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이 세상의 극한 직업 중 하나는 주드의 브런치 구독자일 것이다. 물론 굉장한 착각이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 구독자는 거의 없고 극한 직업으로 생각할 거리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기 객관화 잘 되는 편) 오직 우리 엄마만이 내 브런치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엄마는 실제로 구독자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내가 구독자님들에게 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극한 직업은 그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죄송합니다.ㅜ
구독자들께 죄송스러운 이유는 구독자분들이 내 브런치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가실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 브런치에는 일관된 콘텐츠가 없다. 처음엔 힙합 리더십으로 회사 욕을 잔뜩 썼다가, ENFP 후배에게 글쓰기 코칭을 했다가, 창업에 도전한다고 했다가, 면접에 대한 글을 썼다가 지금은 또 다른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봐도 혼란 그 잡채인 것이다! 흙,,,
브런치가 굴러가는 모양새와는 달리 의외로 나는 브런치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한 경험이 많다. 브런치를 키우려면 구독자에게 가치를 제공해야 함을 알고 있다. 한 가지 주제로 브랜딩을 해야 하고 그에 대한 글을 꾸준히 올리는 것이 좋다. 내 브런치와 정확히 반대다. 앎과 행동의 불일치다. 꾸며내고 계획하기보다는 솔직하게 마음 가는 대로, 내 일상, 그때그때 관심 가는 주제가 있으면 그것을 올리는 방식으로 브런치를 운영하고 있다. 내 멋대로고, 내가 제일로 행복한 브런치다. 실제로 나라는 인간이 한 가지를 몇 년간 진득하게 하기보다는 관심사가 다양하고 자주 바뀌는 탓이다.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하나요,,,ㅜ
이런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는 점에서 위안 삼는다. 주위에 이런 친구들이 몇 명 있다. 그들과는 몇 년 전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님이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알게 됐다. 이 모임에서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이것저것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이 모임의 유입 경로 자체가 심플하지는 않다. 힙합을 좋아하는데 얕게 좋아하지 않았고 노래만으론 성에 안 차서 더 깊이 파다가 김봉현 선생님이 힙합에 대해 쓴 글이나 책, 콘텐츠를 봤는데 그에 그치지 않고 인스타그램까지 찾아갔다가 글쓰기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회비까지 내고 퇴근 후 연남동에 있는 이 모임에 찾아온 것이다. 극강의 콘텐츠 소비자들이 아닐 수 없다.
6월의 어느 날, 우리 극강의 콘텐츠 소비자들은 수원으로 K리그 직관을 갔다. 통닭거리에서 치킨을 먹고 수원화성 근처 카페테라스에서 우리의 취향과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모두 MBTI 중 N과 P를 가지고 있었고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았으며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많았다. 관심사에 빠져드는 패턴 또한 비슷했다. 어떤 것에 중독됐다가 얼마 뒤 빠져나오고 또 다른 것에 빠진다. 예전에 관심 있던 것에 돌아가 다시 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이를 ‘간헐적 중독’이라 부르기로 했다. 포장하느라 꽤 힘들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간헐적으로 중독됐던 것들을 나열해 본다. 힙합, 글쓰기, 팟캐스트, 유튜브, 이모티콘, 시티팝, 랩, 드럼, 창업, 출판, 우디앨런, 그레타거윅, 노아바움백, 프랜리보위츠, 독일언니들, 존박, 이강인, 야마시타 타츠로, 프랭크 오션 등.. 간헐적으로 중독됐다가 빠져나왔다가 또 다른 것에 빠져들었다가 예전에 빠졌던 것에 다시 돌아가기도 하는 생활을 몇 년간 했다. 누군가 봤을 때에는 이런 경험들이 끈기 없어 보이기도 하고 성과가 없어 헛짓거리로 보이기도 할 것 같다. 의외로 나는 만족스럽다. 이렇게 도전했던 경험들이 내게 남긴 것이 꽤 많고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나'가 있었다는 점은 변한 적 없다. 부단히 나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고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됐던 경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경험은 휘발되지 않았고 단발적이지도 않았으며 누적되어 새겨졌다. 세상에 의미 없는 것은 없다.
간헐적 중독을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내 취향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나는 20대 후반까지 취향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학교에 입학한 후 취업하기 전까지 취향의 필름이 끊겼다.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대입이라는 과제가 끝난 후 고삐를 풀고 중심을 잃었던 것 같다. 취향이 확고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30대를 살아온 삶의 방식인 '간헐적 중독' 이다. 여러 가지에 직접 뛰어들고 부딪치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다른 사람은 싫어하는데 나만 좋아하는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나를 잘 알게 됐다. 취향은 나라는 인간을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나의 취향과 나 자신을 알고 사는 것의 만족도는 매우 크다. 내가 어떨 때 행복한지, 어떨 때 불행한지 데이터가 쌓이니 더 행복에 가까워진다. 아마 간헐적 중독자 동지들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한 가지로 한정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을 더듬어 왔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찾았고, 분명하게 했고 그것들이 쌓여 나름의 취향을 갖게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내 취향에 자부심도 있다. 나의 취향은 지나치게 서브컬쳐도아니면서 지나치게 대중적이지도 않다. 솔직히 내 취향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더 마음편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내 취향이 소수의 고급취향이라며 정신승리하게 만든다. 나같은 취향은 나밖에 없을 것이기에,,
나와 친구들은 극강의 콘텐츠 소비자이지만 영원히 소비자로 남고 싶지는 않다는 점도 비슷하다. 솔직히 이 정도 소비했으면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양심상 늘 생산자로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드디어 이번에 의기투합해 실행에 옮겨 보기로 마음먹었다. 간헐적 중독 과정을 통해 자아성찰을 한 경험을 나눠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취향이 없는 사람들이 취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우리가 중독됐던 것들에 대해 소개하면서 어떻게 우리의 취향을 만들어갈 수 있었는지 우리의 방법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우리도 최초에는 취향이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제는 정말로 구독자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브런치로 거듭나고 싶다.
* 퇴사하고 카카오 이모티콘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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