새파랗든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중충하든 별일이 없으면 쉬는 날에는 카페에 간다. 월급쟁이가 평일에 휴가를 내면 대단한 일을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신입사원 시절, 휴가를 내고 여행이나 전시회를 가지 않고 허투루 보내는 선배를 이해하지 못했다. 평일의 공기와 햇살은 주말과 다르다며 아무것도 안 해도 그저 좋다는 그의 말은 아리송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사무실에서 벗어난 해방감일까. 선배가 느꼈던 평일만의 특별한 느낌을 지금은 나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카페에 도착해 테이크아웃 잔이 아닌 머그잔에 커피를 주문했다. 통유리로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바깥을 볼 수 있는 창가 자리를 좋아한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떡볶이집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중학생 때도 있던 떡볶이집이 아직까지 건재함에 놀랐다. 십 수 년 간 사업을 유지해온 주인아주머니의 수완과 근면함, 임대료를 그녀가 감당할 만큼만 올린 건물주에게 마음속으로 리스펙트를 보냈다. 그리고 진짜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일상 속의 커피는 잠을 깨는 각성제거나 하루를 시작하는 관성일 뿐이다. 창밖을 배경으로 조금씩 옅어져가는 크레마를 구경하다가 커피를 입안에서 굴리며 그것이 원래 어떤 맛이었는지 생각했다.


  내일을 버텨낼 에너지를 얻고 돌아오는 길, 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동네 세탁소 앞이었다. 닫힌 철제 셔터에는 '금토일 휴가 갑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대개 이런 문구는 세탁소나 백반집, 보세 옷가게 같은 영세 자영업자의 상점에 붙어 있다. 그것도 프린트된 문구가 아니라 매직이나 사인펜으로 쓰여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휴가를 가는데 대체 뭐가 죄송할까. 1년에 고작 며칠 쉬면서, 그것도 주말을 끼워서 쉬는데 말이다. 휴가 날이라 마음이 너그러워 졌는지 몰라도 '휴가 갑니다.'와 '죄송합니다.'가 같은 문맥에 쓰인 것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언어의 문맥에 관련된 시험에 우리는 익숙하다. 한 문장을 주고 어느 문장과 어느 문장의 사이에 들어가야 하냐고 묻는다거나, 특정 단어가 어느 문맥에 쓰이는 게 어울리냐는 물음에 어쩔 수 없이 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본 경험이 많다. 자연스레 휴가를 가는 것이 죄송해야만 하는 일일까 의문이 들었다. 자영업자의 휴가는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신에게 휴가를 결재하는 것이 마음의 짐이다. 쉬는 것을 망설이는 그들은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착취해 밥벌이를 한다. 그 이유는 스스로의 경제상황 때문일 수도 있고 IMF의 내상일 수 있다. 자기 착취가 타인에 의한 착취보다 효율적인 건 그것이 자유롭고 자율적이란 착각 때문이고 그것은 반복된다.


  얼마 전 들었던 팟캐스트에서 독일의 휴가자는 당당하다고 했다. 휴가는 근로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고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휴가 없이는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독일에서 보편적인 인식이다. 일은 본인의 행복을 완성하기 위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문맥이라면 ‘휴가갑니다.’는 앞뒤에 어떠한 문장도 동반하지 않을 것이다. 휴가 전날 내 모습은 어땠는지 떠올렸다.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으로 평소와는 다른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같이 일하는 팀원에게 눈으로 입으로 죄송하고 고맙다고 하면서 말이다. 휴가간다는 말 앞뒤에 어떤 문장과 표정을 덧붙이는 지가 사람들의 행복을 보여주는 기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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